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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흔적 그리고 모습/책속의 글

天下에는 두 가지 큰 基準이 있다(小說 牧民心書)

by 두타행 2015. 11. 11.

 

天下에는 두 가지 큰 基準이 있다(小說 牧民心書)

 

 

학연이 바라를 두들겨 아버지 解配呼訴한지 4년이 지났다. 약용은 다시 잊혀진 사람이 되어 세상의 관심 밖에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流配 초기에는 惡夢에 시달릴 만큼 두려웠고 조금 지나자 혹시나 解配될까 하는 希望을 갖기도 했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런 생각 없이 病魔에서 시달리면서도 끊임없이 著述에만 專念하였다.

사의재 이설 이후 이때까지 약용은 큰아들 학연과 애제자 이학래의 도움을 방아 完成한 주역심전(周易心箋)을 비롯하여 제례고정(祭禮考定), 독역요지(讀易要旨), 역례비석(易例比釋), 춘추관점보주(春秋官占補注), 예전상복상(禮箋喪服商), 시경강의(詩經講義), 시경강의보(詩經講義補), 가례작의(嘉禮酌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예전상기별(禮箋喪期別), 민보의(民堡議), 춘추고징(春秋考徵),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등을 著述하였다.

1814(순조 14) 4월에 대계가 처음으로 停止되었다.

장령 조장한이 司憲府에 나아가 上疏하여 特別停止시켰던 것이다.

대계가 정지되었다 함은 죄인 名簿에서 削除한다는 것을 意味한다. 義禁府에서는 解配 명령을 발송하려고 準備하였다. 그런데 또다시 問題가 생겼다. 이기경이 강준흠에게 上疏를 올리도록 사주하여 妨害를 한 것이다.

그는 악용이 살아 돌아오면 다시 임금의 信任을 얻어 자신에게 復讎하지 않을까 하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버지의 解配를 위하여 갖은 애를 쓰던 학연은 답답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조장한을 시켜 計劃했던 일이 失敗로 돌아가자 학연은 강진으로 서찰을 띄워 아버지께 하소연을 하였다. 그러나 약용은 答狀을 통해 학연을 준엄히 꾸짖을 뿐이었다.

보내준 書信 자세히 보았노라 천하에는 두 가지 큰 基準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段階는 큰 等級이 나온다.

옮음을 고수하고 利益을 얻은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옮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追從하고도 利益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너는 나더러 강준흠과 이기경에게 꼬리치며 동정을 받도록 애걸해 보라 하였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세 번째 등급을 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 明若觀火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러한 짓을 하여야겠느냐.

조 장령의 대계는 내게는 불리한 것이었다. 이 일로 그들의 忿怒를 폭발시키는 것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역시 고즈넉이 받아들일 뿐이지 애걸한다고 하여서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

강준흠이 작년에 나의 일에 대해 한 上疏는 그에게 있어서는 이제 쏘아버린 화살인지라 지금부터는 죽는 날까지 입을 다물지 않고 나를 계속 誹謗할 것이다. 이제 내가 애걸한다고 해도 그가 나에 대한 공격을 늦추고서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는 態度를 취하여 하겠느냐. 이기경 역시 강준흠과 한통속인데 그가 강준흠을 배만하고 나에게 너그럽게 대할 리가 없느니라. 그런데 그들에게 애걸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강준흠, 이기경이 다시 뜻을 모아 요직을 자치한다면 반드시 나를 죽이고 말 것이다. 죽이려 한다 해도 또한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오직 고즈넉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解配關文을 막는 하나의 잗다란 일을 가지고 절조를 잃어버려서야 되겠느냐. 비록 내가 절조를 지키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세 번째 등급도 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면하고 저 할 따름이다.

만일 내가 애걸한다면 세 사람이 서로 모여서 넌지시 웃으면서 저 작자는 참으로 간사람 사람이다. 지금은 애처로운 소리로 우리를 속이지만 다시 올라와서는 해치려는 마음으로 언젠가는 우리를 반드시 滅族시킬 것이니 아아! 두려운 지고 하면서 겉으로는 풀어주어야 한다고 빈말로 나불거리면서 뒤로는 빗장을 걸어 버리고 위기에 처하면 돌멩이라도 던질 것이니 바야흐로 나는 독수리에게 잡힌 새 꼴이 되어 네 번째 等級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내가 꼭두각시가 아닌데 너는 나로 하여금 무엇 때문에 그들의 장단에 춤추게 하려 하느냐.

내가 귀양이 풀려 돌아가느냐, 돌아가지 못하느냐는 참으로 큰일은 큰일이나. 죽고 사는 일에 비하면 극히 잗다란 일이다.

사람이란 때로는 물고기를 버리고 熊掌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면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가느냐 돌아가지 못하느냐는 잗다란 일에 잽싸게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걸하고 산다면 만약 나라에 외침이 있어 난리가 터졌을 때 임금을 배반하고 적군에 投降하지 않을 사람이 명이나 되겠느냐?

내가 살아서 故鄕 땅을 밟는 것도 運命이고 故鄕 땅을 밟지 목하는 것도 運命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사람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다 하지 않고 천명만을 기다리는 것 또한 理致에 합당하지 않지만 너는 사람이 하여야 할 일을 이미 하였고 이러고도 내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運命일 뿐이다. 강씨 집안의 그 사람이 어찌 나를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느냐? 마음을 크게 먹고 걱정 말고 歲月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지니 다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거라.

正道가 아니면 걷지 않겠다는 약용의 꼿꼿한 氣像을 엿볼 수 있는 書信이었다.

 

 

황인경

小說 牧民心書 下卷 자산어보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