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꽃의 천국 - 덕유산
(안성매표소 - 칠연폭포 갈림길 - 동업령 - 백암봉 - 중봉 - 향적봉 - 백련사 - 금포탄- 삼공리매표소)
- 전북 무주군, 경남 거창군 -
☞ 산을 찾은 날 : 2006년 8월 2일(수요일)
☞ 일기는 : 맑음
☞ 같이 오른 사람 : 나 홀로
☞ 산행지 교통이용편【버스 이용】
▶ 갈 때 올 때 : 대중교통인 버스 이용
☞ 총 산행거리 : 도상 약 ㎞
☞ 총 산행소요시간 : 09:00∼17:00
♣ 참고사항 및 구간별 설명
【지도】덕유산 개념도
【전체개요】
- 덕유산에 대해서는 자료를 쉽게 찾아 볼 수가 있고 또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터라 설명을 생략하며 국립공원인 관계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등 특별히 독도에 주의해야될 구간은 없다.
♬ 頭陀行의 덕유산 나들이
네 영혼이 孤獨하거든 山으로 가라고 독일의 어떤 詩人은 노래했다.
인생이 우울해지면 산으로 가는 것이 좋다.
배낭을 메고 조용한 산길을 정다운 친구들과 같이 걸어가면 인생의 우울이 어느새 안개처럼 사라지고 만다.
삶에 지치고 생에 권태를 느꼈을 때에는 산에 오르는 것이 좋다.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산의 정상을 향하여 전진할 때에 우리는 생의 용기를 느끼고 삶의 건강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정신이 피곤하고 인생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면 산을 찾아가라.
맑고 깨끗한 山의 精氣는 우리의 정신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는다
"왜 산에 올라가는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등산가 G. 말로리는 이렇게 말했다.
왜 산에 오르는가
왜 우리는 산에 가는가.
산이 우리를 부르기 때문이다.
산은 무언의 표정으로 우리에게 정다운 손짓을 한다.
봄의 산은 연한 초록빛의 옷을 입고 수줍은 처녀처럼 우리를 부른다.
여름의 산은 풍성한 옷차림으로 힘있게 우리를 유혹한다.
가을의 산은 丹楓으로 성장하고 화사하게 우리를 초대한다.
겨울의 산은 純白한 옷차림으로 깨끗하게 단장하고 우리에게 맑은 미소를 던진다. 산은 언제나 우리를 부르고 있다.
산에는 산의 言語가 있다. 산은 몸짓으로 말한다.
큰 바위는 억센 형태로써 말하고, 잔잔한 샘물은 맑은 그림자로써 말하고 흰 폭포는 힘찬 운동으로써 말하고 푸른 草木은 빛깔로써 말한다.
나무 사이를 스쳐 가는 바람은 소리로써 말하고, 아름다운 꽃은 향기로써 말한다. 산 속의 모든 存在는 저마다 제 言語가 있다. 우리는 그 언어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偉大한 언어는 침묵의 언어다.
말로 하는 言語보다 無言의 언어, 沈默의 언어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더 풍성한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산의 언어를 듣고 새기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산은 神이 만든 冊
自然은 신이 만든 위대한 책이다.
그 책 중에 뛰어난 책이 山이다.
우리는 산이라는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악성 베토벤은 自然을 가장 사랑한 예술가였다. 그는 특히 숲을 사랑했고 숲의 나무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숲 속의 全能者여 숲 속에서 나는 幸福하다.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당신을 통해서 말을 건네 온다.
오오 신이여, 얼마나 장엄한 모습인가.
산상의 이와 같은 숲은 靜寂이 있다.
신에 奉仕하는 정적이 전원에 있을 때에도 하나 하나의 나무가 나를 향하여 찬송하라고 말해 오는 것 같지 않은가.
숲 속의 황홀한 歡喜, 이 모든 것을 누가 표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산에서 나무의 말을 듣고, 폭포의 소리를 새기고, 바위의 말을 理解하고,
꽃의 음성을 알고, 生物의 언어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산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산에 간다.
산의 침묵의 소리를 경청하기 위해서 산을 찾아간다.
산은 자연의 哲學者다. 그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얘기해 준다.
산은 우주의 敎育者다. 그는 풍부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인생의 많은 위대한 것이 산에서 잉태되었다.
인도의 심원한 철학은 히말라야의 산 속의 명상에서 나왔다.
타고르의 아름다운 시는 깊은 산의 産物이다.
괴테는 산에서 위대한 詩의 靈感을 얻었다.
동양의 많은 아름다운 詩의 故鄕은 산이다.
파우스트는 인생에 권태를 느끼고 향락에 지쳤을 때 산 속 대자연의 소박한 美와 健康한 生命을 보고 인생의 재출발하는 힘찬 용기와 활력소를 얻었다.
인간은 자연의 아들이요, 대지의 딸이다.
우리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人間이 자연을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정신의 病, 文明의 疾患에 걸린다.
산은 위대한 醫師, 現代人은 문명에 지쳐 있다.
우리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산의 정기를 마셔야 한다.
산의 정기와 침묵과 자연에 안길 때 우리는 생의 원시적 건강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서 악인이 없다.
산의 정기가 그를 착하게 만든다.
우리는 산속을 거닐 때 그 누구나 인간 본연의 착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어머니 품에 안기면 모든 자식들이 다 착해지는 거와 같다.
베토벤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러워지지 않은 자연 속에서 자기를 되찾고 나의 마음을 맑게 씻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마음의 세탁이 필요하다.
영혼의 목욕, 정신의 빨래가 필요하다.
우리 마음에 낀 때를 씻고 우리의 정신의 汚染을 정화시켜야 한다.
산의 정기로써 마음의 세탁을 하자.
낙엽을 밟으면서 말없이 산길을 걸으면 정신의 때가 자연히 씻기고 생명의 오염이 저절로 정화된다.
산은 우리의 지친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 주는 자연의 醫師이다.
산은 우리의 정신에 힘과 기쁨을 주는 宇宙의 목사다.
산은 沈默의 天才
산은 자연의 哲學者다.
그는 우리에게 인생의 많은 진리와 지혜를 가르친다.
우리는 산한테서 무엇을 배울까
산은 우리에게 침묵을 가르친다.
침묵의 힘, 침묵의 위대성을 가르친다.
"너희들도 나처럼 의젓한 침묵의 법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과 싸울 때의 陣中書翰에서 이렇게 말했다.
'淨中如山' 조용하고 무겁기가 산과 같아야 한다고 했다.
산은 침묵의 천재다.
그는 조용하고 말이 없다.
우리는 산속을 거닐면서 떠들 필요가 없다.
산 같은 침묵 속에 묵묵히 걸어야 한다.
우리는 산의 침묵을 배워야 한다.
산은 또 우리에게 장엄을 가르친다.
산은 장엄미의 심벌이다.
산은 높을수록 장엄하다.
우리는 왜 높은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가.
산을 정복하는 승리의 쾌감을 위해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산의 장엄미를 느끼기 위해서다.
나는 스위스에 갔을 때 해발 4천 미터에 육박하는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본 일이 있다.
백설이 애애한 높은 靈峰의 품에 안겼을 때 인생의 다시없는 장엄미의 황홀함을 느꼈다.
산은 신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장엄한 미다.
우리는 높은 산의 장엄한 미 앞에 설 때 압도되는 감을 느낀다.
인간의 힘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우주의 대생명력을 느낀다.
산은 조화의 극치
산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산은 우리에게 조화의 진리를 가르친다.
산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제자리에 저답게 놓여 있다.
하나도 부자연한 것이 없다.
바위는 바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샘물은 샘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나무는 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이것을 우리는 조화라고 일컫는다.
자연은 곧 조화요, 조화는 곧 미다.
인간의 행동에는 부자연과 부조화가 많지만 자연은 조화가 아닌 것이 없다.
자연은 위대한 예술가다.
산속의 그 바위, 그 나무, 그 샘물, 그 길, 그 돌멩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저마다 제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그렇게 자연스럽게 놓여 있을까.
우리는 산속을 거닐면서 자연의 위대한 조화에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질서의 천재요, 조화의 천재다.
무엇이나 자연스러운 것은 아름답고 생명이 길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름답지가 않고 생명이 짧다.
산속에서 우리는 조화의 미의 진리를 배운다.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은 법과 더불어 행동한다"고 철학자 칸트는 말했다.
법은 질서를 말한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질서 속에 움직인다.
옛날 희랍인들이 우주를 질서라고 말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주를 의미하는 희랍어의 코스모스(Kosmos)는 질서란 뜻이다.
산은 진실의 덕을 우리는 산에서 질서의 정신과 질서의 진리를 배운다.
산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우리는 산에서 진실의 덕을 배운다.
산속에서는 모든 것이 말할 수 없이 소박하고 단순하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다. 가식이 없는 세계다.
꾸밈이 없고 허영이 없다.
자연은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
산은 우리를 기만하지 않는다.
나무가 우리를 속이는 일이 없고 바위가 우리를 기만하는 일이 없다. 인간이 인간을 기만한다.
허위는 인간에 있다.
자연에는 거짓이 없다. 오직 진실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본래의 자기를 잃어버리고 거짓과 가식, 외양의 꾸밈의 차원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산속에 있을 때 거짓에서 벗어난다.
자기의 본연의 진실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산은 위대한 敎育者다. 우리를 착하게 만든다.
인간의 기교, 아첨, 술수, 거짓, 가식은 자연의 위대한 단순성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자연처럼 소박하고 단순해져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구원이다.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라고 시인 단테는 말했다.
자연은 신의 예술이기 때문에 거짓이 없다.
가짜가 없다. 진실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소박과 단순과 진실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산에는 우정이 있다.
산처럼 인간과 인간을 가깝게 결합시키는 것이 없다.
모두 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진실한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미움의 감정이 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산에 가면 모두 착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산에 간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산속에서는 미움이 없어지기 때문에 나와 너 사이에 진실한 인간적 대화가 꽃핀다.
참말의 향연이 이루어진다.
산은 인간의 한계를...
산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인간의 분수와 한계를 느끼게 한다.
산은 따뜻하게 미소 짓는 어머니의 얼굴을 가르치는 동시에 용서와 아량을 모르는 비정한 무서운 얼굴을 나타낸다.
인간이 분수를 모르고 아무 준비 없이 산에 갔다가는 무서운 난을 당한다.
산은 비정하다.
세상에 등산처럼 위험한 것이 없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난데없는 위험사태가 나고, 짙은 안개가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우리는 산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
분별과 능력과 준비가 없이 산을 대하다가는 산한테 희생을 당한다.
자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분수와 能力의 한계를 준엄하게 인식시킨다.
우리는 산과 친하되 산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산은 자모(慈母)인 동시에 폭군이다.
우리는 산의 비정을 알아야 한다.
산 앞에 겸손한 자만이 산의 벗이 될 수 있다.
나는 산의 철학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위대한 철학을 산한테서 많이 배워야 한다.
산의 침묵의 덕을 배우고, 장엄미를 배우고, 조화의 진리를 터득하고, 眞實의 정신을 깨닫고, 友情을 알고, 또 인간의 限界를 인식해야 한다.
산은 우리를 부른다
산은 우리를 정답게 부르고 있다.
한라(漢拏)의 웅자(雄姿), 내장(內藏)의 단풍, 가야(伽倻)의 계곡, 속리(俗離)의 숲, 설악(雪嶽)의 골짜기, 백운(白雲)의 바위가 철 따라 옷을 갈아입으면서 우리에게 반가운 손짓을 한다.
일에 지쳤을 때, 정신에 피곤을 느꼈을 때, 인생의 고독을 느낄 때, 삶이 메말라졌을 때 우리는 산을 찾아가야 한다.
산의 빛, 산의 침묵, 산의 정기, 산의 향기는 우리의 심정에 새로운 활력소와 생명의 건강성을 줄 것이다. 우리는 이 자연의 철학자한테서 깊은 말씀을 배워야 한다.
그는 두려우면서도 친밀한 우리의 벗이다
- 산의 哲學 中에서/안병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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