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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조석필의 산경표를 위하여

산경표 이야기 셋째 마당 - 4. 지리는 배워서 어디에 쓰나

by 두타행 2011. 6. 28.

산경표 이야기 셋째 마당- 4. 지리는 배워서 어디에 쓰나

 

 

국어는 배워서 책을 읽고, 산수는 습득해 계산을 한다. 그렇다면 지리는 배워서 어디에 쓰나? 지리 인식은 인문사회 연구의 기초이다. 기초 공사가 잘못되어 있을 때, 거기에 근거해 쌓아올린 역사적 혹은 문화적 연구 업적의 왜곡상이란 것은 강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진도 아리랑'의 한 귀절이다. 진도에서 웬 문경 새재 타령일까? 새재(鳥嶺)가 특정 지형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의 성격을 넘어, 백성들이 자신의 삶이 힘겨워 질 때마다 떠올리는 상징적 존재로 승격되었다는 뜻이겠다. 고갯길이 험해서 그리 되었을까? 아닐 것이다. 험하기로만 따지자면 그보다 더한 고개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 이유는 따라서 올바른 지리인식 속에서 찾아봐야 할 것이다.

부산 사는 선비가 한양에 과거 보러 간다고 치자. 산을 몇번 넘어야할까? 답은 딱 한번이다. 그 한번이 바로 문경새재이다. 산을 한번만 넘어도 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그림6을 보자. 부산에서 낙동강 따라 올라가는 동안 문경까지는 막아서는 게 없다. '넘지 않을 방법이 없는' 새재를 넘고나면 충주 땅, 이번에는 한강 줄기만 따르다보면 가기 싫어도 서울 땅에 도달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이치이긴 하지만, 이 땅을 정맥과 대간으로 보는 눈 아니면 또한 얼른 알아차리기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다.

새재는 두가지 점에서 숙명적이다. 첫째, 그것만 넘으면 되는 '유일한' 고개이고 둘째, 넘지 않으면 안되는 '유일한' 고개이기도하다. 그점이 대간에 있는 여타 고개들과의 차이이다. 예를 들어 추풍령 길로 들게 되면 한남금북정맥상의 또 하나 고개를 넘어야 서울에 닿게 된다. 그러한 상징성으로 인해 "고개" 하면 새재를 떠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새재의 상징성이라는게 낙동강 주민에게나 한정된 얘기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 부분의 이해에는 백두대간을 필요로한다. 앞 절에서 백두대간은 분수령으로써 뿐 아니라 그 높이와 험하기로도 나라에서 으뜸이라 하였다. 그 말은 대간이 한반도를 동과 서로 나누는 가장 확실한 울타리라는 뜻이었다.

살펴보자면, 서울은 대간의 서쪽이다. 대동강 유역, 황해 서부, 충청도, 호남지방 해서 사람 많이 사는 곳들 또한 대부분 대간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서쪽 사람들, 즉 이 나라 백성의 대부분은 나들이 때 대간 넘어다닐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터에 대간을 넘지 않으면 안되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낙동강 유역 주민들이다. 결과적으로, 고개 때문에 울 일이 있는 백성의 대부분은 새재 때문에 그랬다고 할 수 있다. 새재가 '이 나라의 고개'가 된 소이는 그러한 것이다.

새재는 한 예에 불과하다. 요지는 이 땅의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데 있어 정맥과 대간을 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백두대간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대간의 동쪽에 자리 잡은 지역은 낙동강 유역뿐이다' 라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아마도 이 땅의 역사 공부는 바로 그 사실을 재인식 하는 데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산경표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