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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조석필의 산경표를 위하여

산경표 이야기 셋째 마당 - 2. 산맥이란

by 두타행 2011. 6. 28.

산경표 이야기 셋째 마당 - 2. 산맥이란

 

 

우리나라는 동쪽이 높고 서쪽은 완만한, 경동지괴(傾動地塊)의 구조라 한다. 지리학자에 의하면 그것은 비대칭 요곡운동(wrapping)의 결과로써, 주름 잡힌 곳은 산이 되었고 구조의 연약한 부분을 하천이 침식하여 현재의 지형이 되었다고 한다.

조산운동 과정 및 지질구조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크게 세가지 방향의 지질구조선이 있다고 했다. 또한 지상의 산줄기는 지하의 지질구조선에 '대체로' 일치한다고 보고('반드시'가 아니라 '대체로' 임을 눈여겨 두자), 그 생성 형성과정(process)에 의거해 산줄기를 분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론을 처음 제시한 것은 고또분지로 였고(1903년), 그에 따라 우측의 작은 그림을 그린 것은 야쓰쇼에이였다. 그림8은 우리나라 지리학의 원전(原典)이라 할 수 있는 [한국지지(韓國地誌)] 166쪽에 실린 산맥분류 그림인데, 야쓰쇼에이의 것을 조금 다듬어 완성시킨 것이다. 표시된 14개의 산맥들 역시 구조선 방향에 따라 [조선, 랴오뚱, 지나] 세가지 방향으로 분류되어 있음이 보인다.

현재 '산맥'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것은 이와같이 '땅속의' 일정한 선을 기준으로 하여, 거기에 '땅위의' 산들을 꿰맞춰 놓은 분류체계이다. 이러한 분류법은 땅속의 선이 땅위의 산과 '정확하게' 일치하기만 한다면 괜찮은 발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야쓰쇼에이의 그림을 보면, 지질구조선이 강은 물론 바다를 건너서까지 일직선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예를들어 마식령산맥의 선은 강화도까지 이어져 있다). 이론에 따르면 그 선들은 중국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즉 지질구조선 자체는 애초부터 산이냐 강이냐를 염두에 두지 않고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따라서 지질구조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과 강 모두를 포함할 수 있는 지질구조선에 山 만을 짜 맞춰 넣으려고 시도한데서 발생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지상의 산줄기에 상관 없이, 지질구조선 하자는 대로 따라 그려진 '산맥'에는 물길들이 포함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노령산맥만 해도 속리산에서 금강을 건너야 운장산에 닿게 되어 있다. 그것만 해도 문제인데, 더욱 나쁜 점은 "산맥에는 江도 포함되어 있다" 라는 엄연한 사실을 감춰버리고, 고백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국민학교 사회과탐구 4학년 1학기 118쪽을 보면 "산맥이란 산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어져 있는 줄기"라고 분명하게 쓰여 있다. 그래 놓고 바로 그 책의 그림에는 산맥이 슬그머니 강물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자세히 보면 보인다!).

이러한 모순이 그럭저럭 통용되어 왔던 것은, '땅맥'이라 불러야 마땅할 그 선을 산맥 즉 '산들의 맥'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포장해 왔던 덕분일 것이다. 지질학이 지리학의 이름으로 위장하여 행세해 왔던 그 과정을 의학에 빗대어 풀어 보자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우리 몸은 한개의 수정란이 여러 차례 세포분열을 거듭함으로써 형성되었다.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은 공통적 특성에 따라 몇가지 종류로 분류 될 수 있음이 사실이다. 그렇다해서 '눈에 보이는' 인체 구조를,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세포의 종류에 맞춰 분류해 불러야 하나? 예를 들어 입술과 엉덩이가 같은 세포 구조라해서, 그 둘을 하나의 기관으로 묶어 '편평상피 기관'으로 불러야 하나?

환자 : 제 몸 어디에 이상이 있는 건가요?

의사 : 편평상피기관에 염증반응이 있군요. 자세한 검사가 필요하겠어요.

도대체 내가 아픈 곳은 엉덩이일까, 입술일까? ― 조직학은 의과대학에서 필요한 학문이다. 일반인은 눈, 코, 입하는 해부학으로 충분하며, 편평상피 따위의 전문 용어는 배울 이유도 알아들을 의무도 없는 것이다 ― 지질학은 지질학과에서 필요한 학문이다. 일반인은 산은 산이라하는 분류로 충분하며, 지질구조 따위의 전문용어는 배울 이유도 알아들을 의무도 없는 것이다.

이제 다음에 제시한 문제에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산과 산맥에 관해 교과서에 나온 말, 혹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들을 적어 보았다. 맞는 진술에 ○표 해보자.

1. 산맥은 산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어져 있는 줄기이다 ( )

2. 산맥에는 강물이 포함되지 않는다 ( )

3. 산맥은 우리나라의 지형을 반영한다 ( )

4. 산맥은 교과서에서 배운다 (○)

 

많이 헷갈리셨는가. 그렇다면 이제 왜 고또분지로는 우리 고유의 산경표를 무시하고 어울리지 않는 지질구조 개념을 도입시켰을까를 생각해볼 시간이 되었다. 혹시라도 우리를 헷갈리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것은 아니었을까? '일부러'까지는 아니더라도 '미필적 고의'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금 헷갈리고 있으니까... 참고로 말씀드리건데 우리에게 산맥을 선물해주고 떠났던 일본 사람들은 진즉에 지질구조 개념에 입각한 산맥 이름들을 용도 폐기하고, 다른 이름으로 바꿨다는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