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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대동여지도&김정호

가벼운 만남 - 고산자 김정호

by 두타행 2011. 6. 1.

가벼운 만남 - 고산자 김정호



고산자 김정호
 흔히 알려진 것이 사실이라면 고산자의 인생만큼 극적인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비극이라서 더욱 그러합니다. 어릴 때부터 오로지 올바른 지도를 만들기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 않고, 전국을 몇 번이나 돌고, 백두산에 몇 번이나 올라 그 훌륭한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나랏님께 바쳤더니 국가의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로 감옥에서 고생 끝에 죽었고, <대동여지도>는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김정호의 삶에 관한 이러한 소설같은 허구와 각색이 이루어진 것은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그림 : 고산자 김정호의 초상화로 후대에 상상하여 그린 것입니다.)


그의 삶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답사설, 옥사설, 그리고 어떻게 평민의 신분으로 훌륭한 지도를 만들 수 있었는지 알아봅시다. 먼저 답사설에 대해서 입니다. 고산자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유재건(이향견문록), 최한기(<청구도>제), 신헌(<대동방여도>서문), 이 세사람은 고산자의 삶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유재건, 최한기는 '고산자는 어려서부터 지도와 지리에 관심이 많아 지도를 수집하고 여러 지도의 도법을 서로 비교해서 <청구도>나 <대동여지도> 등을 만들었다'고 하고, 신헌은 '비변사나 규장각의 비장된 지도와 고가(민간)의 자료를 널리 모아 지도를 만들고자 했고 이를 고산자에게 위촉해서 완성했다'고 합니다.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고산자가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두루 답사하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김정호는 답사가이기보다는 위대한 지리학자이자 지도편집자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음은 옥사설입니다. 고산자의 옥사설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산자가 편찬한 <청구도> <대동여지도> <대동지지> 등이 몰수나 압수당한 일이 없고, 현재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소각되었다던 <대동여지도> 목판도 현재 숭실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다가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또한 위에 언급한 세 사람이 고산자와 관련되어 어떤 처벌을 받았다는 흔적도 없습니다. 고산자가 국가의 기밀을 누설했다고 처벌을 받았다면 대역죄일 텐데 어떻게 후원을 한 이들이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또한 당시의「고종실록」「승정원일기」등을 면밀히 검토해 본 이들도 고산자가 옥사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1934년에 발행한 「조선어 독본」에서 비롯된 ‘고산자의 옥사설’은 대원군을 우매한 정치 지도자로 몰기 위해 날조한 허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1997년) 개편된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서는 이런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고산자의 신분은 평민이거나 그와 비슷한 지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전의 역사, 지지, 지도 등 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지지 편찬이나 지도 제작에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년에 지은 <대동지지>의 인용도서 목록에는 한국 사서 43종, 중국 사서 22종 등 모두 65종의 사료가 수록되어 있으며, <청구도>와 <여도비지>에 인용된 것까지 하면 총 67종의 자료들이 인용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평민의 신분으로 이렇게 많은 자료를 접하고, 훌륭한 지도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 현재 관련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사서 중 민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최한기의 후원이, 국가의 기밀 사항에 해당하는 사서, 자료, 지도 등의 열람에는 최성환과 강화도조약 체결 때 대표를 지내는 등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무신이었던 신헌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훌륭한 지도를 만들려는 고산자의 열정과 이 땅에 대한 사랑이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산자의 삶과 관련된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고난의 삶을 살았고 그것을 이겨냈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이 아닌, 탁월한 능력을 가진 지리학자, 지도학자, 지도편집자, 판각자, 그리고 누구보다도 더 이 땅과 백성들을 사랑했던 인물로서 평가받을 때 그의 업적이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 이 자료는 안강님의 홈페이지인 백두대간 첫마당에 실린 자료이며 자료를 사용하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안강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