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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조석필의 산경표를 위하여

호남정맥 보고서 - 1. 시작하기 전에

by 두타행 2011. 6. 28.

1. 시작하기전에

 

▲ 호남정맥이란

산경표를 보면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고, 그것이 다시 금남정맥 및 호남정맥으로 나뉘며, 호남정맥은 그 시작점이 웅치(현지명 곰치재)라 적혀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종주 답사했던 462km 중 63.3km은 금남호남정맥이었고 나머지 398.7km만이 순수한 호남정맥인 셈이다.

그러나 앞에 밝혔듯, 우리는 금남호남정맥을 금남정맥이기도하고 호남정맥이기도하는 '공통부분'으로 보기로 했다. 그렇게하여 읽은 산경표를 현(現)지명으로 말하자면 '영취산에서 백운산까지의 462km'인 것이다.

호남정맥은 호남 땅을 달리는 산줄기이다. 시작인 영취산이 경남 함양과의 경계선일 뿐, 이후 모든 산과 고개가 전라도 행정구역만을 누빈다. 전라북도 땅에 157.3km, 도경계(道境界)로 61.0km이며 나머지 243.7km가 전라남도 땅이다. 장수, 진안, 완주, 임실, 정읍, 순창(이상 전라북도), 그리고 장성, 담양, 곡성, 광주, 화순, 보성, 장흥, 승주, 구례, 광양(이상 전라남도)해서 16개 시군을 통과한다.

호남정맥은 섬진강을 에두른 산줄기이다. 총론에서 정맥은 두개의 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라 했는데, 그 중 한쪽이 언제나 섬진강이라는 말이다. 반대쪽은 구간에 따라 금강,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 기타, 그렇게 된다. 한마디로 종주등반 도중 왼쪽 사면에 오물을 버리는 일은 언제나 섬진강물의 오염으로 귀결된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되겠다.

정맥과 대간의 이해는 물길의 이해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호남정맥 그림을 조금 손질하여 다시 싣고(그림 14), 이어서 요약표를 반복하기로 했다. 영취산에서 출발하는 호남정맥 선을 따라가며, 분기점과 함께 좌우 물길을 훑어보기 바란다.

정맥이 젖줄 노릇을 하고 있는 여섯 강(안쪽 1개, 바깥쪽 5개)의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본 보고서는 내내 따분한 책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호남정맥 총 462.0km를 수역별로 보면

 

안쪽 462km는 전부가 섬진강의 젖줄이고

바깥쪽 462km는 다음과 같은 강의 젖줄이 된다

금강 63.3km (영취산 →주화산 ) [산경표]의 금남호남정맥 부분

만경강 50.9km (주화산 →분기점3) [산경표]의 호남정맥 부분, 398.7km

동진강 40.6km (분기점3→분기점4) (주화산→백운산)

영산강 168.5km (분기점4→분기점5)

탐진강 26.1km (분기점5→사자산 )

기타 112.6km (사자산 →백운산 )

호남정맥 총 462.0km를 행정구역별로 보면

전라북도 157.3km (영취산→상왕봉 ) : 장수,진안,완주,임실,정읍,순창군

전남북경계 61.0km (상왕봉→설산어깨) : 전북 순창군 / 전남 장성,담양군

전라남도 243.7km (설산어깨→백운산) : 장성,담양,곡성,광주,화순,보성,장흥,

승주,구례,광양

 

몇가지 약속

앞으로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약속으로 한다.

1. 호남정맥이라 함은 산경표 상의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을 합쳐 부르는 명칭이다.

2. 왼쪽, 오른쪽하는 '방향'은 영취산을 출발점, 백운산을 도착점으로 한 것이다.

실제 답사는 구간에 따라 역방향으로 종주를 한 곳도 있었지만, 그런 곳은 개별 구간 종주기나 도표에서 따로 표시하였고, 포괄적 서술을 할 때는 위 방향대로 했다. 따라서 정맥상에서 '왼쪽'이라함은 언제나 섬진강 물길을 가리킨다.

3. 개념도를 비롯하여, 지명, 고도, 기타 모든 지형학적 사항은 국립지리원 1:50,000 지도를 기준으로 한다.

지도에 명칭이 없는 경우에만 가까운 마을 이름 등을 따서 명명 했을 뿐, 일단 5만 지도에 명칭이 있기만 하면 설혹 그것이 오류이거나 혹은 1:25,000 지도와 표기가 다른 것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썼다. 전달상의 혼동을 피하기 위함이다.

4. 표시된 거리는 1:50,000 지도상의 도상(圖上)거리이다.

따라서 실제 운행거리는 보통 그것의 1.5배 이상, 경우에 따라서는 2배가 되기도 한다.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사람과 산]에서 백두대간 남단 종주에 이어 북녘 땅에 등반 신청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거기 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 겠지만 - 꿈은 사라지고, 이어 낙동정맥 종주가 시작되었다. 신영철 대장이 개인 사정(이랬자 산에 가는 일 밖에 더 있겠나! 히말라야 다녀올 일이 생겼었다)으로 두달 당겨 종주를 마친 무렵, 편집실에서 전화가 왔다. 다음은 호남정맥이 어떻겠느냐고.

정말이지 이처럼 발목 잡혀 사는 처지 될 줄을 그 때 미리 알았더라면, 분명히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계획 세우랴, 산행하랴, 다녀 오면 원고지 메꾸랴, 그 뿐인가? 생각만해도 잠이 달아나는 스트레스, 마을 취재라니. 때로는 문학사를, 어떨 때는 붕당정치를 읽어야 했지만 그래도 원고 넘기고 나면 늘 부끄러움 뿐이었다. 호남정맥과 함께, 해 뜨고 지는 줄 모르고 보냈던 한해였다. 그리고 이제 보고서 쓴답시고 몇십날 밤잠을 설치고 있는것이다.

전체 구간을 열로 나눠봤더니 한 달 몫이 대략 40-50km, 너닷새의 등반일수를 요하는 거리로 나왔다. 달마다 그만한 시간을 내기란 불가능 했기 때문에 궁리 끝에 두개조로 나누어 종주하는 방식을 생각해 냈다. 양 끝에서 출발해 가운데 지점에서 만나기, 혹은 그 반대 방법들이 연구되었다. 나중에는 구간 할당만 해주고 방식이나 날짜는 알아서 해치우라는 요령까지도 생겼다.

시간 제약에 따른 편법이긴 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필자 한사람의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이 다양한 각도와 상황에서 겪은 호남정맥을 충실하게 수렴한 보고서가 작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그보다 더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바로 만나는 재미였다. 이삼일 씩 아무도 없는 적막강산을 걷다가 맞은 편에서 불쑥 나타나는 '동지들'과 얼싸안는 재미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산행의 또 다른 맛이었다. 특히 모래재에서의 상봉 -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약속 지점에 정확히 10분 간격을 두고 도착했던 - 이 극적이었는데, 이날을 계기로 전남북 빨치들은 전생의 인연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전북 팀과의 추억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고마움이란 말 대신 쓴다). 생면부지의 처지에 어떻게 끈이 닿아 "여러분 땅은 여러분 손으로 해결함이..."하고 슬쩍 미끼를 던져 봤을 뿐인데, 덥석 물고 올라온 고기(?)가 뜻밖에도 싱싱하고 의리있는 월척이었던 것이다. 특히 여자대원들이 부러웠다. 막걸리를 물 마시듯 하는, 게다가 아직도 남자선배들을 '형'이라고 부르고 있는(이미 한물 간 유행어인걸로 알고 있다) 그 완강함이 그랬다. 전주 산다면 늘 산행을 함께 하고싶은 산악회가 바로 파이오니어스였다.

어떤 이가 물어 왔다. "호남정맥이라는 말이 [사람과 산] 잡지사에서 만들어낸 산맥 이름 아니었던가요?"

'마지막 원고도 넘겼으니 이제 발 뻗고 잠 좀 잘 수 있겠군' 하고 느긋해 있던 어느 날에 당했던 질문이었다. 당혹스러웠다. 결국 '발 뻗고 자기'를 두어달 유예하고, 보고서라는 책자를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잡지라는 매체가 갖는 표현상 혹은 지면상의 제약이, 대충 대충 읽고 마는 독자들에게(대부분이 그럴 터이다)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를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 추구하는 방향은 따라서, 대부분을 '정확히 알리자'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듯, 지난 일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호남정맥에 관한 한 과거 뿐 아니라 보고서 때문에 몸부림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싫지는 않다. 목적과 명분이 확실한 작업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호남정맥 열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힘이 되어 준다. 산에서 얻어온 만큼 갚아야 하는 일이므로 그렇다.

하루 종일 걸어도 나뭇가지 바스락거리는 소리 외에는 들을 수 없는 호젓함. 새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대원들의 숨소리...정맥은 아름다웠다. 이름 모를 계곡에서의 하룻밤 잠자리는 행복했고, 아침이면 눈을 간지럽히는 햇살이 찬란했다.

그리하여 호남정맥은 나에게, 산을 보는 방법을 새롭게 가르쳐 주었다. 아주 새롭게... 아니, 새로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겠다. 그것은 행복, 산에서 느끼는 진정한 행복에 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