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알려진 김정호
소년의 꿈
인적이 드문 산길을 한 소년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빨리 걸었기 때문에 몹시 숨이 가빴지만, 소년은 쉬지 않고 계속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윽고 소년은 산봉우리에 올라섰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와락 안겨 왔습니다. 소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지도를 손에 펼쳐 든 채, 산 아래를 굽어보았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지도와 실제의 지형을 살피던 소년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엉터리야 ! 도대체 맞지를 않아. 그래, 내가 한 번 그려 보자."
소년은 주먹을 불끈 쥐며 결심하였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훗날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입니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 싶은 소년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 싶은 소년
저녁 설거지를 마친 어머니는 베를 짭니다. 아버지는 잠이 들었습니다. 아들 정호는 호롱불 밑에서 널빤지에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게 뭔데 여태 들여다보느냐?"
"우리 동네를 그린 그림이에요."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정호가 내민 널빤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이건 장터로 가는 길, 이건 산으로 가는 길, 샘터, 서낭당,......"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 눈이 금방 휘둥그래졌습니다. 이런 그림을 방안에 앉아서 그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자로 재보아야 하기 때문에 며칠은 걸렸을 것이라고 어머니는 짐작했습니다.
"그걸 언제 그렸니 ! 혹시 글방을 빠지지는 않았니 ?"
"네, 어머니. 글방을 빠진 일은 없어요. 글방이 끝난 후에 했으니까요."
어머니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습니다.
"밤이 깊었으니 그만 자거라."
자리에 눕긴 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낮에 돌아다녀서 매우 피곤했지만 산 위에서 내려다 본 먼 곳의 마을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이튿날도 정호는 글방을 마치고 지도를 그리러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지쳐서 돌아온 정호를 타일렀습니다.
"공부는 때가 있느니라. 어려서 바탕이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이 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느니라. 그런데 너는 딴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우리 가족은 가난을 면하지 못한다. 알겠느냐 ?"
정호는 밤늦도록 글방에서 배운 글을 익혔습니다. 글방에서도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하지만 글방이 파하면 전과 같이 지도를 그리러 다녔습니다. 정호는 나이가 들면서 과거를 볼 생각을 버렸습니다. 벼슬을 해서 잘 살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날, 친구 이용희가 찾아왔습니다.
"우리 짐에 이게 있길래 주려고 찾아 왔네."
이용희가 건네준 것은 정호가 사는 마을이 나와 있는 황해도 신천읍 지도였습니다. 정호는 그 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며 일일이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도는 사실과 같지 않았습니다. 산이나 강 등의 자리가 다르거나, 없는 것이 나타나 있는가 하면 있는 것도 빠진 것이 수두룩했습니다.
그 무렵, 서울 규장각에 '조선 전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튿날로 김정호는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규장각 검서관이 마침 같은 고향 사람이어서 '조선 전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황해도 신천읍부터 보았습니다. 자신이 바로 잡아 가지고 간 지도만도 못했습니다. 빠진 것이 많고 치수도 틀렸습니다.
'내가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야겠다.'
김정호는 마음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지도를 만든 죄인
김정호의 집 작은 뜰에는 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김정호는 국화꽃에 날아드는 벌과 나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용희가 다급히 들어섰습니다.
"여보게, 정호. 자네 얼른 몸을 피해야 되겠네. 지도를 대원군께 보였더니, 그게 화근이 되었네."
"화근이 되다니 ?"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했겠나. 글쎄 나라 땅은 그 나라의 비밀인데, 지도를 만들어 다 드러냈다고 펄펄 뛰신다네. 그러니 얼마동안 집을 피해 있게나. 그 동안에 내가 잘 말씀드려서....."
김정호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용희도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30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만든 지도가 죄가 되다니."
부엌에서 엿들은 딸 순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이용희가 돌아간 지 얼마 안 되어서 포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김정호는 석 나와 이 오라를 받아라."
김정호는 방문을 열고 태연히 나섰습니다. 포졸들은 김정호를 결박했습니다.
"자, 이젠 온 집안을 뒤져서 지도와 목판을 모조리 찾아 내라."
김정호는 포도청으로 끌려갔습니다. 포도대장은 김정호를 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정호는 이실 직고하렷다. 어서 외적에게 팔아 먹으려고 지도를 만들었다고 고해라."
김정호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 규장각에 있는 우리 나라 지도가 너무도 미비해 자세하고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 그 일이 나라에 해를 끼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함대를 무찌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
김정호는 포도청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용희는 김정호를 구해 내려고 대원군에게 설명하여 보았지만 아무런 보람이 없었습니다. 김정호는 얼른 풀려날 것 같지 않아 『팔도민속지』를 쓰기로 하였습니다. 한 도에 한 권씩, 그 도의 풍속과 인정 따위를 자세히 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도 대장은 김정호를 날마다 끌어 내어 같은 말을 자꾸 물었습니다. 김정호의 대답도 한결같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도 대장은 곤장을 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곤장보다 무서운 주리를 틀게 하였습니다.
"아악 ! 아악 !"
김정호는 너무도 견디기 어려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다가 다리가 부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 죽어가는 김정호를 옥 안으로 끌고 들어가 뉘었습니다.
김정호는 옥에서라도 쓰려던 『팔도민속지』를 못 쓰고 누워 있는 신세가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옥 안에서 나무 타는 냄새가 풍겨 왔습니다. <대동여지도> 목판이 장작처럼 활활 타는 냄새였습니다.
이것이 1867년 1월의 일입니다.
* 위 글은 '큰 별 큰 빛 김정호'의 원문입니다. 『표준 전과』(교학사. 1997)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형이 배우고 물려 준 이 책을 열심히 읽은 초등학교 2학년생 조카는 김정호가 참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정호를 죽인 대원군은 정말 나쁘고, 그런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을 알아 보지 못한 옛날 사람들은 참 멍청하다고 얘기했습니다.
* 이 글은 이제껏 우리가 교육을 받았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의 아들들이 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던 내용입니다. 아직도 서점에 나오는 고산자 김정호에 관한 위인전들은 거의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교과서도 이미 바뀌었고 고산자를 간단히 소개하는 책들은 새로운 사실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위인전을 쓰는 분들은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뀐 교과서의 내용을 설명하는 『표준 전과』의 <참고자료>로 이 글이 다시 실려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관습의 힘은 무섭습니다. 바뀌면 세상에 큰 일이 날 것 같지만 바뀌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 이 資料는 안강님의 백두대간 첫마당에서 옮겨온 資料이며 자료를 사용하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자료를 使用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안강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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