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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흔적 그리고 모습/책속의 글

淸廉이란 목자의 본무요, 갖가지 善行의 原則이요.

by 두타행 2015. 11. 17.

淸廉이란 목자의 본무요, 갖가지 善行原則이요.

 

  

  

아침 일찍 일어나 뜰에 나선 추사는 찌뿌듯한 몸을 펴 한껏 기지개를 켰다.

약용이 호미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자제도 잘 잤는가.

텃밭 가꾸는 것이야 學童(학동)들을 시키시지 손수 이러십니까.

이 말에 허리를 펴며 일어선 약용이 추사 옆으로 다가왔다.

卓上空論(탁상공론)을 싫어하는 까닭이지. 理論(이론)을 알고 나면 實行(실행)을 해야 하질 않겠나.

實學者(실학자)農學(농학)을 논하고 利用厚生(이용후생)實事求是(실사구시)를 주장하는 理由(이유)가 무엇인가.

입으로만 떠들고 농사일은 농군이 하여야 한다는 것은 言語道斷(언어도단)이네.

양반도 먹고살려면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持論(지론)이네.

약용의 說明(설명)에는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양가에서 자라나 호미나 가래 한번 잡아보지 않았던 추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약용에게 고개를 숙여졌다. 實踐(실천)하는 실학자. 그렇다. 약용이야말로 진정한 학자라고 생각되었다.

추사는 어젯밤의 일이 다시금 생각났다. 젊은 혈기 하나로 자신의 지식을 마음껏 펴보았지만 상대는 누가 뭐라 해도 朝鮮(조선)에서 으뜸가는 實學(실학)의 대가가 아닌가. 추사가 말한 모든 것들을 악용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추사는 마치 자기 혼자만 아는 양 서슴없이 떠들어댔던 것이다. 추사는 자신의 열변이 더해갈수록 말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던 약용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추사는 그 까닭을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었다.

알고만 있으면 소용이 없다. 실천하지 않는 이론은 썩은 學問(학문)이다. 이와 같은 깨달음을 흙과 호미로서 추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추사는 부끄러움과 함께 벅찬 감동으로 몸을 떨었다.

선생님, 어제 저희들이 찾아뵈었을 때 열중해 계시던 것이 무엇이옵니까.

......그랬던가.

약용의 온화한 낯빛을 본 추사가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近來(근래)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이온지 궁금해서 여쭙는 말씀입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마친 추사가 약용을 올려다보던 눈을 숙였다.

개의치 말게나. 자네의 마음씀씀이 거기에까지 이르렀으니 되레 고마울 뿐이네. 어제 쓰던 것은 별것 아닐세. 오랫동안 머릿속에서만 묵혀 왔던 것을 글로 옮기는 것뿐일세.

冊名(책명)牧民心書(목민심서)라고 지었네만 아직 마무리를 못한 상태라네. 백성을 다스리는 牧民官(목민관)이 지켜야 할 基本(기본) 원칙을 간략하게 적은 것이라네.

선생님, 무례이온 줄 아오나 소생이 읽어볼 수는 없겠습니까.

이제 초고일 뿐인데 그래도 괜찮겠는가.

.

약용은 무엇보다도 추사의 학구열에 탄복하였다.

약용은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추사는 그 길로 목민심서의 첫 권부터 독파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는 권이 거듭될수록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약용의 혼을 느낄 수 있었다.

科擧(과거)入格(입격)한 후 관리로 나서는 자들은 대개가 부를 축적하려고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이나 굶주림에는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잇속 채우기에 급급하여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도 그 행태가 바꾸지 않던 터였다. 약용은 목민관이 마땅히 갖추어야할 德目(덕목)들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그 方案(방안)提示(제시)하고 있었다. 목민심서는 그 첫머리에서 목민관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논하고 그것이 목민관의 첫째 덕목임을 밝히고 있었다. 문맥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읽어내려 가던 추사는 어떤 대목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치고는 하였다.

책을 덮고 난 추사는 律己(율기)() 六條(육조) 가운데 제2조를 되뇌어보았다.

청렴이란 목자의 본무요, 각자기 선행의 원칙이요, 모든 德行(덕행)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절대로 목자가 될 수 없다.

청렴이야말로 다시없는 큰 장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큰 욕심쟁이일수록 반드시 청렴할 것이나.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까닭은 그의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지혜가 깊은 선비로서 청렴을 敎訓(교훈)삼고 貪慾(탐욕)을 경계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목자로서 청백하지 못하면 백성들도 그를 도둑으로 지목하고 그가 지나가는 거리에서는 더럽다 꾸짖는 소리로 들끓을 것이니 부끄러울 노릇이다. 뇌물을 주고받되 뉘라서 비밀리 아니하랴마는 한밤중의 거래도 아침이면 벌써 드러나는 법이다. 보내준 물건이 비록 작은 것이라도 恩惠(은혜)가 맺힌 곳에 私情(사정)은 이미 오고간 셈이다.

청렴한 관리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가 지나치는 곳에서는 山林泉石이라도 모조리 맑은 빛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한 고을에서 진귀한 것이 반드시 민폐가 된다. 短杖(단장)한 개라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면 청렴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꿋꿋한 行動(행동)이나 각박한 政治(정치)는 인정에 맞지 않으니 사람다운 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청백하면서 치밀하지 못하거나 재물을 쓰고도 결실을 보지 못하는 따위의 짖은 칭찬거리가 못 된다. 관청에서 사들이는 물건 값이 너무 싼 것은 시가대로 주는 것이 좋다. 잘못된 관례는 기필코 뜯어고치되 혹시 고치지 못하더라도 나만은 범하지 말라.

목자의 생일날 부하들이 성찬을 바치더라도 받아서는 안 된다. 財物(재물)喜捨(희사)하는 일이 있더라도 소리 내어서 말하지 말고 하는 체 내색하지도 말고 남에게 말하지도 말고 전 사람의 잘못을 들추지도 말라. 청렴하면 은혜롭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가슴 아프게 여기나 무거운 짐일랑 자기가 지고 남에게는 수월하게 해주면 좋을 것이요, 請託(청탁)하는 일을 않는다면 청렴하달 수 있을 것이다. 淸白(청백)한 명성이 사방에 퍼지고 善政(선정)하는 風聞(풍문)이 날로 드러난다면 인생의 지극한 榮光(영광)이 될 것이다.

추사는 눈을 감았다. 비록 초고였지만 그는 악용의 논리적인 추론에는 물론, 백성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이 녹아 있는 著書(저서)를 통하여 실학의 정수를 만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 소생을 弟子(제자)로 받아주시옵소서

(중간 생략)

마침내 약용의 허락이 떨어지자 추사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부님, 절 받으십시오. 성심껏 따르겠나이다.

추사는 감격하여 눈물을 떨구며 큰절을 올렸다.

 

 

황인경

小說 牧民心書 下卷 회자정리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