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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조석필의 산경표를 위하여

산경표 이야기 넷째 마당 - 3. 위민의 지리학, 산경표를 위하여

by 두타행 2011. 6. 28.

산경표 이야기 넷째 마당 - 3. 위민의 지리학, 산경표를 위하여

 

 

사회과부도는 그 들머리에, 대동여지도와 인공위성사진을 나란히 배열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인공위성 비슷한 수준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던, 탁월했던 선조들의 지리인식 능력을 일러주려는 시도로 읽힌다.

의미 있는 일이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 그림을 마지막으로 대동여지도는 더 이상의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동여지도를 보는 시각이 여전히 '고(古)미술품' 감상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반증한다. 고산자가 그 지도 만들 때, 소장용 고서화로 쓰라는 것은 아니었을텐데 그렇다.

산경도는 이 땅의 산과 강을 있는 그대로 그린 지도이다. 또한 우리 전래의 지리 인식이기도 하다. 산경도는 이 땅의 지리를 있는 그대로 가르쳐 주며, 가장 중요한 산이 백두산임을 알려주고, 그 백두에서 뻗어내린 산줄기 백두대간이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잣대임을 말해준다.

그런가하면 산맥지형도는 땅속의 지질구조선을 기준하여 그린 지도이다. 그 지도는 실제 지형과 어울리지 않으며, 또한 그것을 그려준 것은 일본인이다. 산맥지형도는 이 땅의 지리 무대에서 백두의 존재를 희미하게 했고, 산줄기의 무게 중심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지리인식을 흐리게 했다. 그에 수반하는 역사 및 문화 인식에 혼란이 초래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같이 요약되는 산경표의 정당성이, 지질구조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말씀드린다. 이 땅의 생성과정에서부터 미래의 예측에 이르기까지, 지질구조 연구가 담당해야할 부분은 산경표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방대하며 중요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전문가에게 할당된 몫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청주가 충청남도인지 충주가 도청소재지인지 가끔은 깜빡깜빡하는 보통사람들에게, 땅위의 산과 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학생들에게, 땅속의 지질구조부터 가르치는 것은 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산경표를 위한 제안

책 한권의 이야기를 닫으며,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드리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산맥을 배우고 있는가" 이다. 강이 물길 흐름대로 나뉘듯, 행정구역을 지질구조선 따라 구분하지는 않듯, 산은 산따라 분류되어야함이 마땅한 이치라면, 교과서에서 가르쳐져야 할 지리는 당연히 [산경표]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학계에서 이 일을 맡아줄 것으로 확신한다. 그때까지는 가장 손 쉬운 동지들, 여러 산악인들의 관심과 협조를 기대하고자 한다. 꿈으로 말하자면, 재주 많은 어떤 분이 소설 이름을 '백두대간'으로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으면 좋겠다. 혹은 '호남정맥'이라는 영화가 서편제 비슷한 인파를 동원하는 일이 생겨도 좋을 것이다. 알려지기만 한다면, 제 자리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만큼 충분한 정당성을 [산경표]는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 산경표 해석 체계의 일원화

중요하며 또한 시급한 과제이다. 예를 들어 12-13쪽에 열거한 이견들을 하나로 통일하는 일 따위가 그렇다. 대개는 해석상의 '견해차이' 정도이므로 난해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최대공약수를 찾기 위한 충분한 토의를 필요로 할 뿐이다.

 

2. 새롭고, 자세한 지도의 제작

[사람과 산]에서 제작했던 산경도는 당시 여건으로 보아 획기적인 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제는 실용 목적에 따라 더 자세한 지도가 필요하게 되었다. 작은 산줄기까지 세밀하게 표시한 것, 산줄기에 산의 표시가 꼼꼼히 된 것, 물길이 자세히 표시된 것 따위가 그러하다. 물론 일원화 된 해석 체계를 바탕으로 해야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3. 산경표 식으로 생각하기, 산경표 식으로 말하기

이 일에 앞장 서주어야할 곳은 [월간산] [사람과산] 따위, 산악전문지들이라고 본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여타의 매체들도 하나 둘 시선을 주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입에서 입으로 알리기

가장 손쉽고도 어려운 일이 이것이다. 결국 이 책은 그 '입'을 대신해서 쓰여진 것이다. 산경표 소리 처음 듣는다는 분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아시는 분들 입장에서 보자면 하품 나오는 소리만 반복한 느낌이다.

뭐랄까, 산경표의 성격을 압축해서 표현하자면 '백성의,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 지리서 쯤 될 것이다. 미국식 표현이 되었는데, 우리식으로 말하라면 '위민(爲民)의 지리서'라 해도 되겠다. [산경표]의 올바른 자리매김 주장에 있어 '위민, 즉 백성을 위함' 이란 말은 제법 어울리는 짝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산경도를 서랍에서 꺼내 쓰는 것은 모두의 할 바이다. 산경표가 '백성을 위해 만들어진' 지리서임이 분명하다면, 그 이념에 따라 '바르고 편하게' 지리를 알 권리는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그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생각 나름'에 달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