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 제4부 『동트는 광야』 (10∼12권) 줄거리
10권
* 탈출하는 땅
코민테른 특파원으로서 원산에서 지하노동운동을 하던 윤철훈은 고정노동운동원이며 교사인 최현옥의 안내로 원산에서 탈출한다. 윤철훈은 코민테른의 명령으로 인민들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적색노조와 적색농조를 도처에 조직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성취 시키겠다는 희망으로 두만강을 넘었으나 총독부의 경찰력 강화와 만주사변의 여파로 일어나는 심리적 위축, 치안 유지법을 앞세운 무차별 검거 등으로 뜻은 이루지 못하고 탈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 격랑속의 격랑
1934년 9월 조선 혁명당군의 지휘자 양세붕 장군이 일본밀정에게 기습당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일본 군인들은 양세붕 장군의 시신을 조선인 마을로 옮기고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조선농민들 강압하여 시신에 가해를 하고 목을 자른다. 이 일은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고 조선인들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중국 공산당 조직에 합류한 노병갑은 많은 조선인 부대원들이 밀정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고 자신도 위기에 처하자 일본군에 투항한다.
* 아버지를 찾아서
송수익은 15년형 언도를 받고 봉천감옥에 수감된다. 송수익의 작은 아들 송가원은 아버지의 옥바라지를 위해 만주로 거처를 옮기기로 작정한다. 형인 송중원은 장남인 자기가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송가원은 의사인 자신이 가서 병수발을 하는 게 더 좋은 조건이라며 형을 만류한다.
송가원의 아내 박미애는 만주로 이사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서고 이에 송가원은 미련 없이 혼자서 만주로 떠난다.
* 교차점
손판석의 장남 손일남은 일본인 재단사를 가위로 찔러 살인 미수죄로 수감된다. 그러나 공허와 송중원의 부탁으로 홍명준이 무료 변호를 해주고 2년형을 받는 것에 그친다.
이경욱은 아버지의 죽음 후에 형의 뒷바라지로 고시공부를 계속하지만 거듭 낙방만 한다. 형은 더 이상 뒷수발을 할 수 없으니 취직하라고 강요하고 이에 고서완의 농장에서 조직 관리와 야학을 맡아 일하게 된다.
고서완은 농토를 바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집단농장의 경영이라는 개인적 사회주의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 겹 올가미
총독부에서는 학생들의 농촌계몽운동을 전면 중단하고 야학과 조합을 전부 해체시킨다. 득보네 마을 염서방은 자신의 아들과 주인 와다나베 아들의 싸움으로 인해 몽둥이질을 당하고 소작마저 떼이게 된다. 분노한 염서방은 와다나베 일가족 여섯을 몰살시키고 자결하고, 차득보는 염서방이 장한 독립투사라며 염서방의 처 하정댁을 여러모로 돕는다.
일자리를 잃은 손판석은 공허의 소개로 포교당에서 기거하게 된다. 한편 유승현과 연결된 농민 조직외에도 군산의 고무공장, 이리의 견사공장에도 조직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정도규는 신원보증령이란 악법으로 자신의 신원을 보증할 연대보증인 셋을 세우라는 경찰서의 명령을 받고 집을 떠나 피신한다.
총독부에서는 학교마다 군사교육과 신사참배를 실시하기 시작한다.
* 뜨거운 정인
부친의 옥바라지를 하는 송가원은 감옥에 출입하는 일본인 의사 하야시를 통해 부친의 병보석이 가능하도록 조치하나 송수익은 거절한다. 병보석의 조건으로 쓰게 되는 전향서는 독립운동의 포기와 일본천황에 대한 충성 맹세였고 송수익으로서는 사형선고와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송가원은 옥중에 있는 부친보다 따뜻하게 옷을 입어서도 안 된다며 허름하게 지내는 등 효심이 극진했다.
차옥녀는 박미애를 만난 다음에 만주로 송가원을 찾아갈 마음을 굳히게 된다. 박미애는 옥녀를 찾아가 송가원은 이제 자기 남편이 아니라며 만주로 가면서 갈라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것이다.
옥녀는 봉천에 도착하고 서울보다 번화함을 느끼며 송가원이 일하는 일광병원을 찾는다. 송가원은 그녀를 반가워하고 끌어안았다. 옥녀는 송가원이 그토록 반가워 할 줄을 몰랐다.
* 야릇한 기류
소수민족의 러시아 동화정책으로 연해주의 조선인 자치가 불가능해지면서 여러 곳에서 일본 스파이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소련 비밀경찰의 반동 숙청 바람이 분다.
조강섭, 윤선숙 부부는 윤철훈에게 도움을 청해 일본 스파이로 오인되어 구속된 강윤배와 최진순 부부를 구출한다.
* 혈청단
장덕풍은 노망하여 가족들에게서 외면당하며 그의 아들 장칠문은 경찰을 사퇴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받으며 일조물산 주식회사를 차리고 상공회의소 회원이 되며 큰아들을 경찰에 넣는다.
백남일은 아편쟁이로 전락하여 재산을 탕진하고 정미소와 미선소를 장칠문에게 넘겨준다. 학생운동으로 1년 감옥살이하고 풀려난 오삼봉은 학교를 퇴학당하고 혈청단을 조직하여 부안, 옥구, 이리 일대의 친일파들 4명을 살해한다. 그는 출감하는 친구들을 모아 다섯이서 혈청단을 조직했던 것이다. 수가 많으면 비밀이 샐 우려가 있어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 달빛속의 진혼곡
그동안 가족만 면회가 허용되어 면회를 하지 못했던 필녀는 쓰지 않고 모았던 돈을 내밀며 송가원에게 송수익의 면회를 주선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필녀와 면회를 한 송수익은 자신이 죽으면 화장하여 만주벌판에 뼛가루를 뿌리라 유언하고 운명하게 된다. 송가원, 옥녀, 필녀, 수국이는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 이민 바람
선만척식주식회사가 창립(1936)되어 만주 이민을 전국적으로 모집한다. 부두에서 막노동으로 하루살이 생활을 하고 있는 부두노동자들에게 이민바람이 일어났다.
목포 남만석은 척식회사의 선전에 유혹되어 그의 매형 김진배 가족과 함께 만주에 이민가기로 결심한다. 박건식은 위암으로 사망하며 그의 아들 박동화는 학생운동에 참여 한 것을 후회하며 관청에 일자리를 옮기려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질 않는다.
* 동북항일 연군
조선족 몽고족 티베트족 등 소수민족은 항일통일 전선을 구축하여 동북항일 연군이란 유격대를 조직한다.
송가원은 홍두산 원송골에서 다친 유격대원들을 치료하며 옥녀는 그들을 간호한다. 방대근은 항일연군 사령부 직속으로 밀정과 악질 친일배들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별동대의 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군에 투항하여 수색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집을 습격하고 그 대상이 옛 친구인 노병갑인 것을 알고 놀란다. 그러나 가슴 아픔을 뒤로 하고 노병갑을 살해한다.
* 보천보 진공
1937년 6월 5일 동아일보 호외로 독립군들이 함경남도 보천보기습에 대해 보도가 되자 잡지사 편집장인 송중원은 사장인 민동환에게 그 사건에 대해 그 진상을 자세하게 다루자고 제의한다. 그러나 민동환은 거절하며 문인들 원고료 선불을 억제해 달라고 주문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편집권을 위임하며 잡지의 적자는 평생걱정 없다고 장담했던 사장의 마음이 변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송중원은 충격을 받고 고심한다. 그 두 가지 조건이 불변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동생의 친구라는 거북스러운 입장도 감내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편 허탁은 기와공장에서 노무자로 피신 생활하며 소극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한다.
* 압롱강의 밤
보름이는 큰딸 금님이를 철공소 직공에게 시집보내고 아들 삼봉이를 혼인시키려 하나 삼봉이는 돈을 더 벌어 갖고 가겠다며 얼렁뚱땅 넘기곤 한다. 보름이는 아들이 무언가 남모르는 일을 하는 것이라 짐작하지만 묻지 않는다. 묻는다고 사실대로 대답할 것 같지가 않았고 또 아는 것이 두렵기도 했던 것이다. 얼마 후 오삼봉의 혈청단이 발각되고 보름이네 가족은 공허의 안내를 받아 피신한다.
오삼봉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하기를 희망하고 공허는 같은 혈청단원 배영범과 오삼봉을 만주로 안내한다. 그러나 압록강변에서 그들 일행이 노출되자 공허는 둘을 피신시키고 방패막이가 되어 총을 맞고 죽는다.
* 20만명을 실은 유형 열차
윤철훈은 열성 당원 차은심과 결혼하여 관동군 기지인 장훈에 침투하여 사진관을 운영하며 관동군에 대한 첩보 활동을 한다.
윤철훈의 동생 윤선숙네 가족과 그 일대에 살던 조선족 1천 6백여명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다. 조강섭은 이동 중 부당한 대우에 대해 12명의 대표자와 함께 소련군에 시정 요구하다 행방불명이 되고, 그의 아내 윤선숙은 졸지에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동 중에 시어머니가 혹한과 허기에 죽게 되자 눈장례를 치르는 아픔을 겪는데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많은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그렇게 죽게 되자 눈으로 봉분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던 것이다.
* 국경산악에 삭풍은 불고
일본군의 만주독립군에 대한 토벌 작전은 1934년부터 3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동북항일연군이 그 세력을 확장하자 막대한 병력을 토벌에 투입한다.
방대근은 항일연군 제1군 제3사 사장을 맡고 이광민은 제3사 2단장 직책을 맡으며 보천보전투로 항일연군의 사기를 높인 김일성은 제2군 제6사의 사장을 맡았다. 필녀 및 수국이와 오삼봉은 후방대에서 활동하였다.
* 타국의 저승길
하와이 이민자들의 좌장 구상배는 이민온 지 33년만에 폐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몇 십 년이 지나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늘 한결같았던 그들은 서로 믿고 의지해왔으나 타국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현실에 방영근은 마음이 아프다. 결국 구상배는 사망하며 방영근이 농장 조장으로 선출된다.
* 어디 계시옵니까?
공허스님의 소식이 끊기자 차득보와 운봉스님은 만주 길림성 지삼출네 마을을 방문하여 그간의 소식을 알게 된다.
차득보는 동생이 연모하는 사람을 찾아 만주까지 와서 뜻을 이루고 목숨 걸고 싸움터로 뛰어든 것에 대해 놀라워하며 가슴 뿌듯해 한다.
손판석은 아들 손일남이 재단 기술자로서 수입이 좋아지자 이리로 이사하여 안주한다. 보름이네는 삼봉이의 혈청단 사건으로 수배되자 홍씨 집으로 피신한다.
11권
* 위장 전향
정상규는 만석꾼이 되지만 대부분의 다른 지주들이 그러하듯 소작인들을 몰아세우는 못된 지주였다.
민물새우 알 젖을 장만하기 위해 소작인들의 아내를 내몰아 새우잡이 사역을 시키고 자린고비 짓을 하며 아들들의 교육비조차 아까워한다. 그의 큰아들 정방현은 대학에 못 가게 되자 술주정꾼이 된다. 알거지가 된 정재규는 동생에게 소작인 부칠 논을 부탁하나 거절당하고 들녘에서 객사한다. 많은 악법들이 나오면서 사면초가에 직면한 정도규, 유승현은 위장 전향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사십오세였다.
* 쌀밥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천산산맥 부근의 타슈켄트 황무지에 강제 이주당한 조선아이들과 노인네들이 물이 달라지면서 생긴 풍토병에 의해 줄줄이 죽어갔고 윤선숙의 아들도 죽게 된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살라는 식으로 황무지에다 내다버린 것이었고 이에 분노하여 관에 항의했던 대표들이 기차에서처럼 종적이 묘연해졌다. 소련정책에 대한 반동행위라는 죄목이었다. 또한 고려인은 10년 동안 이 지역을 벗어날 수 없는 금족령이 내려졌다. 그들은 배급받은 잡곡으로 근근이 배를 채우고 날마다 개간이라는 중노동에 시달리며 감시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려 힘쓴다.
윤선숙은 아리랑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경찰의 신문을 받고 아리랑의 금곡령이 내려진다. 또한 식자층이나 똑똑한 사람들은 딴 곳으로 이송되었다. 죄목은 일본스파이거나 소비에트 정부를 반대한 반동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풀 죽고 맥 빠진 채 첫 농사의 가을걷이가 끝나고 집집마다 쌀이 분배되었다. 쌀밥을 받은 윤선숙의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윤선숙은 목이 메어 밥을 떠 넣을 수가 없었다.
* 제 3세대의 얼굴
박건식의 작은아들 박용화는 광주 사범학교에 입학하여 유기준과 함께 자취하며 일본인 검사 아들의 가정교사로 고학하며 방학에도 집에 가지 못한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간 유기준의 책꽂이에서 "사회주의와 조선혁명"이라는 인쇄물을 발견하고 한방에서 까맣게 자신을 속였다는 배신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잠시 가정교사집 주인인 이시하라한테 제보해서 대학가는 기회를 삼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이시하라의 딸 에이코는 신년휴가로 부모가 일본에 간 틈을 타 박용화를 유혹하여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 입속의 노래
일본군의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 포위작전은 만주 항일연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일본군 보급부대를 공격하던 이광민은 총상으로 사망하며 많은 항일군이 일본군에 투항하는 등 항일군부대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송가원은 사령부의 결정에 따라 자신이 맡고 있는 수용소의 환자들을 투항하도록 권유한다. 투항을 역이용해 환자들을 살리자는 계획이었다. 어차피 투항자들이 계속 생겨나 지켜야 할 기밀도 없어지는 형편이기도 했다. 옥비는 하산하려는 대원들에게 타향살이와 아리랑을 들려준다. 적에게 에워싸이다시피 하고 있는 유격투쟁에서 노래 소리가 퍼져 나가지 않게 가까이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만 들릴 수 있도록 부르는 낮고 가늘어 더욱 애절하고 서러웠다.
* 그들은 그렇게 속았다
나만석 등 만척회사의 꾀임으로 만주로 이민을 떠난 조선인들은 하얼빈에서 서쪽으로 3백여리 떨어진 더 넓은 벌판에 내려진다.
총독부 정책을 대항하는 만척회사에서는 3차 농업이민 1만 1천호 모집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 2백 가구는 목포와 신안일대 그리고 정읍과 고창일대에서 모집된 사람들이 섞인 것이었다. 그들은 가족 수에 따라 조를 배급받아 연명하며 일본군들의 감시아래 죄인과 똑같은 감옥살이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남자들은 숯을 굽는 등 품삯도 없이 강제 노역을 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정읍에서 온 한서방의 16살난 딸은 군인들에 윤간 당해 자살하며 만주로 오고부터 잠을 잘 이루지 못하던 남만석의 어머니는 밤중에 조용히 눈을 감는다.
* 변절자는 용서 말라
많은 문호인들이 친일파로 전향하면서 변절자가 된다. 잡지사 편집장 송중원은 조선의 대문호로부터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 협회 가입권유 편지를 받은 윤일랑과 함께 신세를 한탄하며 처음과 달리 마음이 변해가고 있는 사장이 친일파인 철학교수 황인곤등을 편집위원으로 임명하자 잡지사를 사퇴한다.
* 거룩한 죽음 이름없는 꽃들
관동군 제2독립수비대 사령관인 노조에 소장을 토벌대장으로 한 (만주3개년 치안숙정계획)은 1939년 10월부터 41년 3월까지 실시하며 7만 5천명의 대병력을 투입했다. 항일연군 간부들에게 막대한 현상금이 붙은 전단이 뿌려지며 항일연군은 많은 피해를 입은 채 소부대로 분사하여 일본군을 피하고 있었다. 굶주림과 피로에 지칠 대로 지친 천상길, 오삼봉, 필녀, 수국은 전사하고 방대근은 부대원들과 후일을 기약하고 총을 땅에 묻고 해산한다.
* 뿌리 뽑기
홍씨는 공허스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보름이와 그녀의 딸 금예를 거두어 집을 마련해 준다. 모녀를 거둔다고 해서 아들 동걸이를 가르치는 데는 아무 탈이 없었던 것이다.
동걸이는 공허가 지어준 이름으로 그의 성씨를 묻지 않고 가고 없는 남편의 성을 붙여 전 씨가 되었다. 홍 씨는 창씨개명으로 고심한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그 자식들은 학교에 입학을 금지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 동걸이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혼자 걱정하는 그녀에게 아들 동걸이는 전(田)자 앞에 큰 대(大)자 하나만 놓으면 된다며 통쾌하게 웃는다. 웃음소리며 웃는 모습에서 홍 씨는 공허스님의 환생을 보고 있었다. 창씨개명은 1940년 2월 11일부터 실시되었다
* 귀향의 뜻
잡지사를 사직한 송중원은 홍명준의 재판관계 자료집 발간 제의를 받으나 거절한다. 엉터리 재판기록을 책으로 만든다는 것은 잘못된 판검사들의 행위를 인정하고 동조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송중원은 큰아들 준혁이만 서울에 남기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한다. 준혁이는 농과대학을 지망하고 있으나 학비가 없어 제분 공장에 취직하고 있었다. 조선은 농민들이 가장 많고 농민을 살리는 길이 조선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있는 아들은 진학 계획을 1년 뒤로 미룬 것이었다.
귀향한 송중원은 집을 구입하고 남은 돈으로 구입한 농토와 장인 신세호가 넘겨준 농지를 가꾸게 된다. 환갑을 넘은 신세호는 술을 먹고 술에 취한 양 면사무소나 일인들의 집에 오줌을 싸고 다녀 사람들로부터 오줌대감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러나 꼭 일본 관련 벽에 오줌을 싸고 그런 그를 흉하게 생각 않고 별명 뒤에 대감이라는 말을 붙여 사람들이 존경을 나타냄에 송중원은 서글픈 장인의 저항정신을 배운다.
* 진로를 바꿔라
1년씩이나 에이꼬와 육체적 관계를 맺어온 박용화는 성적만 뒤쳐지며 그녀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곡성초등학교에 부임한다. 에이꼬의 쾌락을 충족시켜 주느라 체력만 소모하고 교육자로서 출세도 암담해져 버린 것이었다. 결국 박용화는 같은 교사인 일본인의 냉소에 자극받아 출세를 위해 다른 길을 갈 것을 결심하고 군인의 길이냐 법관의 길이냐를 두고 고심한 끝에 법관이 되기로 작정한다.
* 정인들의 열매
중일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본은 부족한 병력 준비를 보충하기 위해 군인 지원제며 징용제를 강행하게 되고 급기야 41년 2월에는 ‘내선일체정신대’라하여 소학교 6학년 졸업생 조선 어린이들 6백명을 일본의 군수공장에 보내는 결정을 하기도 한다.
부대가 해산되자 송가원과 옥비는 농사꾼으로 가장하여 마을로 들어간다. 그들은 방대근과 함께 장사꾼으로 가장하여 임시정부가 있는 중경으로 들어가 송가원은 해룡병원에 취직하였다. 그는 딸을 출산한다.
* 아사히 사진관
소련 공산당 첩보원 윤철훈, 차은심 부부는 관동군 총사령부의 정보를 얻기 위해 사진사로 위장하여 사진관을 운영한다. 일본사람들은 사진에다 그 사진을 찍은 연유와 날짜를 써 넣기를 좋아하는 유치한 취미를 갖고 있었고 윤철훈은 그들에게 그런 서비스를 해주곤 했다. 결국 장교들과 그 가족들의 호감을 얻는데 주력하고 사진을 찍으러 온 장교 및 통역관등이 예사로 흘린 말을 기억했다가 정보를 얻어내기도 한다.
또한 윤철훈은 신경역에서 밥장사를 하는 최규승과 인력거를 끄는 하서방을 포섭하여 조직원으로 활용한다.
* 악법
하시모토는 김제지역을 행정력으로 장악하기 위해 김제읍장으로 취임하며 군산 상공회의소장, 도회의원을 겸임한다.
송중원은 아이들을 모아 옛날이야기를 통해 민족의식을 깨우친다. 법망을 피해 소규모로 소학교 적령기에 있는 사내아이들만 열서너명을 골라 아침나절에 글과 산수를 집중적으로 가르쳤으나 경찰에서 중지명령을 받자 다른 방법을 궁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사상범 예방구금령이 공포되며 송중원은 구금 조치된다.
* 새로운 전쟁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했다. 일본인들은 신생강대국인 미국을 이겼다는 승리감에 들뜨고 있었다. 동경에 유학중인 전동걸은 전차에서 만난 이미화에게 조선독립을 믿어야 된다고 강조하며 그녀의 하얀 치자꽃이거나 흰도라지꽃 같은 순수함에 마음이 끌린다.
이미화도 그에게서 흡입력을 느끼며 은행의 부장자리에 흡족해 하며 황국신민이 되려고 애쓰는 아버지가 부끄러워진다. 송중원의 아들 송준혁은 같은과 친구인 최문일의 소개로 고등학교부터 일본으로 유학온 거부의 손자 김민근의 가정교사로 고학 한다.
* 세 가지 풍경
정상규가 정도규에게 아들의 취직을 부탁하나 정도규는 대학진학을 권유하며 거절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대학에 보내지 않으려 함을 알게 된 아들 의현은 논문서를 훔쳐 달아나고 정상규는 분노하여 쓰러진 후 반신 불구가 된다.
정도규는 위장 전향을 속이기 위해 유승현과 미곡상을 동업하며 고서완은 조선의 민족혼을 고취시키는 내용을 게재한 "성서조선" 사건으로 구금된다. 성서조선은 월간지로서 김교신이 내세운 민족종교론의 실천을 위해 발간해 왔던 것이다.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기독교의 민족 종교화 정신은 결국 조선의 독립에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 강제 징용
보름이의 작은딸 금예는 홍씨의 머슴 배필용에게 강압적으로 몸을 뺏기고 그와 결혼하게 된다.
배필용은 애기중으로 절밥을 얻어먹다 파계하고 거렁뱅이하던 중에 공허스님이 거둬 홍 씨에게 데려 왔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한 지 한달후에 배필용과 김춘배의 아들 김장섭은 징용을 당해 일본 시모노세키로 끌려간다. 배필용은 정을 맘껏 다 풀지 못한 아내와의 이별이 서러웠고 아무래도 아내의 마음이 변해 버릴 것만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 하와이의 지원병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하와이 일본인들은 재산동결령과 함께 출국금지령이 내려지며 사면초가의 고립상태에 빠진다. 일본사람들의 보호와 협조아래 암약해온 스파이들의 활동 때문에 일본이 진주만 군함들을 일시에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임시정부에서 광복군을 창설하고 광복군을 모집하게 되자 하와이 이민 2세들은 광복군에 지원한다. 방영근은 아들이 나이가 어려 지원 자격에 미달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지원을 권하기가 난처해진다.
* 결의
동경제대 법학부에 입학한 박용화는 광주사범학교시절 농락당했던 가정교사집 딸 에이꼬를 찾아 성적인 복수를 한다. 전동걸은 사회주의 혁명 실천을 위한 비밀조직인 사혁회에 가담한다. 같은 회원인 일보인 지요꼬의 자기에 대한 색다른 감정으로 이미화와 그녀를 비교하기도 한다. 이미화는 만나면 아늑하고 푸근한 여자였고 공장노동자의 딸인 지요꼬는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은 동지였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 그 까닭
남만석, 김진배 등 만주에 이민 온 조선인들은 일본 경비대의 감시 하에 숯구이 등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중국인들에게는 일본의 주구라며 핍박을 당한다.
조선인 처녀들은 일본 불량배들에게 납치되어 군인들에게 넘겨지기도 한다. 김진배의 큰딸도 그들에 납치되어 행방불명이 되었다. 만척에서 굳이 중국 사람들의 농토를 빼앗아 조선 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게 한 것은 그들의 군량미로 쌀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밭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는 중국 사람들을 몰아내고 논농사가 많은 전라도와 경상도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속여 강제이민을 시켰던 것이다.
* 신탁 통치설
중경의 임시정부에서는 종전 후 조선에 대한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신탁통치설"에 반대하는 집회를 한다.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이 각자 가진 이념을 초월하며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방대근은 비밀감찰 대장의 직책을 맡는다. 중경에 잠입하고 있는 첩자나 밀정들을 색출해 내는 것이 그 조직의 임무였다.
12권
* 승자와 패자
원산에서 지하노동운동을 하던 최현옥은 원산 경찰서 형사계장 양치성에게 갖은 고문과 함께 성 고문을 당하고 끝까지 조직의 비밀을 지킬 자신이 없어진 최현옥은 벽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하여 비밀을 지키는 방법을 택한다.
양치성은 그간의 공적으로는 벌써 경찰서장이 되었어야 하나 조선인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경찰서장이 되질 못한다.
* 두 여자
지요꼬는 전동걸에게 조직원이 아니 남자로서 애정을 느끼며 이미화에게 그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미화는 전동걸의 생일을 맞아 책과 함께 빨간 장미를 수놓은 하얀 손수건을 선물한다.
* 인간 사냥
일본 징용부대인 노무보국회에서 사냥식 마구잡이로 징용자를 끌어들인다. 그와 같은 마구잡이식 징용자 색출에 차득보 및 정상규의 큰아들로 그의 아버지가 죽자 만석꾼이 된 정방현 등 3백명이 붙잡힌다. 그러나 그들 중 정방현 혼자만이 풀려난다. 그는 고액납세자였고 전쟁후원금을 내는 후원자였던 것이다.
* 정복되지 않은 혼
대동아전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자 징병자들의 만수무강을 비는 천인침이 유행한다.
1944년부터 시행하려던 징병제가 전쟁의 확대와 계속되는 전사로 병력이 모자라게 되자 1943년 8월부터 실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죄명도 형기도 없는 죄수로 전주형무소에 수감 중인 송중원은 큰아들 송준혁에게서 어엿한 성인의 모습과 함께 대견함을 느낀다.
자신이 허탁과 함께 고학을 할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아들이 고학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잊으리라 생각한다.
전동걸은 어머니 홍 씨의 부탁으로 금예의 아들에게 배제일이라 작명해 주자 기뻐하는 어머님의 모습 뒤에 감추어진 외로움을 느낀다. 그는 하계 방학을 마치고 이미화와 함께 동경에 간다.
사혁회에서 학병을 피해 탈출하자는 의결이 이루어지고 전동걸은 지요꼬와 함께 만주 조선의용군을 찾아가기로 결정한다. 그는 떠나기 전 이미화와 밤을 보내고 살아서 돌아오겠다며 헤어진다.
* 학병의 파장
총독부에서는 대학, 고등학교까지 일제히 징집영장을 발급하며, 중추원에서는 학병 불지원자는 휴학시켜 징용키로 결정했다.
학도지원병이란 지원은 허울 좋은 장식일 뿐이었다. 정도규, 유승현은 점조직을 통해 학도병 대상자를 지리산으로 피신시킨다.
학도병으로 통고받은 송준혁은 운봉의 도움으로 자살하는 유서를 남기고 가출로 가장하여 지리산으로 피신한다.
한편 박용하는 학병 입영날짜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그대로 교사 생활을 했더라면 어머니가 괄시당하고 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고 자신도 사지로 끌려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지만 입영날짜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모친 반월댁은 큰며느리로부터 구박 받으며 천인침을 뜨러 다닌다.
* 종군위안부들의 행로
복실이와 순임이는 종군위안부 모집인의 꾀임에 속아 위안부로 팔려나간다. 남자들이 다 군대에 나갔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며 매달 30원씩 노임을 준다며 꾀였던 것이다.
복실이와 순임이는 중간에 머무른 부산 수용소에서 아무도 모르게 잡혀온 처녀들이 예닐곱이나 된다는 사실에 놀란다. 공장에 간다는 말이 앞뒤가 안 맞음을 깨닫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그들은 오사카와 시모노세끼로 끌려가 하루에 5-10차례 군인들을 맞이해야 했고, 복실이는 사이공을 지나 랑군으로 끌려갔다.
* 해바라기 군상
민동환, 홍명준, 박정애 등이 친일로 돌아선다. 홍명준은 일본인과 사돈을 맺으며 박정애는 국민총력연맹 지부의 간부가 된다. 민동환은 내선일체 정책에 호응했다는 이유로 국민총력연맹으로부터 표창을 받고 감격스러워 한다.
* 당신은 아는가?
홍 씨는 공허스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보름이와 그녀의 딸 금예를 거두어 집을 마련해 준다. 모녀를 거둔다고 해서 아들 동걸이를 가르치는 데는 아무 탈이 없었던 것이다.
동걸이는 공허가 지어준 이름으로 그의 성씨를 묻지 않고 가고 없는 남편의 성을 붙여 전 씨가 되었다. 홍씨는 창씨개명으로 고심한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그 자식들은 학교에 입학을 금지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 동걸이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혼자 걱정하는 그녀에게 아들 동걸이는 전(田)자 앞에 큰 대(大)자 하나만 놓으면 된다며 통쾌하게 웃는다. 웃음소리며 웃는 모습에서 홍씨는 공허스님의 환생을 보고 있었다. 창씨개명은 1940년 2월 11일부터 실시되었다
*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사할린 탄광촌에 끌려간 김장섭 등 조선인 징용자들은 배고픔에 시달리며 하루에 12시간 이상의 채탄작업을 해야 했다. 탄광의 밥도 쌀은 찾아볼 수 없는 잡곡밥이거나 콩밥이었으며 국은 묽게 푼 다시마 국이었고 단무지 한쪽은 나오다 말다 제멋대로였다.
막노동에 못 이겨 김장섭의 막사 노무자 2명이 도주하지만 곧 잡혀온다. 십장이 갖은 폭행을 하며 동료 노무자들에게 구타를 강요한다.
총독부에서 각지의 성당을 군대용으로 강압접수하고 신부와 신학생들을 노무자나 군인으로 끌어가게 되자 노무자로 끌려온 대전성당의 신부였던 심기헌이 항의하며 차라리 자신이 대신 맞겠다고 한다. 도망했던 노무자를 대신하여 구타당한 그는 독 감방에 갇힌 지 사흘 만에 풀려나게 되나 사망하게 된다.
* 거짓말의 현장
학도병으로 징병된 박용하는 미얀마전투에 투입된다. 연합군의 폭격에 맥을 못 쓰는 일본군을 보고 무적의 황군은 거짓말이며 일본은 형편없이 지고 있음을 깨닫고 배신감과 절망감을 느낀다.
위안소에서 복실이를 만난 그는 가슴 저리는 아픔과 함께 분노를 느끼며 최초로 피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걸 어서 반 만리
지요꼬와 부부로 행세하며 경찰들의 검문을 피해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에 입대한 전동걸은 3개월간의 강도 높은 군사 훈련을 마치고 전투요원이 되며 지요꼬는 선전부에 배치된다.
지요꼬의 합류로 조선의용군에 일본여자가 둘이 되었다. 한 대원은 초창기부터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 음모, 음모
일본이 군용위안소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만주를 침략한 직후인 1931년이었다. 그때는 유곽에서 몸을 팔던 여자들을 모아 데려갔으나 중일전쟁이 터진 1938년 일반처녀들 1백여명으로 일본군이 육군위안소를 개설하면서 일본군은 낭인패들과 조선의 친일파 매춘업자들을 동원해 “돈벌이 좋은 공장에 취직 시켜준다”, “여접원을 하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 는 등의 거짓말로 사기극을 벌이며 처녀들을 군용위안부로 끌어갔다. 그러다가 1941년 7월 조선총독부와 일본군이 직접 나서 종군위안부로 끌어가려고 여자사냥을 시작하고 정신대 문제로 민심의 동요가 심각해진다.
일본은 가급적 도회지와 중류층 이상은 피하면서 비밀리에 실시하여 민심의 동요를 최대한 막으라는 지시를 각 도청에 하고, 이런 연락을 받은 하시모토는 변두리 지역의 하층민을 중심으로 정신대의 대상이 되는 딸을 가진 집들을 사오십가구 조사하라고 총무과장에게 지시한다. 상점에서 도둑질 한자 등을 협박하여 그의 딸들을 정신대로 끌어갔다
* 패전의 길
파라오에 위안부로 끌려간 순임이는 연합군의 계속되는 폭격으로 산으로 피신한다. 순임이네 일행은 열셋에서 다섯으로 줄어 있었다. 그들은 이제 도마뱀과 쥐도 잡아먹었다. 열사흘째 되는 날 순임이는 폭격을 당해 죽는다. 연합군이 상륙하자 많은 학도병들이 영국군으로 탈주한다.
* 아이누족의 온정
차득보네가 징용으로 투입된 곳은 북해도의 도로 공사장이었다. 도주하다 붙잡힌 두 명의 노무자는 감독의 강압에 의해 다른 노무자들이 던지는 돌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잃는다. 각목으로 급조된 십자가에 매달린 그들은 까마귀의 밥이 되어 사람의 형체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도망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오로지 공사가 끝나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도로공사가 끝마무리되면서 노무자들은 실망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옮겨갈 곳이 탄광이라는 것이었다. 차득보는 절대로 탄광까지 끌려가지 않을 작정을 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저녁 공사장을 탈출한다. 그리고 아이누족 마을로 도주하여 그들의 도움으로 조선인 강상호를 만나 피신하게 된다.
* 신세벽
학병을 피해 지리산에 들어온 학생들을 화전민들의 거처를 따라 10명을 단위조직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실시하고 있는 것은 사상학습이었다. 학습하고 토론하는 날들이 쌓이면서 그들은 사회주의자로 변모하여 가고 있었다.
피아골의 송준혁이 그런 전형적인 예였다. 그들의 생활규범과 질서를 제시하고 지도하는 총책은 이현상이었다. 한편 평양사단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학도병들이 훈련소를 탈출하여 항일 게릴라전을 전개하려고 계획했다 발각되어 70여명이 검거되는 평양사단 사건이 발생했다. 소작인들을 징용과 징병으로 엄청나게 끌어갔기 때문에 1944년에 농사를 짓지 못하고 놀리는 논이 50여정보로 집계 되었다. 일제는 부족한 전쟁물자의 보충을 위해 식량영단을 통해 무제한 공출을 실시한다.
* 허깨비 군대
사진관을 운영하며 관동군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하던 소련 첩보원 윤철훈은 발각되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고 부인 차은심과 아이들은 하얼빈으로 도주한다. 그는 고춧가루 고문, 전기고문 등을 당하고 인체실험장으로 끌려간다.
* 해방 그리고 비극
지삼출의 아들 지만복은 마흔하나인 나이에도 불구하고 징병으로 끌려간다. 그동안 만주의 조선 사람은 선만일여의 정책에 따라 일본이 좋은 대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는 송화강 건너 하얼빈 외곽지역에 있는 훈련소로 끌려갔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낙오되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하며 어린 자식들 때문에 개죽음을 할 수 없다고 다짐했다. 마침내 소련군이 8월 8일을 기하여 일본에 선전포고를 함과 동시에 소만국경의 관동군들은 그 어느 부대나 이들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소련군의 포로가 된 지만복은 중대원들과 함께 아무르강(흑룡강)을 건너 소련 땅을 밟으며 집들이 있는 동쪽하늘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그러나 높푸른 하늘엔 흰 구름이 무심히 떠가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남만석네 집단 부락에서는 뜻밖의 외침에 놀라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왜놈덜이 다 없어졌다! 왜놈덜이 다 도망갔다아!" 집집마다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사무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일본군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만주 경찰들도 없었다. "우리도 얼렁 고향 찾아 가자아!"누군가가 힘차게 외쳐댔다. 이튿날 아침에 남자들은 자식이 군대에 끌려간 집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의논했다. 결국 다 같이 떠나기로 했다. 1백가구 6백여명의 행렬이 한 20리쯤 걸었을 즈음이었다. 저 왼쪽에서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외치며 손에는 연장 같은 것들을 들고 있었다. 그건 중국 말들이었고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여러 가지 연장이었다. 「다들 짐 내려! 우리가 저놈덜을 맡을 것 잉게, 여자덜언 새끼덜 델꼬 저짝으로 내빼!」나이 제일 많은 남자가 서쪽을 가리켰다. 중국 사람들이 100여 미터도 못되게 가까워져 있었다. 처절한 비명 속에 피가 튀는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여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광막한 벌판 쪽으로 기를 쓰며 도망가고 있었다. 그들은 압록강과 두만강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남자들이 거의 다 쓰러져 갈 즈음 여자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끝없는 광야 저쪽에 점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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