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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고지도

옛지도 올바로 이해하기

by 두타행 2011. 6. 2.

옛지도 올바로 이해하기

우리나라의 지도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째 단계는 지도 '보기'이다. 지도의 채색, 형태의 옳고 그름, 방향, 거리 등을 눈으로 보고, 지도가 정확한 지, 내가 원하는 내용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지도 '읽기'이다. 지도의 초점이 무엇인가, 어떤 내용은 왜 그렇게 크게 그려져 있는가, 왜 잘못 그려져 있는가 등을 머리로, 지식으로 파악하는 일이다.

다음, 지도 이해하기의 마지막 단계는 지도에 침잠하기 즉 '감상하기'이다. 지도와 하나가 되어 지도를 즐기면서 지도에 몰입하는 경지로서, 가슴으로 지도를 이해하는 단계다. 이 세 과정의 이해하기는 옛지도일수록 요청된다. 어느 단계까지 지도와 마주하였느냐에 따라 같은 지도에 대해서도 평가가 달라진다.특히 회화식 지도의 경우 그러하다.

우리나라 고지도의 특징은 회화식지도 즉 그림지도가 많은 점이다. 우리 선조들은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지도를 제작하면서도, 예술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족자나 병풍으로 만들어 감상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회화식지도의 가치가 발휘된 지도는 군현지도나 궁궐도, 관아도 같은 특수도였다.



(그림 1 : 전주부지도) 전주부지도
철옹성이라 불렸던 평안도 영변의 <철옹성전도(鐵瓮城全圖)>, 복숭아꽃이 만발한 <전주부지도(全州府地圖)>, 원산의 개항기 모습을 시원스레 그린 <원산지도(元山地圖)>, 삼도수군통제영 즉 통영의 모습을 그린 <통영지도(統營地圖)>, 10폭 병풍으로 짜놓은 <함흥지도(咸興地圖)> 등은 분명히 한 폭의 풍경화이다.

그림지도의 장점은 이해가 쉽고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해 주는 점에 있다. 그림지도는 눈으로 보는 순간 그 지역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며, 지역의 산천과 마을, 도로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지도를 만드는 사람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생략하고, 강조하고 싶은 내용, 알려주고 싶은 내용을 자세하게 알려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회화식지도 즉 그림지도는 원시적인 형태의 지도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지도가 일반에 가장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지도 양식이다. 기호에 대한 지식, 설명이 필요없이 지역에 곧바로 도달할 수 있으며, 예술적 감동까지 줄 수 있어 감상을 위한 예술품으로 지도가 가까이 곁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옛지도는 보편적인 가치와 특수한 가치의 양 측면에서 파악해야 지도의 본래의 면모에 접근할 수 있다. 보편성이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지도로서의 특성과 내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담고 있는가 하는 내용과 형식의 문제이다.

지도의 일차적인 목적은 특정 지역의 자연환경 및 인문환경의 모습과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지도의 내용이 얼마나 정확하고 풍부한가가 지도의 가치를 평가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된다. 우리의 옛지도 중 정상기의 지도, 김정호의 지도를 훌륭하고 과학적인 지도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지도의 특수한 가치란 지도를 심리학적, 사회학적, 인류학적 측면에서 관찰하고, 지도에 반영된 지리적 인식을 파악하는 일이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나 도상학(iconography)적인 연구와도 관련된다. 우리가 흔히 부정확한 지도로 치부해 버리는 지도 중에는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 공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많다.


(그림 2 : 도성도) 도성도

옛지도는 일차적으로 그 지도를 그린 사람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것이지만, 나아가서는 그러한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허용한 이용자나 사회분위기 속에서 탄생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이 옛지도를 보면서 느끼는 이질감이 있다. 제주지도인 <탐라도(耽羅圖)>와 서울지도인 <도성도(都城圖)>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지도의 위쪽을 남쪽으로 표시한 방위의 문제, 읍 중심부의 상세한 표현과 주변과의 비대칭, 읍 중심부 위치를 지도의 중앙에 그리는 것, 글씨들이 여러 방향으로 누워 있는 등의 표현은 당시의 지역을 바라보는 사고 즉 서울, 임금, 읍치(邑治) 중심의 사고를 반영하는 것이다

비사실적이고 상상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원형 '천하도'는 분명히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지도는 현실의 땅만을 그려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미지의 땅, 마음 속의 땅, 상상의 나라들을 조선인은 지도로 형상화한 것이다. 상상의 세계는 인간의 정신세계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역사적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한국의 지리학과 지리학자』(양보경 글)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