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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대동여지도&김정호

새로 쓴 교과서의 김정호

by 두타행 2011. 6. 1.

새로 쓴 교과서의 김정호

                                                                                                      김영자


"어서 와. 오느라고 힘들었지 ?"
소년 김정호는 친구 최한기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최한기는 방으로 들어서며 들고 온 책 보퉁이를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정답게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정답게 마주 앉았다. 김정호와 최한기는 어릴 적부터 뜻이 잘 맞아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이게 그 책들인가 ?"
김정호는 얼은 책 보자기를 풀었다. 집안이 가난한 그는 양반 자제로 부유하게 사는 최한기에게서 언제나 책을 빌려 읽곤 하였다.
"음, 이것이면 우리 고장의 지리지를 쓸 수 있을 것 같네."
김정호는 늘 자기 고장의 지도와 지리지를 만들고 싶어하였다. 지리지란 그 지방의 기후나 토지, 산물, 인구 등의 상태, 그리고 그 지방과 관련된 과거와 현재의 중요한 사실들을 기록한 책을 말한다.
"지도를 만들려면 그 곳을 여러 번 가 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
최한기의 말에 김정호는 고개를 저었다.
"얼핏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그러나 그렇지 않아. 그냥 돌아만 다닌다고 해서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높은 산에 열 번을 올라가 지형을 살피고 그린들 온전한 지도를 만들 수 있겠어 ? 지도를 만들려면 우선 많은 지식이 필요해."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 지식부터 다져야 한다는 것이 김정호의 생각이었다. 최한기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김정호의 정열은 변함이 없어 지도 그리는 일을 삶의 전부로 삼았다. 김정호가 살던 1800년대는 이미 조선 초기와는 달리 사회가 많이 변하였다. 그래서 그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지리지와 지도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김정호는 우선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많은 지리지와 지도를 살펴보았다. 지리지를 서로 비교해 보니, 엇갈린 기록이 많아 어느 한 기록을 따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여러 지도를 살펴보니,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거기에 기록된 내용은 이미 옛날 것이었다.
또, 각 고을의 지도를 만든 방법이 달라 서로 연결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점들을 새로이 보완하고 고쳐서 1834년에 통일된 우리 나라 지도를 완성하였다. 이것이 그가 서른 살 무렵에 남든 청구도이다. 이와 함께 그는 새로운 지리지도 만들었다.
김정호는 그 고을에 양반 수가 얼마나 되며 그 족보가 어떻다는 내용은 지리지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 고장 발전에 기여한 사람이나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양반과 상민을 가리지 말고 기록에 남겨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김정호는 지리지가 지도의 근본이 되므로,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산줄기를 중심으로, 이 쪽과 저 쪽의 기후가 다르고 말도 다르다. 그리고 환경에 따라 생활 방식도 다르다. 그냥 땅만 갈라 표시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지리지와 지도를 함께 보아야 그 지방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1856년, 김정호는 <동여도>를 완성하였다. 이 지도는 궁궐뿐만 아니라 관청에서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지도 역시 종이에 그려서 만든 것이라 여러 곳에서 사용하려면 일일이 붓으로 베껴야만 했다. 이러한 작업은 매우 힘들 뿐만 아니라, 뭇 백성이 보아야 제 땅을 지키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정확한 지도를 대량 생산하기 위하여 목판에 지도를 새기기로 결심했다.
하루는 최한기가 김정호를 찾아갔는데. 몹시 앓고 이었다.
"아니, 이마가 불덩어리일세. 식구들은 어디 가고 ?"
"논에 벼 이삭 주우러 갔네. 내가 아프다고 누가 방에 자꾸 드나들면, 일하는 데 방해가 돼. 그래서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어."
최한기는 상처투성이가 된 김정호의 손을 보고 더욱 놀랐다. 손은 부르트고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방 안에 목판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게 아니가 ?
"목판을 만들기 시작했군."
최한기는 김정호의 열정이 눈물겨웠다.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면서 이처럼 고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구도 변변치 않던 그 때에 나무를 삶고 그늘에 말려서 톱으로 고르게 켠 다음, 일일이 손으로 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도 좀 도와 줌세."
최한기는 번번이 김정호의 행동에 감동하곤 하였다. 그는 일찍이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열심히 새로운 학문을 배웠다. 그러면서 틈틈이 김정호의 지도 만드는 일을 도왔다.
김정호는 가로의 길이가40센티미터 정도, 세로의 길이가 30센티미터 정도인 목판 앞 뒷면에 도엽 126장을 새겼다. 그는 목각을 종이에 찍어 보고, 틀린 곳이 있으면 당장 고쳐서 완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마침내 1861년, 그는 오랜 고생 끝에 <대동여지도>를 완성하였다. 그 목판을 종이에 찍어 이어 놓으면 그 높이가 이층 건물보다 높은 6미터 60센티미터나 된다.
<대동여지도>의 '대동'은 우리 나라를 일컫는 말로, 동방의 큰 나라라는 뜻이다. 이 말에는 우리 나라가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큰 존재라는 의미도 있다. 김정호의 이러한 생각에서 우리는 그의 자주성을 엿볼 수 있다.
<대동여지도>는 생명의 원천인 물줄기를 중심으로 지형을 나타내고 있어, 산과 물의 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지도 제작법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기법인데,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에서 이 전통 기법을 보다 정확하게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김정호는 지도에 십 리마다 점을 찍어 고을 사이의 거리를 표시하였다. 그리고 산성과 봉수대도 나타내어, 나라가 위급할 때에 군사 지도로도 쓸 수 있게 하였다.
김정호는 지도 그리는 일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아 <대동여지도>와 같은 위대한 문화 유산을 남겼다.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한 김정호의 정신은 그가 만든 지도와 함께 언제까지나 우리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 위 글은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역사를 바로 알리려는 분들의 쉼 없는 노고에 힘입어 1997년 교과서 개편 때 왜곡된 사실을 모두 바꾸고 , 정말 존경받아야 할 고산자의 인생 역정을 사실적을 그려냈습니다. 진실의 힘과 보이지 않는 분들의 열정이 되돌려 놓은 역사를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 이 資料는 안강님의 백두대간 첫마당에서 옮겨온 資料이며 자료를 사용하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자료를 使用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안강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