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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흔적 그리고 모습/책속의 글

박부추수(剝膚椎髓), 두회기렴(頭會箕斂)

by 두타행 2016. 2. 2.

 

박부추수(剝膚椎髓), 두회기렴(頭會箕斂)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사람이 찾아오면 우선 반가웠다.

멀리서 희끗희끗 사람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使令들이 없는 것을 보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앞에서 활개를 치며 올라오는 사람은 어딘가 안면이 있는 듯싶었다.

김이교였다.

나이는 악용보다 두 살 아래였으나 같은 무렵 科擧合格하여 함께 옥당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수원성 建築에도 참여한 동료였고

정조대왕 승하 후 벽파에 몰려 명천으로 귀양 갔다가 1년 만에 解配된 후 두루 벼슬을 거쳐 나중에는 정승까지 지냈다.

약용은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김공 아닌가.

, 정공. 오래간만이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서로 얼굴을 뜯어보고 손을 어루만지며 무언의 정을 나눌 뿐이었다.

어서 들어가게.

약용은 김이교를 서둘러 초당 안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미처 엉덩이를 부리기도 전에 그간 못다 한 정을 나누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그럭저럭 지내고 있네.

내가 너무 무심하였네.

약용이 헛웃음을 날렸다.

사노라면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한데 어쩐 일로 예까지 들렀는가.

전라어사로 두루 돌아다니다 일이 거의 끝나 돌아가려던 참이네.

고맙네. 여기까지 찾아와준 사람은 자네뿐일세.

이번에 돌아가면 어떻게든지 힘써 보겠네. 대계가 끝났는데도 서로 눈치만 보면서 풀어주지 않으니 말이나 되는 얘긴가.

이제 나는 포기하였네. 내 죄가 무엇이기에 20여 년 동안이나 귀향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신유년 때만 하더라도 무죄방면되리라는 풍문이 돌았었네. 그런 것이 어느덧 이렇게 세월이 흐르지 않았는가.

자네 심정 이해가 가네. 

자네에게 면목이 없네. 나야 벼슬 한답시고 술이나 먹고 다녔지 어디 제대로 학문을 했는가. 자네는 책 속에 파묻혀 세월을 보냈으니

어이 장하지 않겠는가. 하늘이 자네에게 공부를 하라고 무심하였나 보네.

김이교와 정약용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에 열중하였다.

자네 늘그막에 어사로 지내면서 무엇을 느꼈는가.

모두가 부질없더군. 사람이 사람을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턱없는 일인가를 깨달았네.

무슨 알인가.

가는 곳곳에서 부정을 발견하였네. 眞僞를 가려보면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네. 따지고 또 따져보니 결국 어사인 나에게까지

책임을 돌아오지 않겠나. 내가 받는 國祿도 백성들의 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네.

역시 자네는 명관이네 그런 것을 느꼈다면 이제부터는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질 걸세.

자네야 시골에 있으니 오죽이나 잘 알겠나.

내가 요사이 牧民心書라는 책을 쓰고 있다네. 이 책에서 나는 박부추수(剝膚椎髓)니 두회기렴(頭會箕斂)이나 하는 말을 즐겨 쓰고 있네.

박부추수란 살갗을 벗기고 속골을 망치질한다는 뜻이고, 두회기렴이란 머릿수를 세어 곡식을 내게 하고 키로 거두어들인다는 말이네.

나야 귀양살이하다가 끝나면 그만이지만 자네는 백성의 고통스러움을 理解하고 政治하는데 똑 반영을 하게.

알겠네.

지금 백성들은 돈만 있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말들을 한다네. 무지한 백성들이 서슴지 않고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썩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대로 두었다가는 홍경래의 난 다음으로 더 큰 난리가 줄을 일을 걸세.

정치 얘기에 열을 올리던 김이교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손암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나도 들었네만........

김이교의 말에 악용이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耳順의 나이가 가까워서인가 눈물샘이 한없이 약해져 있었다.

김이교가 약용의 손을 꽉 잡았다. 김이교의 눈에도 눈물이 괴였다. 약용이 김이교의 손에 들린 부채를 쥐더니 그 위에 담담한 표정으로

를 적었다.

 

유명한 扇子詩였다.

 

역정을 적시는 가을비

사람 보내기를 더디게 하네

이 두메산골에 자네 떠나면

뉘 다시 나를 찾겠는가.

班列에 다시 오르라니

어찌 감히 바랄 수 있으리

오얏꽃 언덕 漢水

돌아갈 길 기약이 없네

酉舍에서 글 쓰던 날은 잊지 마소

경년에 떨어진 칼 그 설움 말문이 막히네

푸른 대() 두어 개 새어든 달 아래

故鄕을 생각하니 눈물만 짓네.

 

약용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시의 뜻을 새긴 김이교도 말을 잃었다.

 

 

황인경

小說 牧民心書 下卷 이별의 장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