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만남 - 대동여지도
잘 알려진대로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에 제작한 우리나라의 대축척 지도입니다. 축척은 대표적으로 1/160,000 설과 1/216,000 설이 있습니다. 1834년에 제작한 <청구도> 를 27년 후에 수정 증보한 분첩절첩식 지도첩입니다. 우리나라의 남북을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구분하고, 동서를 80리 간격으로 끊어 19판으로 구분했습니다. 동서 방향은 구획된 판을 접어서 연결시켜 1첩으로 만들어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고, 동서의 방향을 연결시킨 각 첩을 펼쳐서 순서대로 이으면 연속된 남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형태는 넓은 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니는 동시에 22층을 펼쳐서 전부 이어 붙이면 우리나라 전도를 볼 수 있습니다. <대동여지도> 전체는 길이가 6.6m, 폭이 3.8m가 되는 대형지도가 되어 특별한 건물이 아니면 전시할 수 없습니다. 현재로는 영남대학교 박물관 1층 로비에 1985년의 이우형 복각본이 걸개 형태로, 거창 박물관에는 1864년 재간 가채본이 바닥에 누운 형태로 전시되고 있습니다.(그림 : <대동여지도> 전도의 모습.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대동여지전도>와는 질적인 면에서나 크기에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대동여지도>의 제1층에는 지도의 제목과 발간 연도 및 발간자를 명시하고, 본도와는 별도로 상세한 서울의 도성도와 경조오부도가 실려 있습니다. 지도 외에 <대동여지도>의 서문에 해당하는 지도유설이 4면에 걸쳐 실려 있고, 방안표가 있어 축척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8도행정통계표'라 이름붙일 수 있는 각도의 통계자료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산계(山系)와 수계(水系)를 가장 성공적으로 나타낸 지도입니다. 산지를 개별적으로 독립된 산으로 보지 않고 어떤 체계를 가진 산줄기로 보려는 시도는 묘도(묘를 표현한 지도)에서 널리 쓰여온 전통입니다. 묘도의 대부분은 풍수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 산줄기와 물줄기의 도식적 표현은 묘도의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대동여지도>에서 산계와 수계를 중시하였는데, 특히 분수계를 연속되는 산줄기로 표현한 점은 묘도와 일맥 상통하는 점입니다. 그러나 묘도에서는 국지적인 좁은 지역에 한정되어 있으나 <대동여지도>는 전국적인 규모라는 데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에서는 산계를 단순한 선으로만 표시한 것이 아니고 선의 넓고 좁음의 형태를 통하여 산줄기와 산의 모양·크기 및 분수령과 하천유역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도록 표현한 일종의 '산악투영도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개의 산지가 아닌 산줄기를 표시하는 전통은 조선 초기부터 이어져왔으나 모두 필사본이었고, 김정호는 이러한 전통을 목판 인쇄에 새롭게 적용했습니다.
<청구도>에서는 지도 안에 호구·전결·군정과 같은 지지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대동여지도>는 지지적인 내용은 따로 편찬한 『대동지지』에 싣고 순수한 지도로 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기술적인 내용은 가능한 한 부호로 처리하고, <대동여지도>에서는 이를 지도표라고 부르는 범례를 만들었습니다. 지도표는 14개 항목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22개로 세분하였습니다. <청구도>에는 '지도식'을 포함한 설명문 형태의 '범례'가 있었지만, <대동여지도>에서 본격적인 '기호식 범례'가 채택된 셈입니다.
지도표의 채택과 활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대동여지도>는 대축척지도에 걸맞게 지도의 내용이 매우 자세해졌습니다. 즉 각도의 관찰사영을 표기하는 영아, 읍치, 성지·역참·창고·목소·봉수·능침·방리·고현·고진보·고산성·도로 등이 기호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영아·성지·진보·역참·목소·봉수 등 군사적인 주요시설을 상세히 표시하고 있는 점은 지도의 군사적인 중요성을 잘 나타낸 부분입니다. 교통로의 표시도 <청구도>보다 훨씬 자세합니다. 즉 <청구도>에서는 주로 남북 방향으로 된 간선도로의 표시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대동여지도>에서는 그 외에 동서 방향을 비롯한 지역간의 내부 연결도로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표시하고 있습니다. 도로의 표시는 각 지점을 연결하는 직선으로 표시하고 있고 10리마다 방점을 찍어 거리를 쉽게 알 수 있게 했습니다. 방점은 평지와 산지의 간격에 차이를 두어 실질적인 거리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게 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지도사에서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러나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게 되겠지만 고산자 김정호는 답사의 방식이 아니라, 이전부터 전해오던 지도와 지리지들을 수집하고 편집해서 뛰어난 지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그러한 노력의 결정판으로서 현재도 충분히 그 효용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여기에 담겨있는 지도 제작의 원리나 표현 방식은 오늘날에도 되살려 활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더불어 고산자가 가졌던 이 땅에 대한 사랑과 지도에 대한 열정을 오늘날 되살려야 하는 것도 후손들의 임무가 아닐까 합니다.
※ 이 자료는 안강님의 홈페이지인 백두대간 첫마당에 실린 자료이며 자료를 사용하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안강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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