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표 이야기 셋째 마당 - 3. 무엇이 문제인가
등반을 해본 이라면 지리산이, 건너편 백운산과 산줄기로는 결코 연결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발 아래 도도하게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를 피해나갈 방법 없음은 누가 봐도 뻔하다.
지리산에 가 본적 없어 얼른 납득이 안되는 분들은, 14쪽 그림4를 참고하기 바란다. 지리산, 백운산, 여수반도를 확인한 후 섬진강 물길을 훑어보기 바란다. 지리산에서 강을 건너지 않고 여수반도에 도달할 길이 있겠는가? 만약에 찾았다면 그것은 지리산에서 영취산으로 되돌아가 '호남정맥' 460km를 걷는, 다시말해 [산경표]가 일러준 길일 것이다.
이번에는 [한국지지] 169쪽을 보자. 태백산에서 분지한 '소백산맥'은 속리 덕유산을 경유, 지리산까지 내려온 후 "남해안의 여수반도에 이른다"고 적혀 있다. 어떻게하여 지리산이 여수반도에 이르른다는 것일까. 산줄기가 헤엄을 치거나, 구명보트 타고 다닌다는 걸까.
산맥이 그 구조상 물길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의 정의를 되새겨 보자. 이 땅에서 물을 건너지 않는 산줄기 그림은 오직 '산경도' 하나 뿐이라고 정리되어 있다. 그러므로 산경도와 똑같지 않는 그림의 선은 어디에선가 반드시 물을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리학을 하고 있는 분에게 이 부분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이의 대답은 "산맥에 어떻게 강이 포함 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전문가까지 '山脈'은 '산들만의 줄기'이겠지 막연히 믿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현행 교과서의 지리학이, 현장과 떨어져 있는 추상적 이론 수준임을 보여주는 예는 많다. 그러한 책만 믿고, 설마 책이 거짓말 하랴 하는 막연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발 아래 흐르는 섬진강을 보며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산맥은 엄격한 의미로 "무슨 무슨 산을 포함 한다"하는 개념이 없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름만 산맥일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 선이므로 그렇다. 그 관념의 틀 따라 이 땅의 산들이 이리 저리 움직여 주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산맥은 산줄기의 선이 아님'을 고백하는 편이 자체의 모순을 줄이는 길일지도 모른다.
산맥이 갖고 있는 스스로의 모순에 대한 흔적은 [한국지지] 166쪽에도 나타나 있다. ― "산맥의 주향은 그 생성기와 지각운동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지질구조의 축과 꼭 일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산맥이름을 외워야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그냥 그려준대로 따르며, 그리하여 '산맥 종주' 계획에는 수영 연습만 추가하면 된다는 것일까.
분류기준의 모호함
현행 산맥 개념은 본질적으로 분류 기준의 모호함, 즉 주관적 판단을 배제할 원칙이 수립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의 선을 잣대로 삼았으니 그럴 밖에 없겠다. 그 결과 발생하는 혼란의 예를 몇가지만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교과서와 [한국지지]의 그림이 같지 않다. 예를들어 한국지지에서는 속리산에서 분지한다고 쓰여있는 노령산맥이 고등학교 지리부도(교학사,30쪽)에서는 분명하게 덕유산부터 그려져 있다.
2. 교과서 끼리도 국민하교, 중고등학교 따라 그림이 서로 다르다.
3. 한국지지 책안에서도 글 따로 그림 따로이다. 게다가 낭림산맥은 본문 해설조차 누락되어 있다.
4. 공적(公的) 책임이 덜한 여타 책이나 지도상의 혼란은 일일이 열거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지나(支那)방향이라는 광주산맥이 어떤 지도에서는(그래도 정부에서 감수한 지도이다) 지나 방향에 수직으로, 그러니까 동해안에 평행하게 달리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현행 인문지리서의 대표라 할만한 [한국의 발견](뿌리깊은나무 刊)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어떤 지질학자는 소백산맥의 속리산과 추풍령을 잇는 줄기에서 화강암이 나타나고 지질구조에도 연속성이 없기 때문에 문경새재까지를 소백산맥으로 한정하자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소백산맥은 속리산과 추풍령 사이에서 산맥으로서는 이상하게 방향이 변하고 있어 민주지산과 지리산을 이어주는 그 남서부의 산줄기들은 덕유산맥이라 함이 좋을 것 같다."
위 논란 부분은 사실상 소백산맥에서도 핵심 자리이다. 속리산 이후를 덕유산맥으로 빼낸 소백산맥이란 있으나마나인데도 그런 주장이 나온다. 요지는 어떤 주장의 타탕성 여부를 가리자는게 아니라, 현행 산맥개념이 갖고 있는 갈등의 한 편린을 보여주고자 함 뿐이다. 그 뿐인가. 어떤 이는 섬진강을 끼고 앉은 지리산과 백운산의 갈등에 고민하다 지리산맥을 따로 독립하자는 의견도 냈다. 호남 땅에만 해도 그외에 부흥산맥, 성수산맥해서 우리나라는 산맥이 많기도 많다.
위에서 또 한가지, "산맥으로서는 '이상하게' 방향이 변하고 있어"라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표현 속에는 '산맥은 어쨌거나 직선에 가깝게 뻗어가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자연이라면 구불구불한게 훨씬 '자연스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그려주었던 그 직선'의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는 발상으로 생각되는 대목이다.
[한국의 발견] 책에 노령산맥 혹은 소백산맥이라고 명시된 산들을 지도에 표시해 보면 노령산맥과 소백산맥이 마구 섞여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심한 경우 하나의 산을 두고 책의 어디에는 노령, 또 다른 곳에는 소백이라 쓰여져 있기도 하다.
글쓴이는 광주가 고향이다. 어렸을 적부터 "노령의 큰 산줄기" 하는 교가(校歌)를 부르며 자라 왔다. 지금도 광주 사는 사람 열에 아홉은 무등산이 노령산맥이라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지지]를 보면 분명 무등산은 소백산맥이라 적혀 있다.
하나의 산이 노령도 되고 소백도 될 바에는 산맥 분류란게 다 무슨 소용일까. 또한 전라도의 산이란 산이 모두 "너도 노령, 나도 노령" 할 바에는 그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어 외우게 하고 시험에 내는 걸까.
현실과의 괴리
산맥 개념이 안고 있는, 보다 큰 잠재적 문제점은 인문사회와의 연계 때 보여진다. 현실에 맞지 않는 산맥이 역사나 문화 연구의 기초자료로 제공되었을 때의 왜곡상이란, 얼핏 드러나지 않는 것이기에 더욱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다음은 교과서에서, 인문지리 개념으로 가르치고 있는 문장들을 뽑아 본 것이다. 진위를 따져보자.
5. 소백산맥을 넘기 위해 많은 고갯길들이 있었다 ( )
6. 소백산맥을 경계로 양쪽 사람들의 말씨나 생활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난다 ( )
산맥은 강을 포함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산맥을 넘는 가장 편하고 빠른 길은 강 그 자체이다. 고갯길이란 넘지 않으면 안될 때 선택하는 마지막 방법일 뿐이다. 강이 있는데, 누가 산을 넘겠는가. 따라서 고갯길이 '소백산맥'을 넘기 위해 생겼다는 말은 정확지 않다.
산맥은 강을 포함한다고 했다. 강은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시키는 통로라 했다. 그렇다면 강을 포함하는 '산맥'이 어떻게 문화적 경계가 될수 있을까? 게다가 너도 소백, 나도 소백 하는데 어디를 기준하여 경계선으로 보는 걸까. 예를 들어 [한국지지]에 '무등산은 소백산맥'이라 쓰여 있는데, 그렇다면 무등산 서쪽의 광주에 반해 동쪽의 화순은 경상도 말씨를 쓴다는 걸까.
위와 같은 논박은 얼핏 시비를 위한 시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처럼 사소한 모순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는 모순임을 깨닫지도 못하는 모순을 키우는 것이기에 그렇다.
더 많은 부분들은 '대간과 정맥'이 얼마만큼 정확하게 우리의 지리와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어차피 정맥이 옳으면 그에 반한 산맥은 저절로 옳지 않은 것일 터이므로 그렇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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