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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고지도

한국인의 전통적 지리관

by 두타행 2011. 6. 2.

한국인의 전통적 지리관


1. 머리말
현대 지리학(地理學)은 땅을 광물(鑛物)과 무생물(無生物)로 취급하고, 농산물, 광산물, 임산물 등 경제적 재화의 원천이라는 측면에서 땅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땅은 인간의 이용에 맡겨지는 피동체이다. 근대 이전의 전통지리학은 두 개의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현대지리학과 마찬가지로 땅을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측면에서 보는 관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땅을 생명체(生命體)로 이해하고, 땅의 생명력, 즉 지력(地力)과 지기(地氣)가 인간의 행복을 크게 좌우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전자가 물질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이라면, 후자는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지리전문가들은 땅을 이용후생의 관점에서 중시하는 반면, 일반 유학자들은 정신적,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지리학의 발달과정을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정신적 접근에서 시작하여 과학적 접근으로 이동하면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이전의 지리학은 실상 두 가지 접근법이 대립되어 있다기보다는 서로 조화하고 절충하는 모습이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절충성이 땅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현대지리학과 다른 점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세기 동안 현대지리학의 세계관을 가지고 땅을 이용하여 이용후생을 높여 왔다. 이른바 국토개발이 그것이다. 그런데 개발이 극대화되면서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이 점차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오늘의 자연재해는 사실은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파괴에서 오는 인재(人災)인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그래서 자연, 특히 땅을 생명체로 생각하고 애정과 경애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과거의 전통지리학을 일방적으로 미신으로 이해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통지리학에 대한 재평가가 현대지리학의 과학성과 효용성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될 것이며, 전통지리학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자세도 옳지 못하다. 중요한 것은 전통지리학과 현대지리학이 다시 만나서 새로운 지리학을 탄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없겠는가를 조심스럽게 탐색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목적에서 쓰여진 것이다.


2. 풍수지리학의 원리
전통지리학의 원초적 형태이자 전문적 지리학을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이라 부른다.
우선 전통지리(傳統地理)를 '학'(學)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양해를 먼저 구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을 보면, 문사철(文史哲)을 전공하는 유학 이외에 잡학(雜學)이라는 것이 있고, 잡학 전공자를 관리로 선발하는 잡과(雜科)가 있다. 잡학에는 의학(醫學), 천문학(天文學), 지리학(地理學), 명과학(命課學), 산학(算學), 율학(律學), 화학(畵學) 등이 속한다. 잡학도 모두 학(學)으로 부르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 통용되었던 지리학이라는 용어를 구태여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서양의 지오그라피(Geography)를 지리학으로 번역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지리학보다는 지학(地學)으로 번역하는 것이 오히려 본뜻에 가까울 것이다.

지리학은 땅에 이치가 있다고 보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이치가 바로 생명체이론(生命體理論)이다. 땅을 생명체로 보는 것은 모든 우주 만물을 생명체로 보는 우주관과 관련되어 있다. 크게 보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하늘, 땅, 인간이 모두 유기적으로 생명체를 이루고 있으며, 작게 나누어 보면, 땅 위에 있는 모든 산과 물 그리고 인간도 유기적 생명체요 작은 우주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은 생명체로서의 의지와 이치를 가진다. 하늘의 큰 의지와 원리를 천리(天理)라 한다면, 땅의 원리와 의지가 지리(地理)다.

사람은 하늘과 땅에 의지해 살고 있는데, 하늘은 간접적이고 땅은 직접적이다. 그래서 하늘은 아버지, 땅은 어머니에 비유된다. 예로부터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지모신(地母神)이 숭상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리학은 바로 땅을 인간의 어머니로 간주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땅이 지닌 그 모성의 생명력이 인간과의 감응(感應)을 통해서 인간의 길흉(吉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전통시대의 지리학은 이른바 감여가(堪輿家), 지관(地官), 지사(地師) 혹은 풍수사(風水師)로 불리는 지리전문가가 담당했다. 『경국대전』에는 지리학 시험과목으로 『청오경』(靑烏經), 『금낭경』(錦囊經), 『호순신』(胡舜申), 『명산론』(明山論), 『지리문정』(地理門庭), 『감룡』( 龍), 『착맥부』(捉脈賦), 『의룡』(疑龍), 『동림조담』(洞林照膽) 등의 경전이 나와 있다. 이 책들은 모두 땅의 이치를 논한 것이다. 여기에는 어느 땅이 사람 살기에 좋은 길지(吉地)이고, 어느 땅이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여 양택(陽宅, 주택)과 음택(陰宅, 무덤)을 짓거나, 도읍(都邑)이나 마을 정하거나, 땅의 지형을 그리는 방법, 즉 지도를 작성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길지가 아닌 곳은 이를 피하거나 보완하는 시설을 설치하여 살기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

그러면 땅을 생명체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땅에는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있고, 음양오행은 서로 작용하여 생명을 창조한다. 땅으로부터 인간이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산과 물과 바람이다. 이 경우, 산과 물은 반드시 높은 산과 강이나 하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요철(凹凸)을 가리킨다. 낮은 곳은 언제나 물이 고이게 마련이므로, 물이 있든 없든 물로 간주된다. 그런데 산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음(陰)이요, 물은 움직이므로 양(陽)이다. 또한 하늘을 기준으로 보면, 땅의 높은 곳이요(凹), 즉 음이 된다. 물은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철(凸), 즉 양이다.

음양은 서로 작용하여 생명을 탄생시킨다. 따라서 산과 물은 음양의 원리 속에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면서 생명을 창조한다. 땅에서 발생하는 생명을 지기(地氣)라고 한다. 인간은 이 지기의 영향을 받아 길흉이 좌우된다. 즉 지기가 잘 모이는 곳이 혈(穴)과 명당(明堂)이요, 이곳에 무덤이나 집을 짓고 살면 복(福)이 오는 것이다.지기는 땅 속에서 흐르는데, 이를 잘 간직하려면 바람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람이 지기를 날려보내면 지기는 흩어진다. 바람을 잘 간직하는 것이 이른바 장풍(藏風)이다. 명당은 바로 바람을 잘 간직하여 지기가 모여 있는 곳이다.

지기가 모이고 바람이 잘 간직되려면, 산과 물이 잘 배합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풍수에서는 산과 물이 잘 배합되어 있는 모델을 설정하고 있다. 그 모델이 바로 조산(祖山), 종산(宗山), 주산(主山), 안산(案山), 조산(朝山),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남주작(南朱雀)이론이다. 즉 뒤로는 큰산들이 조상들처럼 겹겹으로 뻗어 내리고, 앞으로는 나지막한 안산이 봉황새처럼 날아오르고, 좌우에는 용과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양의 산이 둘러싸고 있으면, 지기가 모이고 바람이 간직되어 잇는 혈(穴)이 생기고, 혈 앞이 명당이 된다. 이러한 명당에는 물도'지'(之)자나 '현'(玄)자처럼 흐르게 된다. 오늘의 서울을 연상하면 명당의 모델이 그려질 수 있다.

이 밖에도 명당의 모델은 수없이 많고, 명당이 아닌 곳을 보완하는 이론이 많지만, 그 이론이 모두 음양오행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3. 풍수지리적 국토관
풍수지리는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한국인은 이를 우리 국토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민족지리학(民族地理學)으로서의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오히려 중국보다도 한국에서 풍수지리는 더욱 맹위를 떨쳤다. 지도를 놓고 보더라도 중국지도는 풍수적 관점이 매우 약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도는 고려에서 조선말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풍수적 관점으로 일관되어 있다. 산의 높이보다는 산맥의 흐름을 중요시하여 그리는 방법, 즉 간룡법(看龍法)이 적용되고, 전국의 8도를 오행(五行)의 5방색(5方色)으로 구별하여 채색을 넣은 것이 그것이다.

또한 한반도를 사람이 서쪽을 향해 서 있는 모습으로 이해하고, 백두산(白頭山)을 한반도의 태조산(太祖山)이자 인체(人體)의 머리로 간주하여 장엄하게 그려 넣고, 백두산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 하여 인체의 척추(脊椎)로, 백두대간에서 서쪽으로 뻗은 13개의 작은 산맥들을 정맥(正脈)으로 표현한 것, 그리고 제주도와 대마도를 인체의 두 다리로 이해한 것도 전형적인 풍수적 관점이다. 말하자면 한반도를 살아 있는 생명체의 형상으로 보는 것이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서울과 전국의 모든 읍(邑)들이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도시와 취락으로 조성되었고, 또 그러한 관점에서 지도에 형상화되어 있다. 한반도 안의 수많은 도시와 취락은 한반도라는 큰 생명체와 유기적 관련을 가지면서 독자의 작은 생명체를 형성한다. 이 경우, 백두대간과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곳이 생기(생기)가 왕성하여 길지(吉地)가 많고, 큰 인재를 많이 낸다. 조선후기에는 한반도 전체를 풍수적 관점에서 체계화하고, 그것이 한국인의 생활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이 이른바 실학(實學)과 연계되어 크게 발달했다. 특히 정계에서 밀려나 재야생활을 하면서 여행경험이 많았던 남인(南人)의 학문이 그러했다.

17세기 남인 허목(許穆)은 "지승"(地乘)이라는 글에서 중국과 다른 우리나라풍기(風氣)의 특색을 논하고, 우리나라를 다시 몇 개의 풍토권(風土圈)으로 나누어 각 지방별 풍기의 특색을 논하였다. 허목은 우선, 우리나락 중국의 동방에 있어서 오행(五行)의 목성(木性)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이 어질고 예의바르다고 한다. 목성은 인(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나라는 풍기(風氣), 성음(聲音), 요속(謠俗), 기욕(嗜慾)이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풍수적 지리환경의 차이에서 문화의 차이가 생겼다고 보는 입장이다. 허목은 우리나라의 지리와 문화의 특성이 그러하므로 정치도 이러한 특성에 맞추어 인후(仁厚)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허목은 나아가 한반도 자체도 지역적 특성이 매우 강하다고 본다. 예컨대 백 리마다 풍속이 다르고, 천리마다 노래가 다르며, 남방에는 새가 많고, 북방에는 짐승이 많다. 나라의 크기는 비록 중국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지역적 다양성은 중국과 비슷하다. 18세기 성호(星湖) 이익(李瀷)도 풍수적 논설을 많이 썼다. 그도 우리나라가 동방의 목성(木性)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인성(人性)이 착하고 문명(文明)이 일찍부터 발달했다고 보았다. 이익은 경상도에 인재가 많은 것은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가깝고 중수(衆水)가 낙동강으로 모여 인심이 흩어지지 않은 까닭이라고 했다.

이익의 족친 이중환(李重煥, 1609 ∼ 1756)은 남인 지리학을 집대성하여 유명한 『택리지』(擇里志, 일명 八域志)를 저술했다. 이 책은 뛰어난 인문지리서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풍수지리가 깔려 있다. 이 책의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 이중환은 "대저 사람이 복거(卜居)하는 땅은 지리(地理)가 으뜸이고, 생리(生理)가 다음이고, 인심(人心)이 그 다음이고, 그 다음이 산수(山水)다. 네 가지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낙토(樂土)가 아니다."라고 하여 낙토의 조건으로 지리를 가장 먼저 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리란 물론 풍수지리를 가리킨다. 즉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인 곳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뜻이다.

이중환은 지리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① 수구(水口), ②야세(野勢), ③산형(山形), ④토색(土色), ⑤수리(水理), ⑥조산조수(朝山朝水)의 여섯 가지 조건을 들고 있다. 이 모두가 풍수지리의 이론이다. 이토록 지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땅에 생색(生色)과 길기(吉氣)가 없으면 인재(人才)가 나지 않기"(卜居總論 地理) 때문이다. 땅에는 생색과 길기가 있을 뿐 아니라, "땅에는 선악이 있다"(四民總論)고도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어디가 생색과 길기가 있고, 어느 땅이 선(善)하고, 어느 땅이 악(惡)한가를 따지는 것이 『택리지』의 첫째 과제이고, 그 다음에 각 지역의 생리(生理), 즉 농업과 상공업 조건을 따지고, 그 다음에 각 지역의 인심과 인물과 향토사를 논하고, 그 다음에 산천의 생김새를 살피고 있다. 여기서 지리(地理)를 제외한 생리(生理), 인심(人心), 인물(人物), 역사(歷史) 등은 바로 근대적 인문지리(人文地 理)에 해당한다. 따라서 『택리지』는 이용후생적, 인문적 지리관과 풍수적 지리관을 혼합하여 어느 곳이 사대부(선비)들이 살 만한 곳인가를 분석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이중환과 비슷한 시기의 유명한 지리학자로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의 「여지고(輿地考)」를 편찬한 바 있는 신경준(申景濬, 1712 ∼ 1781)도 우리나라의 산과 강을 풍수적 시각과 인문지리적 시각을 합하여 상세하게 정리했다. 그는 「산수고(山水考)」라는 글의 서문에서 산과 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하나를 근본으로 하여 만개(萬個)가 나누어지는 것이 산(山)이다. 만개로 갈라진 것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물이다. 우리나라의 산수(山水)는 12개로 대표된다. 백두산(白頭山)이 나뉘어 12산(山)이 되고, 12산이 나뉘어 8도의 여러 산이 되었다. 8도의 여러 물이 합하여 12수(水)가 되고, 12수가 합하여 바다가 되었다. …나뉘고 합치는 묘(妙)를 볼 수 있다.'

산은 나눔의 원리가 있고, 물은 합침의 원리가 있다는 이른바 '분합'(分合)의 이론은 풍수적 발상이다. 국내의 모든 산이 백두산에서 갈라졌다고 보는 것도 풍수가들이 항용하는 말이다.「산수고」안에서 산과 강을 각각 경(經)과 위(緯)로 나누어 정리한 것도 이 까닭이다. 그러나 신경준은 우리나라 산과 강을 풍수적 체계 속에서 이해하면서도, 산과 강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그 위치와 거리, 형태, 기능 등을 극히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정리하였다. 풍수지리와 인문지리를 통합한 것이다.

조선후기의 지리서로서 『산경표』(山經表)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신경준의 저서로 알려져 왔으나 작자 미상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 책은 문자 그대로 우리나라의 산을 경위(經緯)관념을 가지고 체계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산을 백두대간(白頭大幹)에다 중심을 두고, 그 다음 등급으로 장백정간(長白正幹)을 말하고, 그 다음으로 백두대간에서 가지친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체계화하면서 정맥의 이름을 강을 중심으로 호칭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청천강 이북의 산맥은 청북정맥(淸北正脈), 청천강 이남의 산맥은 청남정맥(淸南正脈), 한강 이북의 산맥은 한북정맥(漢北正脈), 한강 이남의 산맥은 한남정맥(漢南正脈)으로 부른다. 이와 같이 산맥(山脈)을 먼저 체계화한 다음 각 산맥에 속한 개별적인 산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산맥을 대간, 정간, 정맥으로 급(級)을 다르게 매긴 것은 인체의 뼈에 척추, 어깨뼈, 갈비뼈의 등급이 있다고 보는 관념과 관련이 있다. 역시 생명체이론이다. 또한 정맥의 이름을 강을 기준으로 붙인 것도 산수(山水)를 뼈와 혈관과의 관계로 보고, 나아가 산수를 음양관계로 이해한 것을 의미한다. 산수를 뼈와 혈관으로 이해할 때, 산맥은 결코 끊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뼈가 끊어지면,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지표상으로는 산맥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경우라도 산맥은 지하로 이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고지도에서는 산맥을 그릴 때 모든 산맥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그린다. 이 점은 산맥을 끊어서 그리는 오늘날의 지도작법(地圖作法)과는 전혀 다르다. 참고로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산맥이름은 구한말 일본인 학자가 창씨개명한 이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맺음말
땅을 살아 있는 유기체, 생명체로 보고, 땅의 생기(生氣)를 인간이 받음으로써 인간의 행복이 증진될 수 있다고 보는 우리의 전통적 지리관은 현대지리학이나 현대과학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신비적 요소가 들어 있다. 그리고, 땅의 생기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무덤을 쓰려는 풍속이 빈번한 산송(山訟)을 야기시켜 사회적 폐단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종교의 폐단이 있다 하여 그 종교가 원리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통지리학의 폐단이 있었다 하여 그것을 일방적으로 미신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삼가야 한다. 전통지리학은 땅을 죽은 것으로 간주하여 인간이 마음대로 파괴할 수 있다고 믿는 현대인들에게 땅에 대한 경외심과 땅에 대한 사랑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 고지도에 그려진 백두산은 사실 이상으로 크게 과장되어 그려져 있어서 과학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그려진 현대 지도의 백두산을 보면 백두산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지만, 고지도에 그려진 백두산을 보면 한없는 사랑이 솟구친다.

풍수지리학이 미신이냐 아니냐는 쉽게 결론이 내려질 문제가 아니다. 이는 앞으로 더 많은 검증과 실험을 거쳐야 할 미해결의 과제다. 중요한 것은, 전통지리학과 현대지리학을 양자택일적 시각에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양자가 평화공존하면서 피차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땅과 한국인의 삶』의 「한국인의 전통적 지리관」(한영우 글)

 

※ 자료출처 : 안강님의 백두대간 첫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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