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표 이야기 넷째 마당 - 2. 무엇이 잘못되어 있나
풍수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단혈철주 얘기는 당시 침략자들 정서의 편린을 보여주고자 꺼내 봤을 뿐이다. 게다가 쇠말뚝 같은 것은 눈에 보이기라도 한다. 뽑아버리면 그만일 터이다. 문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산맥개념 따위, 지리인식 깊숙히 잘못 뿌리박혀 있는 '무형의 단혈철주'인 것이다
글쓴이는 "우리나라 땅이 토끼처럼 생겼다"는 얘기를 국민학교 때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그 기억은 지금도 선연하다). 그리하여 내 땅이 '토끼'임을 삼십년 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선생님은 물론, '선생님의 선생님'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을 터이다. 얼마나 끈질긴 것인가. 교육, 그 한번 뿌리내린 씨앗의 생명력이라는 것. 옳고 그름에 앞서 최남선의 '호랑이'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오늘도 이 땅의 어느 교실에선가는 "우리나라는 꼭 토끼처럼 생겼단다" 하고 가르쳐지고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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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는 지리 개념의 설명에, 강줄기를 자주 이용한다. 예를들어 "영월 정서방이 베어낸 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서울까지 운반하는 길을 생각해보자" 따위이다. 이 때에 말해지는 강은 '그 흐름이 눈에 보이는', 자연의 강 그대로이다. 지하수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지질구조따라 한강과 금강을 하나로 묶어 취급하는 일도 없다.
물길은 그렇게 실체에 충실하게 대접하면서, 왜 산줄기만은 이강 저강 건너다니는 '산맥'으로 가르치는 걸까. 산과 강은 일대일 물려있는 톱니바퀴 사이인데... 바로 그 딜레마로부터 우리는 톱니바퀴 빠져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문제 : 태백산맥을 우리나라의 등뼈라고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사회과탐구 4-1 92쪽)
답 : 동해안 쪽으로 치우쳐 남북으로 뻗어 있는 험한 산맥으로 우리나라의 등뼈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사회교과서 4-1 107쪽)
한쪽으로 치우친 선을 등뼈라 부르는 것은 그것이 옆 모습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정상 체위라면 등뼈는 몸의 중심에 위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뼈'라는 표현 속에는 암암리에 한반도가 '支那에 인사하는 모습'임을 교육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위 문답에는 또 하나의 요점, 즉 태백산맥이 우리나라의 기둥산줄기임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는데, 다음의 글과 함께 살펴보기로하자.
태백산맥은 우리나라를 동서로 가르고 있다(사회교과서 108쪽)
바로 위 글에서, 우리는 지리인식 왜곡의 한 전형을 보게 된다. 그림을 보자. 11-1은 26쪽 산맥지형도에서 태백산맥만 따온 것이고, 11-2는 백두대간만 그린 것이다. 과연 태백산맥이 정말로 우리나라를 동서로 가르고 있는 산줄기인지, 아니라면 어느 것이 진짜 우리나라의 중심축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서로 가른다'는 표현은, 나뉜 東과 西가 어느 정도 세력 균형을 이룬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쓰는 것이다. 그러나 태백산맥의 경우, 동서 균형은 고사하고 나라를 가르기에는 턱 없이 모자라는 길이의 왜소함이 먼저 눈에 띈다. 나라 길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혹시라도 위의 '우리나라'라는 것이 남한만을 가리키는 말 아닌가 싶어 두개의 그림을 따로 그려 보았지만(11-3, 11-4), 결과는 태백산맥의 왜소함만 더 드러낼 뿐이었다.
게다가 옆의 그림들은 교과서가 말하는 태백산맥의 선을 충분히 인정한 상태에서의 것이다. 구체적인 중심축의 자격, 즉 산세까지를 감안한 '태백'은 그나마 아래 절반 정도를 떼고 얘기해야하는 처지가 된다.
결과적으로 태백산맥은 그 위치, 길이, 산세 세가지 측면 모두에서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나라를 동서로 가르는 크고 험한 기둥산줄기"의 자격에 미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혼란은, 나라 산줄기의 중심축을 잡는데 있어 백두산을 피해보려고 시도하는 한 언제든지 드러나게 되어었는 결과이다(백두산이 실체적 중심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백산맥 중심'으로 기술된 위 교과서 인용문들은, 백성들의 시선으로부터 백두산을 떼어놓으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이라는 의심을 받게한다.
그러한 '의도'를 확실히 읽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같은 실체적 사실, 즉 정맥 산맥에 상관 없이 실제로 이 땅에 존재하는 산들의 규모와 분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첫째, 나라 안에서 큰 산들을 대부분이 백두대간의 선에 몰려있다. 그 사실만큼은 교과서에서도 인정되어 있는데, 사회과탐구 4-1 114쪽에 "우리나라 산간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마고원, 태백산맥, 소백산맥이라는 말과 함께 그 세 산간지역을 나타내는 그림이 실려있는 것이다(그림12). 그림을 잘 보면 바로 백두대간 그림에 다름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적어도 나라의 중심 산줄기를 논하는 대목에서는 태백산맥을 태백 북부로 한정해야 한다. 평균 오륙백 높이인 태백 남부는, 소백산맥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며, 그만한 산줄기는 나라 안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태백은 언제나 높고 크다' 라는 막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가 국토를 바로 볼 기회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고또를 위시한 일본인 학자들이 이 땅에서 정맥과 대간을 지우고 새로운 산맥선을 그려냈던 과정이 함축하고 있는, 모종의 '의도'에 관한 추측은 읽는 이에게 넘긴다(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기 때문이다). 그림13과 함께 그 결과만 기술하였는 바, 추측의 도구로 이용하기 바란다.
첫째, 나라의 기둥산줄기가 소백, 태백북부, 함경서부(부전령산맥이라고도한다), 마천령북부 해서 넷으로 분리되었다.
둘째, 태백북부는 남쪽에 가지를 추가하여 방향을 낭림산맥쪽으로 틀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중심축으로 떠 올랐다.
셋째, 백두라는 말이 지도에서 사라졌다. 또한 백두에서 뻗어내린, 나라에서 제일 큰 산줄기는 마천령이란 이름아래 가장 짧은 선을 그리며 동해바다로 사라졌다.
백두대간과의 첫 대면 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바로 태백산맥에 대한 고정관념의 벽을 허무는 일이었다. '태백은 높고 큰 기둥축' 이라는 개념으로 꽉 차있는 머리에게, 어느날 그 일부를 떼내버리고 소백을 갖다붙여 중심축으로 삼으라는 명령은 당시로써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종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에게 그 '혁명'의 과정을 권하는 처지가 되었다. 일단 겪고나면, 막대처럼 서 있는 태백의 모양이 그렇게 설퍼 보일 수 없을 것이다. 그 지경에 이르러 다시 산맥화 과정을 되밟아 가라 하면 아마 여러분의 머리는 화를 낼지도 모른다.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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