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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줄기를 찾아서/전북의산 산행기

천반의 명당을 가진 천반산과 용담호 제1조망대인 성주봉

by 두타행 2012. 5. 21.

 

天盤, 人盤, 地盤 가운데 天盤의 명당을 가진 天盤山(646.7)과 용담호 제1조망대인 聖主峰(460.8)
【전북 진안군 상전, 동향, 장수군 천천】

 

☞ 일  시 : 2005년 3월 13일 (일요일)
☞ 날  씨 : 맑은후 눈
☞ 같이 오른 사람 : 단독산행

 

☞ 산행지 교통이용편【자가용 이용】
 ▶ 갈 때 : 전주→26번 국도를 따라서 진안으로 진행→장계방면으로 진행→내오천→외오천 삼거리에서 좌회전→상가막→하가막→가막교→가막골 천반산 들머리
▶ 올 때 : 성주봉 산행을 마치고 상전면 월포리에서 진안으로 이동(30번 국도)→전주(26번 국도)

 

▶ 주요 산행 코스 :
▣ 천반산 : 외딴집 - 안부 - 두 번째 이정표 - 천반산 성터 - 능선 - 천반산 깃대봉 - 노송이 있는 바위전망대 - 천반산 성터 - 가막골 1.2㎞지점 - 외딴집
▣ 성주봉 : 상전면 망향의 동산 - 쉼터 - 약수터 갈림길 - 성주봉(원점회귀)

 

☞ 산행 소요 시간 : 천반산 3시간 10분, 성주봉 1시간 35분
※ 중식 및 휴식시간 포함
☞ 산행 거리 및 구간별 시간 : ㎞
- 10:20  전주출발
- 11:40  가막골 천반산 입구 도착
- 11:50  산행시작(외딴집)
- 11:55  첫 번째 이정표(가막입구0.3㎞, 장전입구4㎞, 죽도3.2㎞, 천반산2.4㎞, 송판서굴2.0㎞, 성터1.2㎞, 할미굴0.6㎞)
- 12:20  두 번째 이정표(장전입구3.7㎞, 죽도2.5㎞, 천반산1.9㎞, 성터0.7㎞, 가막입구0.7㎞, 할미굴0.16㎞)

- 12:35  세 번째 이정표(한림대터0.1㎞, 죽도2.8㎞, 성터0.3㎞, 할미굴0.6㎞)
- 12:40  천반산 성터(죽도2㎞, 가막골입구1.4㎞, 송판서굴0.8㎞, 할미굴0.9㎞, 천반산 정상1.2㎞, 장전마을입구2.8㎞)
- 13:15  천반산 정상(장전마을1.6㎞, 성터1.2㎞, 가막리2.7㎞, 죽도3.3㎞, 송판서굴2.1㎞)
- 13:15 ~14:00 중식 및 휴식
- 14:00  천반산 정상 출발
- 14:05  노송이 있는 바위전망대
- 14:30  천반산 성터
- 15:00  천반산 산행완료(외딴집)
- 천반산 산행을 마치고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로 이동
- 15:45  상전면 망향의 동산(산행시작, 성주봉1.6㎞, 용두봉2.6㎞)
- 16:17  첫 번째 이정표(성주봉400m, 약수터90m, 용두봉1.4㎞)
- 16:20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
- 16:30  성주봉 정상(용두봉1.8㎞, 망향의동산1.6㎞, 금지저수지4.2㎞)
- 17:00  약수터
- 17:20  망향의 동산(산행완료)
- 18:30  전주도착

 

♣ 참고사항 및 구간별 설명
【지도】 1:50,000지형도,  도엽명 : 진안
【전체개요】
 - 천반산은 동쪽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錦江의 본류와 구량천이 천반산을 끼고 흐르며 능선길에서 구량천을 내려다보면 아찔함이 그 비경을 더해주고 들머리를 제외하고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 특별하게 독도에 주의해야될 구간은 없으며 천반산 정상에서 죽도와 장전마을로 하산할 수가 있다.

 

- 또 원점회귀 산행으로 4시간 정도면 충분하며, 산행을 마치고 바로 옆에는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가막골유원지가 있어서 가족단위의 휴양지로서도 제격이다.

- 성주봉 : 성주봉은 일반 산행보다는 가족단위의 산책코스로 어울리며 진안군에서 수몰된 용담호를 조망할 수 있도록 개설한 코스이며, 용두봉까지도 연계 산행을 할 수가 있고 사방으로 용담호, 덕유산, 구봉산, 적상산, 운장산, 마이산 등 조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원점회귀 산행으로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들머리 찾기】
- 가막골 천반산 들머리 찾아가는 방법은 26번 국도상인 진안읍 외오천 삼거리에서 진안방면에서 오면 좌회전, 장계방면에서 오면 우회전하여 상가막 하가막마을을 거치면 가막교가 나오며, 가막교 직전에서 좌측은 가막골유원지로 가는 길이며, 천반산 들머리는 가막교를 건너서 50여m 직진하면 장수명륜학당이라고 쓰여진 간판이 있는 곳에서 좌회전하여 좁은 시멘트길을 따르면 당집을 지나 천반산 들머리인 파란색 지붕의 외딴집이 나오며 외딴집 왼쪽으로 오르거나 정면 임도를 따라서 오를 수가 있다. 가막교에서 외딴집까지는 대형버스는 진입이 불가능하며 외딴집 근처에 소형차량도 5~6대 정도만 주차가 가능하다.(가막교에서 좌측으로 보면 당집과 외딴집이 보임)

 

- 성주봉 들머리는 진안에서 무주방면으로 진행하다보면(30번 국도)상전면 수동터널과 토지가든을 지나면 월포대교가 나오며 대교 바로 건너서 좌측에 상전면 망향의 동산이 있는데 이 곳이 성주봉 들머리이며 대형차도 주차가 가능하다.

 

【천반산 : 파란색지붕 외딴집 - 두 번째 이정표 - 천반산 성터 - 천반산 정상】
- 가막골 천반산 들머리는 파란색지붕 외딴집에서 왼쪽으로 난 등로와 정면 임도를 따라서 오를 수가 있으며, 외딴집 왼쪽으로 오를 경우 임도를 조금 따르면 첫 번째 이정표를 만나게 되고 이후 약간은 가파른 주 등로에 올라서게 되며, 두 번째 이정표부터는 정상까지 대체적으로 완만한 능선길을 걷게 되며, 천반산 성터를 거쳐서 천반산 깃대봉에(정상) 도착하게 된다.

 

- 하산은 죽도 방향과 장선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있고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며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서 특별히 독도에 주의해야 될 구간은 없다. 외딴집 입구에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성주봉 : 상전망향의동산 -쉼터 - 약수터 갈림길 - 성주봉】
- 상전망향의동산 오른쪽에 있는 이동통신 철탑으로 쪽으로 오르면 되며, 이정표나 표지기 등이 없지만 길을 잃을 곳은 없으며 등로도 아주 좋다. 등로가 완만해 어린아이를 동반한 산행코스로서도 아주 좋으며, 용두봉까지도 연계산행이 가능하다. 또 용담호의 조망과 사방으로 조망이 아주 훌륭한 곳이다.

 

[식수구하기]
- 천반산은 산행전 당집이나 외딴집에서 구할 수가 있으며 그 외 구할 수가 있는 곳은 없으며, 성주봉은 성주봉 가는 길에 약수터가 있는데 식수로서 적합한지 음용수에 대한 안내문이 없어서 미리 구해서 산행에 나서는 것이 좋다.

 

[숙박]
- 천반산이나 성주봉 산행시 숙박은 진안읍에서 할 수가 있으며 성주봉 바로 옆에는 홍삼찜질방과(숙식 모두 다 가능)민박집이 있다.

 

[찾아가는 방법]
▣ 천산반
- 자가용 이용자 : 진안읍을 경유해서 올 경우 26번 국도상인 외오천 삼거리에서 좌회전, 장계면을 경유해서 올 경우 외오천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726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상가막→하가막→가막교 건너서→장수명륜당학당쪽으로 좌회전→당집→파란색지붕 외딴집
- 택시이용 : 진안읍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 버스편 : 진안읍에서 06:10, 08:10, 15:35 군내버스 이용

 

▣ 성주봉
- 자가용 이용자 : 진안읍→무주방면으로 진행(30번 국도)→상전면 수동터널 →토지가든→월포대교 건너서→상전망향의 동산
- 택시편 : 진안읍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 버스편 : 진안읍에서 안천면 가는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 천반산, 성주봉 나들이 ♬
토요일 휴무가 주어지는 주에는 늦장을 부리기 일쑤이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멀리 나서지가 않고 오히려 가까운 산행지를 선택하니 여유 탓일까 좀 게으른 탓일까
지도를 뒤적이다. 진안군 동향면과 상전면 그리고 장수군 천천면의 경계에 있는 천반산으로 정하고 나니 산을 오르는데 소요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아 서운한 생각이 든다. 마침 몇 개월 전부터 점찍어 놓은 진안군 상전면의 성주봉을 시간이 나면 오르기로 하고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산행지로 가는 길에 주유를 하고 날씨가 좋아서 한 동안 못했던 세차까지 하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진안으로 향한다.
진안을 경유하여 내오천을 지나 도토리묵으로 유명한 원촌도토리묵집앞에서(외오천삼거리)좌회전하여 상가막을 지나 하가막 마을에 차를 세운다.
가막리 마을은 그리 큰 동네는 아니지만 과거에는 산간오지의 마을이나 다름이 없었으나 도로가 포장이 되고 금강의 상류가 흐르고 있는 가막골유원지가 있어서 여름철 피서지로 사람들이 많아 찾는 곳이다.
들머리가 어디인지를 몰라 이리저리 찾다가 가막골 유원지 쪽으로 내려가 보지만 아니다. 다시 되돌아 와 가막교 입구에 세워져 있는 등산안내도를 보지만 좀처럼 어디인지를 찾을 수가 없다. 다시 지도를 펼쳐 놓고 자세히 보니 가막교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들머리와 천반산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막교를 건너서 장수 명륜학당쪽으로 조금 가니 옆에는 수백 년 된 고목이 숲을 이루고 마을의 安慰를 위하여 당할머니께 제사를 지내던 당집이 나오며, 당집과 당할머니는 천천면 연평리 신기마을의 팽이바위와 신기마을 아래의 논밭과 연관이 있으며, 또 봉황대의 석벽에 있는 소나무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남쪽 산기슭에는 할머니가 기거했다 하여 할머니굴이라고 한다.
마침 사람이 나 오시 길래 들머리를 여쭈어봤더니 바로 옆 파란색지붕의 외딴집이란다.
11시 40분 파란색지붕 외딴집
3~4대의 산님들의 차가 주차되어 있고 주차공간이 없어서 어렵게 차를 주차시키고 산행준비를 한다.
들머리가 쉽게 눈에 들어오며 외딴집 왼쪽으로 해서 산행길에 나선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가막골 금강 상류에는 녹지 않은 얼음들이 눈에 띤다.
넓은 길을 따라서 5분 정도 걸으니 첫 번째 이정표가 나오고 사람들한테 잘 알려지지 않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표지기가 더러 달려 있다.
첫 번째 이정표에서 길을 오른쪽으로 꺾이면서 본격적인 등로로 접에 들게되고, 나무계단이 놓여져 있으며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가파른 탓에 안전로프가 약 50여m 설치되어 있다.
12시 20분 두 번째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능선이다.(약 540m)
여기서부터 정상으로 가는 동안 천반산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구간이며, 왼쪽으로는 물줄기와 맞닿는 斷崖를 이루고 있으며, 왼쪽은 금강 제1지류인 구량천은 무주 안성에서 발원하여 양악천, 수침천, 상노천의 물줄기와 합수되어 천반산을 지나 竹島를 경유하여 용담호에 흘러들고 오른쪽 물줄기는 장수 수분재에서 발원하여 금강 본류로서 용담호를 통해 금강하구둑으로 흘러간다.
이 기나긴 물줄기들은 굽이쳐 흐른 동안에도 산줄기들을 넘지 않고 서로를 아우르면서 그 맥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아름다운 능선길이 이어지며 12시 35분 세 번째 이정표를(약 560m) 만나게 되고 여기서 10여분 가면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翰林臺가 있다.
이곳은 옛날 선비들이 學問을 논하던 곳이다. 등로 주변에는 참나무들이 아주 많다.
12시 40분 왼쪽으로 무명묘지가 있으며 묘지주변이 아주 넓다.
한 분의 산님을 만나게 되고 무명묘지 지나서 가막골 입구 1.2㎞라고 쓰여진 이정표를 지난다. 등로에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고 갑자기 春雪이 내린다.

 

◈ 죽도와 정여립
용담호가 조성되기 전 진안에서 무주 방향으로 8㎞쯤 달리면 상전면 수동리 내동마을의 竹島라는 곳이 있었다. 깎아 세운 듯한 기암절벽을 청류가 휘감아 돌고 북쪽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錦江의 물줄기에 휩싸여서 마치 섬과 같고 산죽이 많아서 竹島라 했다.
선조들이 지명을 지을 때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죽도는 용담댐 건설로 인해 담수가 되면서 이름 그대로 육지 속의 섬으로 변하였다.
죽도는 남쪽의 장수의 연평천과 동쪽 무주 덕유산에서 흘러오는 구량천이 합수된 곳이다.
정여립은 1589년 선조 때 1천여명에 달하는 기축옥사의 주인공이며, 역적으로 누명을 쓰게 되었다. 이로 인해 호남 땅은 반역의 땅으로 전락되어야한 했던 비극의 현장이기도 한다.
동서만록에 의하면 정여립은 평소에 죽도를 자주 찾아서 죽도선생으로 불렸다. 더구나 역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죽도로 피난간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죽도의 비경에 반하여 놀러왔다가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자살로 조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제라도 때를 잘못 만나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사라진 정여립과 왜곡된 歷史는 반드시 재조명되어야겠다.
그리고 섬이 아닌 육지의 섬으로 변해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피서지이자 천혜의 관광지인 죽도, 특히 정여립이 칩거했다는 찬바람이 나오는 송판서굴, 형제바위, 넓은 모래사장과 자갈밭 그리고 천연기념물 쏘가리가 옥류속에서 노닐던 곳은 이제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12시 00분 천반산 성터(575.8m)
먼저 와 계신 산님들과 인사를 나눈다. 성터라고 하지만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며 그나마 일부 보수된 성벽이 있다.
성터에는 정상석과 천반산 안내문, 이정표, 또 쉬어 갈 수 있는 의자가 설치되어 있으며, 천반산 정상이 조망된다.
천반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도 능선길이 이어지며 왼쪽으로는 구량천과 진밭마을을 옆에 두고 걷게 되며, 가막골 쪽의 줄기는 완만한 등성이다.
13시 15분 천반산 깃대봉(정상)
먼저 와 계신 산님들이 식사를 하고 계시고 나도 식사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春雪은 그칠 줄을 모른다. 식사 후에 다른 산님이 커피를 주시는데 춘설과 어우러지니 커피의 향이 너무도 좋다.
천반산 정상에는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가 놓여져 있다.

 

◈ 산소개〔천반산은....〕
백두대간 산줄기는 전북지역에서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시작되어 대덕산, 삼봉산, 덕유산의 향적봉에서 해발 1,300m가 넘는 산줄기를 따라 파노라마처럼 서남쪽으로 뻗어가며 덕유 연봉들을 일구어 놓고 남쪽 끝자락의 남덕유산에서 진양지맥 하나를 나누어 놓고 육십령 방향으로 달려간다.
이 지맥은 서쪽으로 뻗어가며 삿갓봉을 거쳐서 두루봉, 영구산, 성주봉을 지나 삼면이 금강에 가로막힌 천반산을 솟구쳐 놓았다.
행정구역은 진안군 동향면, 상전면, 장수군 천천면에 경계해 있으며, 천반산은 하늘천(天), 소반반(盤)을 쓴다. 신기마을의 김대중씨에 의하면 산의 남쪽에 있는 가막리는 경주 鄭氏가 400년 전에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이 마을 앞 냇가에는 장독바위가 있다고 한다.
이 바위를 일명 하늘소반에서 떨어진 복숭라라고 하여 天盤落桃라 하였다.
그 뒤부터 마을의 북쪽에 있는 산에 천반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구전일 뿐 문헌이나 立證할 만한 資料는 없다.
정상주변에는 동쪽을 제외하고는 접근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지이고, 장수의 5대 명산으로 불리는 천반산은 장수의 北方을 수호하는 守門將이기도 하다.
또 천반산 성터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을 보면 산위가 소반과 같이 납작하다고 하여 이름 붙은 천반산은 남쪽은 장수에서 흘러내리는 장수천과 동쪽 덕유산에서 시작된 구량천이 巴자형으로 구입처 흐르다. 한머리 금강으로 거듭나는 것을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땅에는 天盤, 地盤, 人盤의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곳은 천반의 명당이 있다하여 천반산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한다.
천반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지세위에 정상은 약 10,000여평의 평지가 소반처럼 자리한 천혜의 요새이다. 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천반산의 물줄기는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금강 제1지류인 구량천이 금강의 물줄기에 합수되어 서해의 금강하구둑으로 흘러간다.

 

정상에서 장전마을은 북동쪽으로 진행하며, 사방으로 조망이 좋다.
안천의 지장산, 무주의 조항산, 상전의 대덕산 등이 보이고, 정상은 그런 대로 넓은 편이다.
14시 천반산 정상에서 다시 가막골 입구로 출발한다.
내리던 춘설도 그치고 날씨가 다소 좋아지고 동향면에서 상전면 넘어가는 도로가 보인다.
천반산 성터로 가는 도중 노송이 있고 바위지역의 전망대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려오고 진안의 두 마이산이 밑둥치까지 보이고 멀리는 진안의 성수산이 하늘금을 긋는다.
14시 30분 다시 천반산 성터에 도착하게 되고, 조금 지나서 가막골 1.2㎞라고 쓰여진 등로로 하산하다.
내려서는 등로는 처음 올라 온 곳과는 달리 완만한 산등성이다. 또 표지기는 별로 없지만 길이 뚜렷해 길을 잃을 곳은 없다.
잠시후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서 2백여m를 걸으니 15시 들머리인 파란색지붕의 외딴집이다.
천반산 산행을 마치고 성주봉으로 향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나가 진안을 거쳐서 30번 국도를 타고 상전면 방향으로 향한다.
상전면 수동터널을 빠져 나와서 작년 가을 한국의 산하 구봉산 모임시 뒤풀이 장소였던 토지가든을 지나면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성주봉이 눈에 들어오고 용담댐 건설로 인해 새로운 名物로 등장한 월포대교를 달린다.
대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앞에 휴게소 간판이 있고 좌회전하여 상전망향의 동산으로 올라간다.
15시 45분 잘 조성된 망향의 동산에는 전망대와 매점, 수몰민들의 애환을 담은 망향의 탑과 주차시설이 되어 있다.
이 곳 망향의 동산은 수몰이 되기 전에 상전면 월포리에서 용평리를 통해 정천면 망덕마을을 거쳐서 용담으로 갈 수 있는 도로와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도 찾아 볼 수가 없으며 검푸른 물이 歲月의 무상함을 대변해 준다.

또 성주봉 등산로는 진안군에서 改設하여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수몰민들에게 다소 故鄕의 鄕愁를 달래주고 용담호를 조망할 수 있도록 정비한 것 같다.
주차장에는 성주봉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거리도 짧지만 전문적인 산행코스라기 보다는 가족단위의 산책코스로 보면 좋을 듯하다.
또 산행구미에 맞게 용두봉과 금지저수지를 연계해서 산행을 할 수가 있다.
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이동통신 철탑이 세워져 있는 곳이 들머리이며, 표지기는 없지만 등로는 평지 길에 가깝고 좋은 편이다.
좌우로 용담호를 옆에 두고 걷게 되고 10분 정도 오르니 철봉과 의자가 설치되어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왼쪽으로는 옛 상전면 월포리와 수동리, 오른쪽으로는 상전면 용평리와 정천면 망덕, 여의곡, 모정리가 있었던 지역이다.
16시 17분 처음 만나는 이정표다
의자가 놓여져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약수터가 있고 성주봉은 직진하는 길이며, 조금 오르자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가 나오며 16시 20분 또 다시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동서 쪽으로는 대덕산이 손에 잡힐 듯 아주 가깝고 성주봉을 향해 짧은 오르막길을 오른다.
16시 30분 성주봉

 

◈ 산소개〔성주봉은....〕
성주봉에 대한 별다른 내력은 없다. 높이도 낮은 데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행지도 아니며 단지 용담호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보면 좋을 듯 하다.
백두대간 1075.6봉(영취봉)에서 분기한 금남호남정맥은 장안산을 거쳐서 전북지역으로 뻗어가면서 성수산, 마이산, 활인동치로 이어 달리다가 부귀산에서 하나의 줄기를 떨어트리게 되는데 이 줄기는 손실치와 두남치, 795번 지방도인 대목재를 거처 말목재를 지나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에 있는 성주봉(聖主峰 460.8m)에서 끝을 맺고, 성주봉의 물줄기는 바로 용담호로 흘러든다.

성주봉 정상에는 운치 있게 소나무가 드리워져 있고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지형도상에 표기되어 있는 삼각점은 확인하지 못했으며, 의자와 안전줄이 설치되어 있다.
조망 또한 용담호 제1조망대답게 사방으로 조망이 아주 좋다.

북서쪽으로는 구봉산과 복두봉에서 운장산 가는 능선길이 아주 잘 보이며 용담쪽의 봉화산, 성재, 주천의 성치산, 태평봉수대산, 명덕봉, 수몰에 잠긴 옛 정천면 모정리와 망화리 일대가 잘 보이고 멀리 새로 신설된 사근교까지 보인다.
또 북쪽으로는 안천의 지소산과 지장산 서쪽으로는 정천면 소재지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진안 성수산과 덕태산, 동남쪽으로는 대덕산, 동쪽으로는 덕유산 향적봉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고 남서쪽은 금지마을과 양지마을이다.
북동쪽으로는 적상산도 보이고 성주봉에서 내려다보는 월포대교는 아찔함과 웅장함이 더 하다.
용두봉까지 갈 생각이었으나 시간이 다소 부족하다.
성주봉에서 하산하여 약수터를 다녀온다. 약수터에는 조그마한 정자가 지어져 있지만 식수로서 적합한지 음용수 안내문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산행인들을 위해 식수적합 여부를 알리는 안내문을 비치해 두었으면 한다.
17시 약수터 갈림길
갔던 길을 되돌아 와 17시 20분 망향의 동산에 도착하게 되고 성주봉 산행을 마친다.
망향의 동산에는 과거 상전 죽도에 있던 용바위를 수몰로 인해 볼 수 없게 되자 이곳에 옮겨 놓았고 용바위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월포대교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진안을 경유해서 전주에 도착하니 18시 50분이다.

 

◈ 용바위 전설
먼 옛날 玉氏 성을 가진 삼형제가 상전면 죽도 천변에 살고 있었다. 그곳 금강변 용쏘에는 용이 살고 있었는데 승천하려고 큰 바위에 올라앉아 바위 움푹 패인 곳에 보관해 두었던 여의주를 꺼내어 입에 무는 순간 갑작스런 폭으로 불어 내린 물살에 여의주를 놓치고 말았다. 용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삼형제는 급물살에 뛰어들어 여의주를 건져 용에게 주었으나 삼형제는 안타깝게도 급류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후 용이 삼형제의 원혼을 부르는 소리가 자주 들려와 원혼을 위로하는 용쏘 1백일 기원제를 지내던 마지막 날 용은 삼형제의 원혼을 거두어 함께 승천하였다.
용은 보은의 뜻으로 용쏘 부근에 큰 바위 셋을 솟아나게 하여 삼형제의 넋을 위로하였으니 이를 삼형제 바위라 하였고, 당시 용이 앉아 있던 바위를 용바위라 이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