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지방지도 총설
임란, 호란의 양란을 겪은 조선사회는 18세기 영·정조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각종의 문물 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중심 산업인 농업부문의 생산력이 높아지고 이와 더불어 상품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이 시기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만 아니라 문학·예술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적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지도제작에서도 이 시기는 최고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19세기로 넘어가면서 조선사회는 세도정치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三政의 문란 등으로 민생의 안정이 위협받게 되었다. 관료사회의 부패는 정상적인 국가 정책의 집행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그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外戚의 세도정치를 일소하고 당쟁을 타파하며, 군제를 정비하고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한다.
특히 두 차례의 洋擾를 겪으면서 서양의 침략에 적극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방과 치안을 위한 관제 개정, 軍制의 개편, 군사시설의 확충과 경비의 강화, 軍器의 정비와 실험 등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지방의 실정 파악은 시급한 과제였고 이를 위해 1871년에는 전국적인 邑誌 편찬사업을, 이듬해인 1782년에는 전국적인 차원의 지도제작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 때 제작된 지도들은 郡縣지도뿐만 아니라 營·鎭堡·牧場·山城 등을 그린 지도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한 시기에 제작되어 收合된 지방지도로는 가장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지도는 1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제작되어 收合되었기 때문에 통일적인 제작 원칙 하에 체계적으로 그려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전 시기의 지도보다 큰 규격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지도에 들어있는 정보량은 현재 남아 있는 다른 郡縣地圖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풍부한 편이다.
※ 자료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전라도 전주지도
▲ 전라도 용담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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