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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조석필의 산경표를 위하여

호남정맥 보고서 - 3. 산경표 읽기

by 두타행 2011. 6. 28.

호남정맥 보고서 - 3. 산경표 읽기

 

 

누구나 [산경표]를 읽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읽혀 지도로 나와 있으므로, 그에 따라 정맥 종주를 시작해도 지장은 없다. 다만 [산경표]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함께 공부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편의상 '페이지'라는 용어는, [산경표]의 면(面)을 지시할때로 한정해서 사용하겠다.([산경표]에서는 [頁(페이지'혈')]로 쓰고있다). '쪽'은 본 보고서의 면(面)을 가리킨다.

산경표는 족보 편집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 시작은 물론 백두대간이다. 그림15에 [산경표] 제1페이지와 함께, 향후 설명을 위해 설정한 몇가지 용어를 적어두었다.

우선 산 이름이 들어가는 자리, 즉 11개로 된 '계단'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첫째, 산줄기는 윗계단에서 바로 아랫계단으로 이어진다. 둘째, 만약 하나의 계단에 횡(橫)으로 2개의 산이름이 나란히 있다면, 그 둘은 바로 윗계단의 산에서 갈래친 줄기이다. 예를 들자면―

백두대간은 '백두산→연지봉→허항령→…→황토령'으로 이어진다.

제3계단의 대유봉과 허항령은 제2계단의 연지봉에서 갈래친 것이다. 즉 연지봉에서 내려온 산줄기는, 허항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대유봉에서 시작하는 기맥으로 갈라진다.

설혹 종이의 면적이 부족해 뒷페이지로 넘어가더라도, 계단의 등급만은 그대로 유효하다. 즉 계단은 산경표 편집의 근간이다. 지시문(산이름 좌측에 그 산의 소재지, 가까운 마을로부터의 거리나 방향, 산줄기 흐름의 방향, 갈라지는 기맥의 수 등을 명기한 것)은 부차적 설명일 따름이다. 예를들어 어떤 산의 지시문에 '分二岐'라는 말이 없더라도, 그 아랫계단에 나란히 두개의 산이 있다면, 두개로 갈래친 것으로(分二岐 한것으로) 봐야한다.

다음으로 파악해야 할 것은 기둥줄기이다(그림에서는 '백두산→황토령'이 기둥줄기이다). 기둥줄기는 즉 정맥과 대간이다. 따라서 기둥줄기에는 대개, 맨 위 가로쓰기 칸에 '맥간표식(脈幹標識-정맥이나 대간임을 나타내는 표식)'이 되어있다. 설혹 표식이 없더라도, 한 페이지의 11개 계단 전체에 걸쳐 나란히 내려가는 것은 거의 기둥줄기이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제1계단의 산이름을 직전 기둥줄기 제11계단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정맥과 대간은 기둥줄기에서 기둥줄기로 이어진다. 따라서 책 전체를 낱장으로 복사한 후, 기둥줄기끼리만 잇대어 붙여나가면 정맥하나를 종이 한장에 표현 할 수도 있다.

기둥줄기가 그림처럼 페이지 맨 우측에만 위치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11계단 모두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하나의 정맥이 끝나는 부분에서는(또는 편집상, 그 시작 부분이) 계단의 일부만 차지하고 있기도하다. 페이지 중앙에 편집되어 있기도하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두개가 인쇄되어 있기도 하며, 기둥줄기가 없는 페이지도 있다.

따라서 물리적인 종이 페이지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의 기둥줄기와 다음 기둥줄기 사이를 '실제적인 한 페이지'로 읽어나가는 공간 개념이 필요하다. 두 기둥줄기 사이에 적힌 산들은 대부분 바로 우측의 기둥줄기에서 갈래친 기맥, 혹은 지맥들이다(예외에 관한 것은 33쪽에서 보겠다).

편집상, 기둥줄기가 몇 페이지 건너 연결되는 수도 많다. 그런 경우 반드시 제11계단 산이름 옆의 지시문에 몇 페이지로 가라는 말이 쓰여 있다(예/見下九二頁). 그리하여 해당 페이지로 가 보면, 제1계단에 동일한 산이름이 적혀있고 또한 어디서 건너온 것인가가 적혀있다(예/見上八七頁). 제11계단의 지시문에 아무 언급이 없으면, 건너 뜀 없이 다음 기둥줄기로 이어진다는 뜻이 된다. 제1계단 지시문 중의 '見上' 이란 말은 대개 바로 앞 페이지를 가리키나, 때로 두어 페이지 앞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같은 산이름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제) [산경표] 제1페이지 제11계단 황토령의 지시문에는 아무 언급이 없다. 따라서 일단 제2페이지를 보게 되나 거기에는 해당 산줄기가 없다. 따라서 제3페이지로 가게되며, 거기에 "제7페이지로 가라"고 쓰여있다. 결국 백두대간은 제1페이지에서 제7페이지로 건너 이어지는 셈이며, 그 사이인 2-6페이지는 백두대간의 갈래인 장백정간 산줄기로 채워지는 것이다.

기둥줄기보다 어려운 것은 곁줄기이다. 곁줄기는 계단을 잘 셈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분기한 줄기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적혀있는 경우에 그렇다. 대개는 계단 체계대로 되어있지만, 어쩔수 없이 계단 무시하고 편집된 경우도 있다.

기둥줄기가 아님에도 제1계단부터 적혀 있는 것들(기둥줄기는 제11계단 끝까지 내려가나, 곁가지는 그렇지 않으므로 구별할 수 있다)은 대부분 그런 종류이다. 그때는 역추적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은 전전(前前) 기둥줄기의 곁가지에서 건너온 것으로, 두어 페이지 앞에서 동일한 산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곁줄기는 끝나면 대개, '終'이라 적혀있다.

처음에는 종이에 적어가며 연습하면 도움이 된다. 우선 기둥줄기를 적고, 다음으로 금방 눈에 띄는 곁가지를 빼내면, 남는 것은 실상 얼마 되지 않으므로 이리저리 뒤적이다 보면 거의 찾아낼 수 있다. 최악의 경우란, 지시문이 없고 계단도 맞지 않으며 근처에 동일한 산이름 또한 없는 경우인데(33쪽 예제 참조), 이 때는 지도에서 비슷한 줄기를 찾아 잇대는 수밖에 없겠다.

28쪽에 산경표 제87페이지를와 그 번역판(?)을 실었다. 지시문도 알아야겠지만, 우선은 양쪽을 비교하며 줄기 파악을 익혔으면 좋겠다. 노치가 수분현과 장수치로, 수분현은 성적산과 보현산으로 가지치는 것을 보아두자. 내용중에 특기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상자 바깥, 페이지 상단에 행정구역이 명시되어 있음을 알아두자. 즉 산경표 87페이지의 산들은 '忠=충청도' 및 '全=전라도'의 '남원.장수.임실.진안군'에 속하는 산들이다.

2. 정맥이나 대간임에도, 상단 가로쓰기의 '맥간표식'이 빠져있는 경우가 있음을 알아두자. 예를 들어 92페이지 상단 가로쓰기 난에는 '脈正南湖' 넉자가 빠져있다.

3. 지시문 중에 '分二岐' '分三岐' 따위가 명기되어있는 것도 있으나, 그런 언급 없이 갈래치고 있는 것도 꽤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확실한 것은 지시문이 아니라 계단의 체계이다.

4. 방향이나 이수(里數)를 요즘 지형도에 맞춰보면 어긋나 있는 것이 많다. 당시 도보 측정의 한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산을 향해서 가는 길의 방향이나 구불거림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지명은 [산경표] 당시의 지명임을 상기하자. 예를 들어 '泰仁' 하면 신태인이 아니라 옛날 태인이다. 혹은 옛 도읍인 칠보를 가리킬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그림16과 함께 금남호남정맥이 어디서 어떻게 갈래쳐온 줄기인가를 설명드리는 것으로 산경표 읽기를 마치고자 한다.

금남호남정맥 첫머리인 87페이지 長安山을 보면 '見上二十九頁' 이라 적혀 있다. 그에 따라 29페이지를 뒤적거리다 보면 '長安峙'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長安峙에는 '分二岐'라는 지시문이 있다. 그리하여 갈래 중 하나는 바로 아래 本月峙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임을 알 수 있겠는데, 나머지 하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찾아보는 수 밖에 없다. 계단 수를 잘 셈해보자. 蘆峙가 정답임이 금방 드러난다. 그 지시문에는 과연 '見下八十七頁'과 함께, 이것이 '즉 호남금남정맥이된다' 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이상을 요약해보면, "금남호남정맥은 백두대간의 장안산에서 갈래친 정맥이며, 정맥에서 처음 나타나는 지명은 노치이다"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