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지맥 6구간(終) - 모악지맥이 끝나는 그곳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만경읍 소재지 → 만경여자중고등학교 → 702번/지 → 대덕마을 → 관기사거리 → 진봉교 → 석소마을 → 석치마을 → 니성산(▲ 61.9) → 국사봉(× 61) → 진봉산(▲ 74.9) → ×66 → 봉화산(▲ 83.2) → 거전마을)
- 전북 김제시 만경읍·진봉·광활 -
☞ 산행일자 : 2006년 1월 21일(토요일)
☞ 날 씨 : 맑음
☞ 같이 오른 사람 : 나 홀로
☞ 산행지 교통이용편【자가용 이용】
▶ 갈 때 : 전주 716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김제로 이동 →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IC 방향 → 29번 국도를 이용하여 만경읍 소재지로 이동
▶ 올 때 : 산행을 마치고 진봉면 거전리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진봉면 석소마을로 이동 → 차를 회수하여 702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만경읍으로 이동 → 이후 갈 때의 역순 전주로 이동·귀가
※ 숫자는 도상거리, ( )안의 숫자는 소요시간
알파벳은 등로 상태(A는 아주 좋음, B는 보통, C는 나쁨)
▶ 주요 구간별 거리 및 소요시간
- 만경읍 사거리 관기사거리(702번/지) : 4.5㎞(5)/A
- 관기사거리 석치마을(702번/지) : 2.2㎞(5)/A
- 석치마을 니성산 : 1㎞(25)/A
- 니성산 국사봉 : 0.7㎞(25)/A
- 국사봉 진봉산 : 2.7㎞(1:10)/A
- 진봉산 봉화산 : 4㎞(1:20)/A
☞ 총 산행거리 : 도상 약 15.1㎞(어프로치 거리포함)
☞ 실 지맥산행거리 : 도상 약 15.1㎞
☞ 총 산행소요시간 : 3시간 40분(휴식시간 포함)
☞ 실 지맥산행소요시간 : 3시간 20분
☞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 13:40 산행시작(진봉면 석소마을, 702번/지)
▲ 14:00 진봉면 석치마을
▲ 14:10 함안이씨, 삼척진씨 합장묘
▲ 14:25 니성산(암목산)
▲ 14:50 국사봉(불목산)
▲ 15:30 진봉면 규동마을 뒤
▲ 15:40 망해사
▲ 15:50 진봉산 전망대
▲ 16:00 진봉산
▲ 16:20 안하마을 심창회센타
▲ 16:35 통정대부승정원좌부승이천서공지묘
▲ 17:00 봉화산
▲ 17:10 거전마을 참의공 가매장 안내문
▲ 17:20 모악지맥 終點
▲ 17:50 모악지맥 終點에서 머무름
▲ 18:05 진봉면 거전마을 출발
▲ 18:25 진봉면 석소마을에서 차를 회수하여 전주로 출발
▲ 19:20 전주도착
♣ 참고사항 및 구간별 설명
【지도】국토지리정보원 발행1:25000지형도, 도엽명 : 만경,심포
【전체개요】
- 이번 모악지맥 마지막 구간은 만경읍 소재지부터 진봉면 석치마을까지 702번 지방도를 따라 마루금이 이어지다가 진봉면 석치마을에서는 마루금이 마을 뒤로 이어지며 국사봉에서는 702번 지방도로로 내려선 후 도로를 조금 따른 후 지맥길은 전선표마을 뒤로 이어지며 또 망해서 입구에서 진봉산까지 산책로를 따른 후 심포마을로 내려서야 되며 다시 도로를 조금 걷다가 안하마을 심창회센터 뒤로 마루금이 이어진다.
- 안하마을 66봉 조금 지나서 이천서공지묘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야 되며(우측으로 가면 바닷가로 떨어짐)안하마을 뒤에 닿았다가 봉화산 가는 동안 갈림길이 있지만 직진하는 길이며, 대체적으로 완만한 길을 따르면 봉화산에 도착하게 되고 이후 완만한 길을 따라서 내려서면 모악지맥의 종점에 다다른다. 석치마을부터 봉화산까지 대체적으로 길이 잘 나 있어서 길을 잃을 만한 곳은 없다.
【들머리 찾기】
- 진봉면 석치마을 : 만경에서 심포가는 702번 지방도 바로 옆에 석치마을이 있다.
[식수구하기]
- 김제시 진봉면 석치마을에서 봉화산까지 좌측으로 마을을 끼고 진행하기 때문에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숙박]
- 김제시내, 진봉면 심포 등에서 숙박하면 된다.
[찾아가는 방법]
▣ 자가용 이용자 : 갈 때의 참조
▣ 택시이용 : 만경읍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 김제시 진봉면 석치마을 버스편: 만경읍에서 봉화산이 있는 거전마을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되며 군내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거전마을이 버스종점임)
▣ 母岳支脈 6구간(終) 산행기
☞ 母岳支脈이란 山 表의 백두대간 장안치(現 장안산)에서 분기한 錦南湖南正脈은 노치(현 밀목재), 수분현(현 원수분), 성적산(현 신무산), 팔공산, 성수산, 중대산(현 30번 국도), 마이산으로 이어 달리다가 조약봉 分岐点에서(560m, 진안 모래재 위)北으로는 입봉, 보룡고개, 연석산, 주줄산(운장산)으로 이어 달리는 錦南正脈을 보내 놓고 南으로는 湖南正脈인 만덕산, 슬치재, 옥녀봉, 경각산, 오봉산, 초당골(막은댐)까지 약 50km를 달려서 초당골 서쪽으로 이어 달리다가 湖南正脈 묵방산 1.3km 못 미친 지점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곳이 母岳支脈이 시작되는 곳이며, 이 支脈은 동진강과 만경강을 가르며 북쪽에 원평지맥을 나누어 놓는다.
여기서 母岳支脈은 북쪽을 향해 달리다가 엄재를 지나 국사봉에 이르러 또다시 하나의 산줄기를 떨어뜨리는데 서쪽으로 상두산과 천애산 방향으로 산줄기 하나를 보내놓고 북쪽으로 달리며 밤티재, 609봉, 화율봉, 배재, 장군재를 거쳐 모악산 정상에 다다른 후 모악산에서는 4개의 줄기를 떨어뜨린 후 母岳支脈은 매봉, 천잠산, 승반산, 두악산, 장등산, 이성산, 국사봉(심포), 진봉산, 봉화산 등 장장 약 76km를 달려서 심포의 만경강으로 뿌리를 내린다(모악지맥 1구간 산행기 중에서.....)
마지막 구간인 이번 구간도 만경평야와 더불어 도로, 구릉, 야산 등으로 줄기가 이어져 마루금을 쉽게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경읍 소재지에서 도로를 따르다 진봉면 석치마을부터 종점인 봉화산까지는 마루금이 만경강이 黃海바다와 만나는 河口 쪽으로 이어지며 모악지맥의 終點에 다다랐을 때에는 끝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바람은 약하게 불고 있지만 날씨는 화창하다는 예보다
먼저 마지막 구간을 답사하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 5구간 마루금을 놓친 두 군데를 답사할 생각이었으나 날씨가 좋다는 예보가 있고 모악지맥 종점이 만경강과 바다와 만나는 곳이고 또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생각되어 계획을 변경하고 차를 가지고 집을 나선다.
09시 20분 차를 가지고 김제 쪽으로 향한다.
5구간 때 마루금을 놓친 순동산업단지 도로에서 승방마을까지 답사를 하고 다시 다른 지역인 김제시 백산면 부창마을에서 성덕면 신점마을 사거리까지 답사를 하고 만경읍으로 이동하며 29번 국도 조금 벗어나서 있는 남산서원과 만경의 능제를 둘러본다.
만경읍 소재지에서 마지막 구간 지맥길을 이어간다.
지맥길은 만경읍 소재지 터미널에서 대야, 군산방향인 만경여자중고등학교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며 702번 지방도를 따라 진봉면 심포 쪽으로 진행하게 된다.
만경여자중고등학교에서 약 1킬로미터쯤 진행하니 우측으로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장등산으로 보이는 산이 관측되고 행정구역은 김제시 만경읍에서 진봉면을 넘어선다.
▲ 지맥길인 만경읍에서 진봉면 가는 702번 지방도
좌우측으로는 넓은 만경평야 지역이다.
진봉면으로 가는 동안 크고 작은 용수로들이 도로 밑을 통과하며 좌측에는 넓은 用水路와 같이 일직선인 2차선 道路를 따라간다.
관기사거리에서 좌측은 가실리 우측은 진봉면사무소 가는 길이며 지맥길은 702번 도로를 따라 광활쪽으로 직진하는 길이다.
[만경평야(萬頃平野)]는.........
▶ 전라북도 김제시(金堤市), 익산시(益山市), 군산시(群山市)일대의 만경강 하류에 발달한 평야, 인접한 김제평야와 더불어 김만경평야, 금만평야, 호남평야라고 불리며 한국의 주요 곡창지대를 이룬다.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화강암질 편마암이며, 화강암류가 심층 풍화되어 형성된 적색토가 주로 분포한다. 만경평야는 비옥한 충적평야지만 주변에 저습지가 많고, 홍수 피해가 잦았었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치수관개사업이 실시되어 왔으며, 1922년 대규모의 대아저수지가 완공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또한 해안일대의 간석지를 간척하여 농경지가 확장되었고 만경강 하류의 김제시 백구면(白鷗面)에 제수문(制水門)이 설치되어 감조(感潮)구간이 단축되었으며, 1935년에는 경천저수지가 축조되었다. 이러한 하천 개수와 저수지 축조 및 계속적인 치수관개사업으로 이 일대의 평야는 수리안전답으로 변화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과거 군산은 쌀수출 항구로, 익산은 농산물 집산지로 번영했다.(김제시청 홈페이지에서)
▲ 지맥길인 관기사거리의 이정표 - 지맥길은 심포항 쪽으로 이어진다
진봉교에서 지맥길인 도로는 우측으로 꺾어지고 다시 진봉파출소 앞에서는 좌측으로 틀어지며 좌측 신석소 마을을 지나 우측 석소마을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다.
13시 40분
702번 도로옆 석소마을 정자에서 중식을 마치고 702번 지방도로를 따라 석치마을로 향하며 우측은 논, 또 옆으로는 석소제방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북쪽으로 소나무로 둘러 처진 산이 지맥길인 니성산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맥길은 진봉면 석치마을 입구에서 시작되며 유정희 씨댁과 붉은 벽돌집의 임금선씨 집 뒤로 이어진다.
들머리에는 대밭과 우측에는 통정대부전주최씨 墓地와 석소제방이 있으며 석소마을에서 니성산 방향은 대략 북서쪽이며 좌우측은 전답지역이며 넓은 農路를 따르니 가야할 니성산은 서북쪽으로 가깝게 있으며 소나무로 쌓여 있다.
묘지가 많은 곳에 함안이씨, 삼척진씨 함장묘가 있는데 여기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꺾어지며 우측은 만경강과 좌측은 드넓은 만경평야를 두고 진행하게 되고 조금 지나면 인향마을 뒤에 도착하게 되는데 좌측은 인향마을, 우측은 밭과 갯벌 쪽으로는 민가 1채가 있으며 지맥길은 직진하는 길이다.
14시 25분 모악지맥 尼城山 도착
석치마을 사람들은 니성산을 암목산으로 부르고 있다.
암목산에 대한 由來를 물어보니 특별한 유래는 없고 예전부터 암목산으로 불러왔다고 한다.
니성산에는 별다른 특징은 없고 전주최씨, 함안이씨 묘지가 있으며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는 삼각점을 찾지를 못하였다.
니성산에서 진행할 방향은 서쪽이며, 니성산에서 조금 내려오니 전주최씨, 김해김씨 묘지가 있으며 몇 걸음 내려오면 진봉면 고사마을 뒤이며 지맥길은 약간 우측인 대나무가 있는 쪽으로 이어지다가 밭 가장자리를 따른 후(독도주의)조금 올라서면 국사봉에 다다른다.
▲ 진봉면 고사마을에서 본 니성산
14시 50분, 모악지맥 국사봉 도착
국사봉도 동네사람들은 불목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니성산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특징은 없고 정 중앙에 무명 묘지 1기와 바로 옆에 김녕김씨 묘지가 있다.
또 멀리는 군산 쪽이 확연하게 관측된다.
국사봉에서 가야할 지맥길은 묘지가 많고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남서쪽으로 해서 김해김씨, 이천서씨 합장묘와 전주최씨, 해주오씨 묘지를 지나 702번 지방도로로 내려서며(독도주의)서쪽으로는 전선포제방과 진행할 마루금들이 확연하게 보인다.
▲ 국사봉에서 본 가야할 지맥길 - 앞쪽의 제방이 전선포제방이며, 앞쪽의 봉우리는 전선표마을에서 올라오는 봉우리, 가운데 봉우리는 진봉산, 우측은 만경강이다.
국사봉에서 내려와 지맥길은 702번 도로를 3백미터 따르며 전선표마을 직전에 用水路가 도로 밑으로 해서 전선포제방 쪽으로 연결돼 있다.
지맥길은 전선포제방이 있는 전선표마을, 동진농조에서 세운 水路에서 모든 행위를 금한다는 경고문이 있는 곳에서 이어지며 북서쪽으로 진행하게 되고 지나온 국사봉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전선표마을에서 올라서니 대나무에 빨간 깃발이 있는 꽂아져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게 되고 소나무가 많으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흔적이 뚜렷하다
▲ 전선표마을에서 본 국사봉 - 좌측은 전선표 제방이며 우측은 지맥길인 702번 지방도
[전선포]는.........
▶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전선포는 진봉면 고사리 국사봉 사이에 있는데 일부는 제방을 이루어 농지로 변하고 일부는 해안으로 되어있다. 이곳은 만경강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고군산 열도와 계화도 가까이에 있어 어선의 닻을 내리는 항구이기도 하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이 곳은 지금의 해군기지와 같은 군항으로서 적선과 싸움을 하기 위한 배(전선)를 매어 두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황해에 접하고 있는 반도로서 제일 서쪽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고, 전북 내륙으로 들어오는 입구이자 금강, 동진강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충청도와 전라도로 들어오는 적군을 이 곳에서 쉽게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곳은 군사 전략상 중요한 요새라 아니 할 수 없었다. 또한 전선포 앞산 봉수대와 수시 연락을 갖고 아무 때나 적군이 나타나기만 하면 재빨리 출동하여 이를 격퇴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 곳을 전선포라고 부르고 있다(김제시청 홈페이지에서)
▲ 전선표마을 앞에 있는 용수로
[수리시설]은........
▶ 조선시대의 대표적 관개시설인「제언」은 산간 협곡에 제방을 구축하여 물을 저장토록 한 시설을 말하며, 오늘날의 댐 또는 저수지와 같은 기능의 시설이다.
때로는 평지의 약간 높은 곳을 파서 건설한 경우도 있었으나 흔한 방법은 아니었다. 당시의 시공기술은 오늘날과 같이 발달되지 못하여 저수지가 파괴되어 보수하였다는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
당시 저수지의 취수장치는 오늘날의 것과 거의 다름이 없는데 제방 밑으로 물을 빼는 제방 안쪽의 바닥에 제방 밖으로 통하는 돌로 만든 수로는 현대식 저수지의 복통(伏桶)에 해당되며, 복통과 연결되어 수위별로 구멍을 뚫은 나무통(木桶)은 오늘날의 사통(斜桶)과 같은 것이다.
현재와 다른 점은 사통이 제방의 경사도와 같이 비스듬히 제방에 기대는데 대하여 당시의 목통은 제방에 기대지 않고 제방 안의 밑바닥, 곧 돌 수로와 연결되는 지점에 독립적으로 서 있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만수위가 되어 물을 빼는 3~5개의 구멍을 조작할 경우 불편하게 되는 점이 현재와 다르다. 오늘날의 물넘이에 해당되는 「무넘이」도 구축되어 있어 원리 면에서는 현재의 설계구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천을 가로막아 수위를 상승시켜 취수하는 시설인「보」(洑)는 관개용수를 취수하기 위하여 많이 이용되었다.건설된「보」는 이것을 이용하는 농민들끼리「수리계」(修理契),「보계」(洑契) 등의 이익단체를 조직하여 보를 개, 보수하거나 관리, 운영하였다.「보」는 위치에 따라 크고 작은 여러 규모의 것이 있으나 산간의 골짜기를 막은 것은 비교적 작고 평야부의 것은 규모가 비교적 컸다. 보의 시공은 물 흐름이 빠른 곳에 먼저 한 줄로 목책을 세우고 물이 저류 되는 쪽에 흙과 떼 그리고 돌로 다져가며 쌓았다. 이렇게 쌓은 물막이와 함께 물을 빼어 가는 큰 수로를 설치하였고, 이 수로를 중간에 막아 작은 수로로 물을 대어 논으로 물을 보냈다.
「보」는 봄 가뭄이 들면 물을 사용하기 위해 매년 고정된 위치에 구축하는 것으로, 우기가 되면 홍수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유실되고 다음해 봄에 다시 시공하는 게 보통이었다. 보통 농민을 동원하여 「보」를 건설하였는데 큰 것은 수백 인, 중간 크기는 수십 인, 작은 것도 십여 인이 필요하였다. 여러 날 걸려 겨우 만든 당시의「보」는 홍수가 나면 바로 무너져버려 농민들의 수고가 매우 컸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보」는 강우강도가 조금만 세면 곧 파괴되어 버리고 말 것임을 전제로 막은 것이다. 만일 보가 터져 나가지 않는다면 인근의 전답을 침수시키거나 양쪽의 제방을 유실시켜 큰 손실을 보기 때문이었다(한국농촌공사 홈페이지에서)
빨간 깃발이 꽂아져 있는 봉우리에서 의성김씨규찬, 개성왕씨 합장묘 쪽으로 지맥길이 이어지며, 15시 30분 진봉면 규동마을 뒤에 도착하며(갈림길) 동네분한테 여쭈어 보니 망해사 가는 길은 좌측으로 철조망이 쳐진 좋은 길을 따르며 계속해서 좌측은 702번 지방도며 우측은 만경강이다.
이후 망해사 갈림길이며 바로 아래쪽에 있는 15시 40분, 망해사에 들러 관람을 한다.
▲ 규동마을 뒤의 만경강 - 멀리 보이는 곳은 군산시 회현면 쪽이다
▲ 규동마을 뒤에서 본 만경강과 지맥길(우측의 산)
▲ 망해사 낙서전
[낙서전(樂西殿)]은.........
▶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1004번에 자리한 망해사 낙서전은 만경강 하류 진봉산의 북쪽 기슭에 바다를 향하여 서 있다.
이 건물은 선조 22년(1589년) 진묵대사가 처음으로 세웠고, 그 후 1933년과 1977년에 고쳐 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의 바깥 형태는 팔작지붕의 ㄱ자형으로서 앞으로 한 칸 나온 부분에는 마루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종(鍾)이 걸려 있다. 건물의 오른쪽에는 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서 원래 이 낙서전이 법당 겸공양집(寮舍)으로 사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김제시청 홈페이지에서)
망해사에서 보도블럭이 깔린 산책로를 따르니 진봉산 전망대에 도착하게 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군산시 회현면이 만경강을 사이에 두고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있다.
전망대에서 산책로를 조금 따르니 16시, 삼각점이 있는 진봉산에 도착하게 되고 지나온 국사봉과 니성산이 확연하게 조망된다.
진봉산에서 심포쪽으로 가는 길은 넓고 좋으며 조금 진행 한 후 갈림길에서(독도주의, 우측으로 가면 심포항으로 내려서는 길임)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심포마을로 내려선다.
▲ 진봉산 삼각점(상), 봉화산 삼각점(하)
▲ 심포마을에서 본 진봉산
심포마을에서 다시 702번 지방도를 조금 따르다 16시 20분, 안하삼거리에서 지맥길은 안하마을 심창회센타 뒤 공동묘지가 있는 능선으로 이어지며 66봉에 도착하게 된다.
곧 통정대부승정원좌부승이천서공지묘에서 갈림길인데(독도주의, 우측으로 가면 바닷가로 떨어지는 길)지맥길은 약간 좌측으로 난 길을 따르며 조금 내려서면 느티나무 한 그루가 블록으로 둘러쳐져 있는 진봉면 안하마을 뒤이며 지맥길은 직진하는 길이다.
여기서 좌측은 안하마을로 가는 길이며 우측은 바닷가로 가는 길이다.
확연한 길을 따르니 진봉면 길곳마을 뒤를 지나고 좌측으로 멀리 동진강이 보인다.
갈림길이 있지만 직진하는 길이며 대체적으로 완만한 길을 따르니 17시, 봉수대 흔적이 있는 모악지맥 봉화산에 도착하게 된다.
과거에는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봉화산 정상에는 둥그렇게 돌로 쌓여져 있을 뿐 그 외 별다른 특징은 없다.
또 봉화산에는 국과연과 1984년 글자가 새겨지고 방위표시만 되어 있는 삼각점이 자리하고 있다.
▲ 봉수대가 있었던 봉화산 정상의 모습
[봉화산 봉수대]는...........
▶ 서해에 접하고 있는 봉화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진봉반도 서남쪽 육지의 맨 끝 부분에 있는 해발 50∼60m 높이의 산인데 산아래(서남쪽)는 황해이고 서북쪽은 만경강 입구, 동남쪽은 동진강 입구이다. 따라서 오직 동북쪽으로 만경강 연안에 봉화산 높이와 비슷한 산들이 줄지어 서 있을 뿐이고 동쪽으로는 진봉평야가 하나로 이어져 호남평야를 이루고 있다.
이 봉화산의 봉수대에는 지금도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고 자연석으로 쌓았던 담장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누군가가 남아 있는 무너진 자연석을 가운데로 모아 놓아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가보니 돌무덤 위론 흙으로 덮어 헬기장을 만들어 놓아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확실한 축조 년대는 알려지지 않으나 우리 나라 봉수대를 설치한 것이 고려시대라고 할 때 이 곳 봉수대의 축조도 고려시대로 보아야 될 것 같다.
한편 봉화산의 봉수대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일반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말썽이 일어나자 이것을 계화도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봉화산에서 북서쪽으로는 만경강을 사이에 두고 군산 국가산업단지가 조망되고 다시 걸음을 옮겨 봉화산에서 서쪽으로 좋은 길을 따르다 보니 서씨 墓地와 다른 사람의 묘지를 많이 만나게 되는데 공동묘지 같기도 하고 17시 10분, 거전마을 뒤 참의공에서 가매장을 금한다는 안내문을 지나 주변으로 묘지가 많고 좋은 길을 따르니 17시 20분, 湖南正脈 묵방산 1.3km 못 미친 지점에서 뻗어 나온 母岳支脈이 만경강으로 뿌리를 내리는 곳이고 만경강이 黃海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모악지맥 終點 좌측으로는 동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 확연하게 보이고 군 초소가 있고 또 마을이 가깝다 보니 묘지가 더러 있으며, 남쪽으로는 부안쪽의 아파트 群이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외변산도 조망된다.
만경평야에 귀중한 용수를 공급하는 김제용수간선이 광활면과 진봉면 일대를 지나 진봉면 거전마을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서서히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오늘처럼 이 아름다운 날이 있으랴
불덩이처럼 솟았던 태양은 서서히 열을 식히며 또 한 번 장렬한 모습으로 가라앉기 시작하고 생명이 숨 쉬는 갯벌에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저 멀리 힘든 갯벌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바닷가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밀레의 이삭줍기 그림을 연상케 하고...........
오늘 이곳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의 산줄기가 우리 삶에 터전을 만들어 주었던 강에 뿌리를 내리고
저 멀리는 황해바다에 아름다운 시간이 연출되고 수년전부터 질퍽한 삶의 터전인 갯벌은 바다의 생명체가 쉼 쉬는 것은 물론 영원한 삶의 보금자리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제 눈앞으로 펼쳐지는 갯벌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부안 변산에서 신시도, 야미도, 군산 비응도를 연결하는 33㎞의 새만금 방조제가 곧 완공되고 이 지역이 간척사업이 되면 우리의 터전은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궁금하다.
친환경적이고 모든 생명들이 살아 숨쉬는 땅이 되어야겠다.
모악지맥 끝
그곳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 모악지맥 종점 앞의 무인도
▲ 모악지맥 종점에서 바라본 동진강 하구
▲ 모악지맥 종점에서 바라본 일몰
모악지맥이 끝나는 곳에서 夕陽을 보기 위해 17시 50분까지 머물며 거전마을로 내려오니 만경읍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타자마자 버스는 바로 출발하고 진봉면 석소마을에 내려서 차를 회수하여 집을 향해 전주로 출발한다.
오늘 이 자리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母岳支脈을 마치고 나서............
모악지맥!
湖南正脈 묵방산 약 1.3km 못 미친 지점에서(정읍시 산외면, 완주군 구이면, 임실군 운암면 경계)뻗어 나가는 모악지맥은 남쪽은 섬진강, 북쪽은 만경강, 서쪽은 동진강으로 흘러드는 分水嶺이 되는 곳이며 三派水이기도하다.
이 지맥길은 북쪽으로 뻗어 가면서 국사봉까지 엄재를(55번 국지도)사이에 두고 해발 300∼530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국사봉에서 상두산, 천애산, 명금산으로 가는 산줄기를 보내놓고 밤티재를(김제시 금산면, 완주군 구이면 境界)향해서는 고도가 한 풀 꺾인다.
지맥길은 湖南平野에 우뚝 솟은 모악산으로 달려가기 위해 ×609봉을 향해서 고도가 솟구친 다음 완만한 길을 이루다가 다시 장군재에서 모악산을 향해 마지막 고도를 높인다.
全州市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또 어머니의 산이라고 불리는 모악산은 제비산 줄기, 구성산 줄기, 봉두산, 고산, 황산으로 가는 줄기, 고깔봉으로 가는 4개의 산줄기를 보내놓고 모악산 북봉헬기장을 거치면서 유순한 줄기를 이루며 낮은 자세로 줄기를 이어간다.
지맥길은 712번 지방도(전주와 김제시 금산면을 잇는 지방도)에서 403.7봉을 향해 잠시 高度가 솟구치다가 매봉산으로 가는 동안 잡목과 갈림길이 많지만 확실한 마루금을 이어간다.
지맥길은 매봉산에서 구덕마을 고갯마루로 뻗어간 다음 도로 공사로 인해 잘리기도 하지만 맥을 이루며 1번 국도를 향해 완만한 길을 이룬다.
지맥길은 1번 국도에서 서쪽으로 동진강의 支流인 두월천을, 동쪽으로는 만경강의 지류인 중복천을 만들면서 두 강의 水界가 확실하게 나뉘어진다.
쑥고개에서 천잠산을 향해 완만한 오름을 한 후 천장봉과 사창산으로 가는 2개의 산줄기를 보내놓고 파 헤쳐진 쓰레기매립장을 지나고 지맥길은 완주군 이서면 불가절을 지나 완주군 이서-금구간 713번 지방도에 다다른다.
지맥길은 황새골로 이어진 후 김제시 금구면과 완주군 이서면의 경계를 잠시 따른다 만경강과 동진강의 水界를 가르면서 호남고속도를 통과한 후 구암마을 뒤를 지나 2차선 도로를 따라서 완주군 이서면 애통리에 도착하게 된다.
지맥길은 716번 지방도를 따라가면서 서서히 비산비야 지역으로 접어들기 시작하고 동진강의 지류인 두월천의 물줄기를 넘지 않기 위해서 순동산업단지 쪽으로 꺾어진 후 승방마을로 들어가 승반산을 향해 낮은 오름을 한 후 잠시 도로를 따르다 호남야산개발사업 당시 세운 전망대가 있는 두악산으로 이어지며 두악산에서는 조종산, 당재산으로 가는 줄기, 와석산, 율산, 주행산으로 가는 줄기, 성덕산으로 가는 3개의 줄기를 떨어뜨린다.
마루금은 섬진제의 물을 담수 한 백산제를 좌측에 두고 백산면 복지삼거리로 가는 동안 用水路가 마루금을 건너고 있지만 人爲的인 施設이며 도로를 따라 가는 동안에도 맥은 이어지고 있다.
지맥길은 만경읍과 백산면의 경계를 달리면서도 낮은 지형이지만 확실한 마루금이 이어지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벗어나서 만경의 능제를 우측에 두고 국도를 따라가며 만경읍으로 줄기가 이어진다.
지맥길은 만경읍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장등산을 떨구어 놓고 서서히 만경읍을 벗어나면서 만경강의 本流와 가까워지는 등 간척의 땅으로 진행하면서 마루금이 다소 희미하게 보이기도 하고 간혹 水路들이 도로 밑을 통과하지만 水利畓으로 인해서 생긴 시설물이며 충적평야에도 낮은 줄기로 이어가고 있다.
한동안 비산비야와 도로를 달려온 모악지맥은 비록 작은 줄기지만 有終의 미를 거두기 위해 野山인 니성산으로 이어지며 만경강 강가를 따라가면서 줄기가 제방이나 강가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으나(※ 다만 김제시 진봉면 석소마을에서 석치마을, 국사봉에서 전선표마을, 진봉산에서 안하마을 사이에 제방이 있어서 마루금이 도로로 연결돼지만 옛날에 제방이 없었던 시절에 어디까지 강물이 들어왔는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마루금이 도로가 맞는지 의문점을 가져보며 퇴적작용이 활발하지 않은 時代에는 바닷물이나 강물이 우리가 사는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봄)산줄기는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진다는 山經圖의 原理에 따라 국사봉, 진봉산을 거치면서 약 82㎞를(※ 본인이 圖上을 잰 거리이므로 조금은 차이가 있을 수 있음)달려온 모악지맥은 봉화산을 끝으로 진봉면 거전리에서 만경강으로 뿌리를 내린다.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들이 독립된 江을 갖고 있듯이 모악지맥도 비록 물줄기는 작으나 당당한 本流로서 河口를 갖고 있는 만경강을(※ 길이 : 81.75㎞, 유역총면적 : 1,601.70㎢)갖고 있으며, 分水界 또한 동진강과 만경강을 가르며 湖南平野에 중요한 산줄기 역할을 하고 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 참고자료
- 영진5万지도(영진문화사 발행)
- 전주시청 홈페이지/교통정보/시내버스
- 건설교통부/하천/우리가람길라잡이/하천지도정보
- 신 산경표(박성태 著)
- 조선광문회본 인쇄본/산경표
- 김제시청 홈페이지/문화관광
- 한국농촌공사 홈페이지
- 심포마을
- 심포항
'우리 산줄기를 찾아서 > 모악지맥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악지맥 5구간 - 산길보다 어려운 평야 길 (0) | 2011.12.26 |
---|---|
모악지맥 4구간 - 산은 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고...... (0) | 2011.12.22 |
모악지맥 3구간 -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0) | 2011.12.22 |
모악지맥 3구간 - 마루금을 엉뚱한 데로 긋다 (0) | 2011.12.21 |
모악지맥 2구간 - 잡목이 많아 마루금 긋기가 어렵고..... (0) | 2011.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