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 제3부 『어둠의 산하』 (7∼9권) 줄거리
7권
* 또 하나의 음모
불이흥업주식회사에서 간척사업을 실시하면서 농민들을 상대로 인부들을 모집한다. 힘든 일이지만 개간비를 지불하고 영구 소작권을 주며 소작료를 처음 3년 동안 면제해준다는 호조건이었고, 토지사업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소작도 제대로 얻지 못해 허덕거리던 농부들 3천명이 간척지로 모여 든다.
외리의 남상명과 3.1만세 때 죽은 내촌의 김춘배의 아들 김장섭 등 외리와 내촌 사람들도 일부 간척사업에 나섰다. 그러나 처음 모집시에 약속했던 것과는 달리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식비와 부식비를 착복 당한다. 그러나 영구 소작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견딘다.
* 여자의 세월
보름이는 이마에 큰 흉터가 생기자 세끼야에게 버림을 받는다. 3.1운동 때 도망가던 학생을 도와주다 쫓아 들어온 순사에게 맞고 흉터가 생겨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보름이는 오히려 세끼야에게 놓인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보름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서무룡은 20원을 건네고 그 돈으로 보름이는 째보선창에서 떡장사를 하게 된다. 서무룡이 뒤를 봐주어서 떡장사를 무사히 하던 보름이는 우연히 지나가던 백남일의 눈에 띄어 폭행당하고, 서무룡의 부하들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를 알게 된 서무룡은 보름이를 병원에 입원시킨 뒤 백남일을 고소하고 유치장에 가둔다. 몸이 단 백남일은 결국 보름이에게 피해보상을 하고 서무룡에게는 매달 정미소 자릿세를 내기로 합의한다. 사정이 조금 피게 된 보름이는 부안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무 오월이를 정미소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 결심한다.
오월이는 가장 친한 친구임과 동시에 자신을 구하려고 멀리 이국땅으로 갔던 오빠가 좋아하던 여자였기 때문이다.
* 새 길을 열어라
차득보는 3.1운동 당시 김제 장터에서 만세를 부른 것을 계기로 공허를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신세호의 집에서 기거한다. 낮에는 농사일을 돕고 밤에는 신세호에게 공부를 배우 게 된다.
송수익의 큰아들 송중원은 3.1운동 주동자로 2년 동안 감옥살이 하고 출감한다. 출감하는 날 장인 신세호는 일본유학을 권유하고 송중원이 넉넉지 못한 살림을 걱정하자 송중원의 모친과 상의가 끝난 일이라며 단호히 당부한다.
* 알 수없는 소문
수국이는 용정에서 양치성의 첩으로 살아간다. 양치성이 밀정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체 단순한 장사꾼으로 알고 생활한다.
일본군의 독립군 토벌이 더 심해졌다는 소문을 들은 수국이는 동생 방대근을 걱정하며 양치성에게 그의 소식을 알아 달라고 부탁한다.
만주와 청산리 일대의 독립군들이 연해주로 이동하자 더 이상 중국에 주둔할 명분이 없어진 일본군에게 중국은 조선 땅으로의 철수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연해주로 간 독립군들은 러시아 적군에게 공격을 당해 다시 만주땅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러시아로 이동한 방대근 독립군 부대들이 자유시에서 참변을 당하고 무장 해제까지 당하자 대한독립군단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방대근은 노병갑과 함께 러시아 국경을 넘어 산동성에서 돈벌이를 나선 떠돌이 행세를 한다.
* 밤기차
만세시위의 주모자로 수배 당하던 공허스님은 금강산으로 들어가려는 도림과 헤어지고 경성역에서 밤기차를 타게 된다. 수배령 때문에 기차마저도 밤기차만을 타야 안심이 되는 탓이었다.
경성을 자주 오르내리던 장칠문이 자고 있는 공허를 발견하고 "공허스님!"하고 부르자 공허는 얼떨결에 "어엉? 누 누구여!"라고 대답하고 발각된다.
그러나 통로로 끌려 나가면서 거물을 잡은 기쁨에 들떠 있던 장칠문을 들이받고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린다. 그는 대전 포교당에서 다친 다리를 치료한 후 홍씨 집으로 피신한다.
* 지주는 왕이다
정상규는 형한테서 재산을 나눠 받은 후부터 오로지 만석꾼이 되려는 욕심에 사로잡힌다. 독한 자린고비 짓을 하고 소작인들에게 모질게 다루며 종부리 듯 한다. 그는 소작인 한 서방에게 소작을 떼겠다고 협박하여 한서방의 처를 범하는 금수 같은 짓을 하기도 한다.
정도규는 그런 형의 행동에 분개하여 형에게 충고하나 그는 변하지 않는다. 정도규는 동경유학시절 사회주의를 접하고 사상서적을 들여와 유승현에게 전한다.
유승현은 만세사건으로 2년 6월의 형을 살고 나오며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 되어 공허스님을 정도규에게 소개한다. 조선 노동공제회, 서울청년회, 동경고학생동우회 등 사회주의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 진다.
* 드러난 정체
수국이는 결국 양치성이 밀정임을 이웃 아주머니로부터 알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잡혀갔던 것이며 어머니 감골댁의 죽음 및 장례를 치른 것, 어느 날 김시국이 행방불명된 것 등 모든 일이 양치성이 꾸민 흉계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몇 개월간 양치성을 속이고 도주할 준비를 한 후 그를 칼로 찌르고 서간도 통화현 지삼출네 마을을 찾아 간다.
한편 방대근은 송수익의 동의를 얻어 북경 의열단에 입단한다. 의열단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인 열혈 청년들이 스스로 몸을 폭탄삼아 적진으로 뛰어 드는 독립투쟁 단체로써 1919년 11월에 결성되어 이후 3년 동안 조선에서 여러 차례 폭탄공격을 감행 한다.
* 연해주의 빨치산
블라디보스톡과 나홋카는 지리적인 천연의 요새였기 때문에 일본군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더불어 일본군의 정보를 얻기 위해 빨치산에게는 중요한 정보수집처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빨치산에서는 그 곳에 부두노동자로 위장한 정보원들을 심어놓았다.
홍범도 장군의 은퇴와 더불어 자유시참변으로 적군에 소속된 독립군들이 빨치산 투쟁에 투입되면서 부대원들 일부가 분산되며 이광민과 윤철훈은 선요원 훈련을 받고 우리스크, 해삼위(블라디보스톡), 나홋카, 수청, 연추령 등을 무대로 정보원들과 연결하는 선요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빨치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일본군은 소련 정부와 협상으로 1922년 10월 러시아 땅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신한촌에서 윤철훈이 그의 사촌여동생 윤선숙을 이광민에게 소개하자 그는 고향의 아내를 떠올린다.
* 농장조합원들의 회의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이 소작인들을 조종하여 여러 곳에서 소작쟁의가 일어나자 총독부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단속방침을 발표하고 검거색출 활동을 시작한다. 애가 달은 농장조합원들은 하시모토의 의견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경찰에 촉구할 것을 의결하며 하시모토는 그의 농장관리체계를 일본 군대식으로 조직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침투를 막으려 한다. 말을 타고 논길을 걷던 하시모토는 아이들이 비행기 놀이를 하면서 안창남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게 되고 화가 난 하시모토는 아이들을 채찍질한 뒤 주재소에 이를 주지시킨다. 하시모토는 물론이고 주재소장에게까지 호된 추궁을 당한 주재소 순사들은 눈에 독이 올라 마을을 뒤지지만 이미 소문이 퍼져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절대 입 밖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다.
안창남은 일본에서 명성을 떨친 청년 비행사로서 조선 사람들도 일본사람을 능가할 수 있다는 슬픈 위안이었고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고무시키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 백설의 땅
국제공산당 고려국 소속 자금운반책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철훈, 이광민은 하바로브스크의 고정자금책 조강섭을 만나 자금을 수령한다. 조강섭은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다리에 부상을 입고 하바로브스크 소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고정자금책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 소작회 결성
이동만은 동경유학을 떠나는 작은아들 이경욱에게 간척지로 개간한 땅을 보여준다. 측량기사인 큰아들과 자신이 이룩한 땅이라며 자랑하고 공산주의를 가까이하지 말고 판검사시험공부에만 전념하라고 당부하고, 이경욱은 불만스럽지만 아버지의 잔소리가 길어질까 억지로 대답한다. 그 넓은 간척지 가운데 자리 잡은 저수지를 사이로 남쪽과 북쪽은 집의 모양이 달랐다. 남쪽 집들은 모두 움막이었는데 북쪽은 모두 기와집이었다. 그건 간척사업에 동원된 인부들과 일본에서 이주해온 일본인들의 집의 차이였다.
간척사업에 동원됐던 농민들은 3년 동안 막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영구소작이라는 희망으로 견뎌 왔지만 일본은 조선인의 열배가 넘는 땅을 일본인들에게 분배하고 기와집까지 지어준 것이다.
조선인부들은 분노하지만 무장경찰들 앞에서는 어찌할 수가 없다. 그나마 그 소작마저 떼이지 않으려면 반항도 하지 못했다. 불이농장의 간척지 소작인들은 소작지의 위치에 따라 움막을 치고 마을을 형성하게 되고 정도규와 군산 영명중학교사 고서완의 조종으로 소작회를 결성한다.
* 1923년 9월 1일
동경에 유학중인 송중원은 모자라는 학비를 충당하고 고학생학우회에서 사상 학습을 받기위해 방학에도 귀향하지 않는다. 그리고 조선노동자들의 실태조사를 위해 막노동을 하며 모여살고 있는 사람들의 숙소로 찾아가 그저 같은 동포의 정을 나누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조사를 한다.
조선인들은 일본 땅에서도 마찬가지로 심한 차별을 당하고 있었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개학식날 송중원, 허탁, 허탁의 중학교 동창이며 만석꾼아들 홍명준, 종로 상권을 주름 잡는 거상의 딸 박정애 등은 만나 점심을 먹으러 간다. 그러나 점심식사중 지진이 일어나고 혼비백산하게 된다. 다음날 송중원과 허탁은 평상시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과자공장에 출근해 엉망진창이 된 공장을 정리한다. 일본인 주인은 감동해서 조선인들이 부지런하고 예절바르다며 칭찬한다. 그러나 곧 일본 내에서는 지진과 동시에 발생한 많은 화재가 조선노동자들이 한 일이라는 음해보도가 돌고 일본인 경방단 자경단 재향군인들이 조선인들을 무더기로 살해한다. 공장주인은 억울해도 참고 몸 보존 한 뒤 후에 일의 내막을 밝히라고 설득하며 그들을 공장에서 내보내질 않는다. 그사이 일본인 경방단 자경단 재향군인은 물론이고 헌병들과 경찰들까지 일본말이 서툰 사람은 무조건 잔인하게 살해한다.
송중원과 허탁은 얼마 전 실태조사를 위해 갔던 빈민굴의 노동자들이 가장 참혹하게 죽었다는 얘길 듣지만 차마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 긴 기다림의 끝
신세호의 집에서 공부를 배우고 농사일을 하던 득보는 신세호의 딸 월엽이와 좋아 지내지만 신세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진 못한다. 놀이패에 끌려다니던 옥녀는 보성 근처에 오자 놀이패에서 도망쳐 보성의 명창을 찾아간다. 타고난 목소리를 마음에 들어 한 명창의 내외는 부지런하게 일하는 옥녀를 예쁘게 보고 수양딸로 삼고 소리를 전수한다. 소리를 전수 받은 옥녀는 득보와 헤어졌던 주막을 찾아가고 주모의 안내로 득보가 살고 있는 신세호의 집으로 향한다.
* 모자의 이별
수국의 칼에 찔린 양치성은 가까스로 생명을 건지며, 그와 함께 모략해 수국이를 끌어왔던 임형사에게는 독립군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서간도로 간 수국이는 양치성의 아이를 임신하여 유산시키려 약을 먹는 등 갖은 노력을 하나 아들을 출산한다. 그녀는 젖도 주지 않으면서 냉담하게 정을 떼어내려 하고 필녀가 대신 젖동냥을 하여 키워 중국인의 집에 입양시킨다.
모처럼 남만주의 독립군 단체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발족시킨 대한 동의부의 복벽주의자 전덕원이 의군부를 조직하여 이탈하자 통의부는 다시 참의부로 분열된다. 통의부에 속해 있는 송수익은 시대 변화에 따른 분파극의 독립투쟁의 방책에 대해 깊은 고심을 한다.
* 갈림길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에서 이광민은 한인동포학교교사인 윤선숙과 함께 동심에 젖어 데이트도 하며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나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며 굳은 다짐을 한다. 코민테른에서 연해주의 모든 사회주의 단체를 오르그뷰에 통합하게 됨에 따라 이광민은 진로 결정에 고심하게 된다.
8권
* 변하는 게 절기뿐이랴
중국 상해에는 구미의 여러 나라들이 모여 있듯 조계에 저마다 소도시를 이루듯 하였다. 방대근은 프랑스조계의 공원에서 양자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는다. 누이 수국이와 어머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된 방대근은 양치성을 살해하고 어머니의 산소에 성묘하기 위해 만주에 들르지만 이미 양치성은 정식 경찰이 되어 원산으로 간 후였다. 그 뒤로는 의열단 활동으로 매번 목숨을 건 투쟁을 하느라 누나와는 편지만 주고받았고 누나의 기구하고 가엾은 팔자에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음날 임무수행을 떠나는 방대근과 윤주협을 중심으로 의열단원들이 모여들고 그들은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은 단순히 훗날의 추억을 위해 찍는 것이 아니었다. 새 임무를 맡아 떠나면 그 기념촬영이 대부분 영원한 이별이 되었기 때문에 일종의 의무처럼 그들은 기념촬영을 하곤 했다. 중국상인의 졸개로 변장하고 조선에 들어온 방대근은 호남선을 타고 군산에 도착한다.
군산에 도착한 방대근은 어느덧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는 큰누나 보름이와 만나게 되고 고생에 찌든 큰누님의 모습에 가슴이 눈물로 젖는다. 임무를 마친 방대근은 큰누나와 다시 작별하고 한성행 열차를 탄다.
*최 초의 동정 파업
백남일은 그의 정미소 인부들의 품삯을 일방적으로 내리고 인부 6명이 파업을 시도한다. 백남일은 그들을 해고하고 부두의 막노동자들로 대체하지만 인부들은 매일 정미소 앞에서 시위하고 대신 일하러 들어가는 노동자들을 협박하여 일을 못하게 한다.
경찰에 신고하여 인부들이 잡혀가지만 주변 다른 정미소 인부들이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파업에 동참하자 경찰은 그들을 석방한다. 그리하여 낙합정미소 파업은 8일 만에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났으며 조선 최초로 성공시킨 동정 파업이었다.
정도규는 고서완에게 정미소 파업의 성공을 축하하며 ‘민족개조론’을 쓴 이광수와 ‘일선동조론’을 쓴 최남선 등을 친일파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사회단체들의 난립현상은 사회주의 사상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한다고 자평한다. 정도규에게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공허스님은 사회주의도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같다며 나라를 되찾자는 뜻만 같으면 누구와도 뜻을 합칠 수 있다며 신용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약속한다.
* 그 깊은 한
3.1만세 시위로 목포로 이사한 박건식의 어머니 대목댁은 장손 동화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두에서 고구마장사를 한다. 손자는 남편과 아들을 닮아 공부를 잘 했으며 대목댁은 그것만이 유일한 보람이고 위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부두행상을 단속하는 경찰에 치여 축대 아래로 떨어지면서 허리를 다치고 꼼짝을 못하게 된다. 자신이 다쳐 며느리마저 돈벌이를 포기해야 하고 그러면 손자가 계속해서 공부를 못하게 된다는 걸 생각한 대목댁은 댓돌에 머리를 박고 자결한다.
* 무엇인들 못하랴
차득보가 월엽이가 시집가자 상사병으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보다 못한 옥녀는 공허에게 중매를 부탁하고 득보는 연희네와 결혼하게 된다. 오빠에게 농토를 사주고 싶었던 옥녀는 남원명창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고 전주 권번에서 소리꾼으로 일하는 조건으로 농토를 살 수 있게 된다. 득보는 기생이 되는 것을 반대하지만 옥녀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 또 하나의 날개
동경에서 유학중인 송중원과 허탁은 사회주의 단체에 가입하고 일월회원으로 활동한다. 그러던 중 같은 동네 출신의 새로 가입한 이경욱을 만나게 되고 이경욱은 유명한 독립투사의 아들인 그의 집안내력을 부러워한다.
반면 이경욱의 아버지는 고향근방에서 유명한 친일파였던 것이다. 고학생 동우회 일부가 흑도회로 그건 다시 풍뢰회와 북성회로 갈라졌다. 북성회는 건설사를 조직해 한성에 거점을 마련 강화해 북풍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동경의 북성회의 명칭을 일월회로 바꾸었다. 한성에서 신사상연구회가 탈바꿈한 화요회는 23년에 조직되어 북풍회와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허탁이 과자배달을 하다가 일본인 아이를 치여 중상을 입히고 구속되자 박정애가 자기 아버지와 동업자인 거상을 통해 해결한다.
* 하와이 폭풍
1925년 상해 임정 의정원에서 이승만에 대한 탄핵안이 의결되자 하와이 이민들의 분노와 동요가 심해진다. 그들은 독립운동자금을 상해로 보내지 않고 자의로 처분했다는 의정원의 발표에 분개하여 세금과 후원금을 더는 내지 않겠다며 끼리끼리 술타령을 시작한다. 방영근은 모금을 외면하고 구두쇠로 돈을 모아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이 부러워지며 독립자금을 꼬박꼬박 냈다는 떳떳한 긍지감도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20년이란 세월을 허망하게 느끼며 구상배의 중매로 과부와 결혼한다. 오랫동안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방영근의 친구 남용석은 이혼한 처(선미)가 위자료를 주지 않는다고 고발하자 그녀를 살해하고 조선 쪽 벼랑아래에서 자살한다.
* 꺾이지 않는 꽃
송수익은 결혼한 지 30년, 고향을 떠나온 지 15년 만에 아내에게 안부 편지를 쓴다. 막상 편지를 쓰자 그동안 억누르고 억눌러왔던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봇물 터지듯 터지고, 그런 마음 약함을 스스로 채찍질하며 호박반지 하나를 끼워 편지를 보낸다. 또한 송수익은 지삼출이 아들 지만복이 허약해 독립군으로 나서지 못함을 한탄하자 "친일배를 제외한 만주에 사는 모든 동포들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으며 만복이도 제능력에 맞춰 일을 하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위안 한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에 심도되어 대종교에 입교하지 않으며, 기존의 교인마저 탈교하는 상황을 걱정한다. 옆 동네 밀정 하서방의 밀고로 천수동의 아내 솜리댁과 방수국이 밀정에 의해 납치된다. 솜리댁은 밀정의 속임수에 김동수의 본명이 송수익이란 것을 실토하고 살해되며 수국이는 그들 밀정이 양치성의 사주로 자기를 납치 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미인계로 유인하여 밀정을 죽이고 도주한다.
* 삼형제
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은 소작인들이 〈소작료불납동맹〉을 맺고 소작료를 강제징수하려는 정상규와 그의 마름들을 내쫓는다. 정상규는 납세자 보호를 내세워 경찰에 도움을 청하나 일본인 농장에서 일어나는 소작쟁의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며 거절 당하기도 한다. 그는 돌깍쟁이짓을 하며 만석꾼이 되기 위해 논을 사들였다. 정재규는 군산 미두놀이에 빠져 해마다 논을 파는양이 늘어가고 있었다. 인천미두와 군산미두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정도규는 형들의 일을 마음에 접어버리고 동척 및 일본인들 농장에서 소작쟁의를 일으키게 하기 위해 조직 확대를 진행시킨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경성에서 잡지사 기자를 하고 있는 송중원과 조직을 통해 연결되었다
* 회오리바람
불이흥업주식회사 마름인 이동만은 빚 놀이 돈 장사로 많은 돈을 모아 7천석 잡이가 된다. 55세를 맞은 그는 신년 신수점에 환갑잔치처럼 생일잔치를 하면 부귀영화와 수면 장수한다는 점괘로 잔치를 벌인다. 이경욱은 아버지의 생일잔치에 소리꾼으로 불려온 차옥녀(옥비)의 소리와 자태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한편 원산 경찰서 형사인 양치성이 군산 출장중에 만주송수익의 정보를 탄로하자 송수익의 가족과 신세호가 체포된다. 송수익의 아내 안씨와 아들 송중원, 신세호는 전기고문 등 갖은 고문을 당해 반죽음이 된다.
* 아리랑
한성 단성사에서 "아리랑"영화가 7일을 넘기고 10일이나 연장하며 초만원을 이룬다. 영화"아리랑"은 나운규의 작품으로 일본인을 감독으로 내세워 총독부의 검열을 피해 상영되면서 조선 사람들 전부의 가슴을 뒤흔들고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이다. 허탁, 홍명준은 "아리랑"을 관람하고 문학이 독립 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송중원이 문학을 하려고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 한곳으로 모아지는 힘
송수익, 지삼출 등은 길림성 부근의 땅을 소작료가 아닌 저렴한 사용료로 장기간 빌리게 된다. 그들은 나이든 대원들의 안정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투쟁의 일선에서 물러난 대원들을 중심으로 독립마을을 건설하고 그곳을 투쟁사업의 거점으로 삼을 작정이었다.한 편 송중원의 전주고보 동창인 이광민은 윤철훈과 함께 소만 국경을 넘나들며 만주에서 공산당 운동을 한다. 이광민을 사랑하는 윤철훈의 사촌동생 윤선숙은 애틋한 정을 느끼고 있는 이광민이 공산주의 국제연대를 위해 중국 광동으로 떠나려 하자 그에게 몸을 허락, 정을 나눈다.
* 흉계와 유린
사찰과장 고마다는 이동만의 생일잔치에서 소리꾼 옥비를 본 다음 그녀를 탐내기 시작한다. 그는 이동만에게 노골적으로 자기의 속뜻을 털어놓았다. 이동만은 사람을 가운데 놓아 여러 차례 거금의 돈을 주고 그녀를 사려하나 천만금을 준다 해도 소용없다며 거절당한다. 고마다의 안달에 노심초사하던 이동만은 옥비와 득보남매가 서로 끔찍하게 위한다는 것을 알고 득보를 미끼로 옥비를 유린한다. 차득보를 농우회원 이라는 이유로 구속하고 석방해 주겠다는 미끼를 만들었던 것이다.
양치성의 밀고로 송수익 일가가 투옥되자 금강산으로 피신했던 공허스님은 양복에 중절모자를 쓰고 콧수염까지 기른 개명 멋쟁이로 가장하여 최유강, 안재한 등을 만나 신간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회원들을 물색해 줄 것을 부탁한다.
송수익의 작은아들 송가원은 전주고보생들의 동맹휴학으로 일인 교장을 몰아내고, 주동자로 퇴학처분 당하여 모친 병수발하며 수감 중인 형 중원을 면회 다닌다. 송수익의 처 안 씨는 출감하여 중풍으로 고생하며 송중원은 징역살이하게 된다.
* 피내림은 그렇게
못 먹고 헐벗으며 갖은 고생을 하며 아들 삼봉이를 남부럽지 않게 가르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일념으로 살아온 보름이는 자그마한 점방을 차리고 17살된 삼봉이를 고보에 입학시키며 감회에 젖는다. 총기가 좋아 세끼야를 잊을 리 없는 삼봉이가 세끼야의 딸인 큰딸 금님이를 구박하지 않고 아껴주는 속 깊고 듬직함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내림이라고 생각했다.
손판석의 아내 부안댁은 큰아들 일남이가 늦게나마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양복점에 보낸 것을 생각하며 삼봉이의 고보입학을 축하함과 아울러 부러워한다. 손판석 가족 아홉 식구는 먹고 살기도 힘겨울 지경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무주에 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산소를 찾은 삼봉이는 어머니로부터 그들이 왜놈들에게 피살당한 것을 듣고 부모의 원한을 갚겠다고 다짐한다. 송수익의 처 안 씨를 병문안 가는 신세호는 당산나무아래에서 어린이들이 부르는 새로운 아리랑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유행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3.1운동이 행동적 저항이라면 활동사진〈아리랑〉은 정신적 저항을 공감시킨 것 이었다.
송중원은 면회온 동생 가원이에게 의사가 되면 자유스럽고 좋은 일도 할 수 있으니 경성제대 의학부에 진학하라 권유한다.
* 대륙의 좌절
1927년 장개석이 쿠데타를 일으켜 남경국민정부를 조직함에 따라 국공(국민당과공산당)분열이 이루어지게 되자 광동 중국 혁명군에 가담했던 조선의용군들은 크게 낙담하여 분산한다.
그들은 국제연대에 의해 중국혁명을 성공시키고 조국해방을 달성하자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연해주의 독립군 100여명 만주의 독립군 400여명, 국내에서 온 100여명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연해주에서 온 윤철훈은 돌아가기로 결정하며 이광민은 의열단의 방대근을 찾아간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윤철훈을 통해서였다.
윤철훈은 광동에 도착하자마자 의열단을 찾아 나섰다. 의열단이 광동으로 이동해 있다는 것을 상해에서 알았던 것이다. 국내에서 온 허탁은 만주에서 온 독립군들을 찾아다니며 송수익을 아는 사람을 찾던 중 천수동의 아들 천상길을 만나 송수익을 찾아 간다.
* 사무치는 그리움
이동만은 불이흥업주식회사에 요시다가 퇴임하고 새로 부임한 지배인으로부터 해고 당한다. 그는 아들 이동만이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한을 풀어주기 바라며 동경대법대를 졸업한 아들을 절간에 몰아댄다.
절간에서 공부하는 이경욱은 대학 3년 말 아버지의 생일잔치에서 보았던 소리꾼 차옥녀의 모습이 아른거려 책을 잡을 수 없었다. 애타게 그녀를 찾던 이경욱은 머슴으로부터 그녀가 사찰과장에게 유린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더욱 그리워한다. 한편 하시모토는 농장을 군대식으로 조직해 외부세력의 침투로 발생하는 소작쟁의 근절책을 추진하여 효과를 보게 되며 억압을 당하는 소작인들의 불만이 커지게 되자 출산한 소작인들에게 미역을 선물하는 선심을 쓰기도 한다.
* 원인과 결과
조선공산당은 파벌간의 싸움으로 당의 분열과 소모를 초래하고 상대측을 경찰이나 헌병대에 밀고하는 등 자멸하여 붕괴된다. 중앙당 생활을 하던 정도규는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에 고서완과 함께 체포된다. 광동 국제공산군에 가담했던 허탁은 천상길의 안내로 만주 송수익을 상면하고 귀국한다. 출감하여 몸을 추스리고 있는 송중원을 방문한 그는 집안에 서려있는 궁색함을 느끼며 하룻밤을 지내고 상경한다.
허탁은 만주에서 송수익을 상면했을 때를 회상하며 송중원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허탁이 송수익에게 고향의 아내 및 아들이 투옥되었다는 사실을 전하자 별다른 내색을 않던 송수익은 그믐달이 뜬 새벽어둠속의 허허벌판 만주 땅에 무릎을 꿇고 흐느꼈던 것이다.
9권
* 서러운 넋들
유행성독감으로 손판석의 일곱살난 막내아들과 간척지에 살던 남상명 등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남편 남상명의 병수발등으로 빚을 지게 된 죽림댁에게 빚쟁이 한 씨가 빚을 핑계로 그녀의 19살 난 딸을 요구하자 그녀 가족은 군산의 박건식에게로 야반도주한다.
* 무너진 집안
송가원은 경성제대 의학부에 입학하지만 모친이 사망하고 가산이 기울자 휴학하려 한다. 박정애는 허탁을 앞세워 학비를 빌려주고 송가원이 거절하자 졸업후 갚으라 강요한다. 일본 사람들이 신식기계로 사금 채취를 한다는 소문과 금산면과 금구면 일대에 금 바람이 불며 그 일대의 땅 임대료가 솟는다.
불이흥업에서 해고당한 이동만은 일본인 기술자 우노사와와 이익금을 반분하기로 합의하고 사금채취를 시작한다.
그의 아들 이경욱은 고등고시에 낙방하고 아버지의 사주로 차옥녀가 사찰 과장에게 유린당한 사실을 알고 죄의식과 안타까움으로 아버지에 대해 분노를 일으킨다.
* 바람이 불어야 나무가 흔들린다
김제군의 동척소작인 천여명이 신간회의 조종으로 소작료 인하 및 수리조합비 면제를 주장하며 소작쟁의를 일으킨다. 서당 사건과 송수익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신세호는 공허의 권유로 신간회의 간부자리를 맡게 되며 차득보는 청년회원으로 가입한다. 타작철이 되자 굴통탈곡기를 꺼내던 차득보는 울화가 치민다. 쇠홀태만으로도 타작은 불편이 없었지만 일제는 일본재벌회사들을 비호하기 위해 강매했던 것이다. 이런 불만들이 더욱 모아져 소작쟁의는 더 심해지고 있었다.
* 광주 그리고 젊은 피들
1929년 나주에서 일본학생들이 조선여학생들을 희롱 하는 것을 본 조선학생과 일본학생들 사이의 싸움이 민족감정으로 충돌하여 전국학생운동으로 점화되었다. 마침내 경성제국대학과 서울의 고보 조선학생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시작했다. 서울 학생들의 시위소식이 각 지방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고 군산의 오삼봉네 학교에서도 시위가 폭발한다. 시위를 주동한 오삼봉은 구속되며 목포상고를 다니는 박건식의 아들 동화는 퇴학당한다.
신간회와 근우회 간부들이 검거되고 총독부에서는 아리랑에 대한 전면 금지령을 내린다. 그러나 학생들의 시위는 계속해서 일어나 1930년 3월까지 계속되며 학생운동에 참가한 학교는 194개교, 투옥된 학생 580여명, 퇴학 및 무기정학 당한 학생이 2,330여명에 이르렀다.
* 여러개의 강
신채호선생은 무정부주의 투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위조한 대량의 유가 증권을 옮기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언도받고 여순감옥에 갇힌다. 독립운동자금이 차츰 고갈되어 압록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재산을 지키려고 혈안이 된 지주들이 이래저래 친일파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송수익은 신채호선생의 체포와 3부 통합의 실패를 보며 무정부주의 투쟁을 하기로 결심한다. 3부 통합은 고질적인 분파의식과 주도권다툼으로 실패하며 어느 파당이나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은 신채호선생이 무정부주의였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1국 1당 조처로 의열단은 만주 각처로 활동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가 취해졌다.
방대근과 이광민도 만주로 가게 되며 윤주협은 간호사 민수희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길림에 도착한 방대근이 송수익에게 이광민을 소개하자 이광민은 이미 20년 전에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송수익을 보고 놀란다. 게다가 송수익은 자신과 가장 친했던 후배이자 동료인 송중원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 폭우
하룻밤과 한나절동안 퍼부어댄 폭우로 간척지가 물바다로 변한다. 남자들이 간척지의 방죽을 지키러 떠난 사이 허술하게 지어진 집이 무너져 떠내려가고 많은 여자와 아이들이 죽는다. 한기팔의 19살 난 큰딸이 두 동생을 지붕에 올려놓고 익사하며 김장섭의 6살 먹은 아들도 물에 떠내려갔다 이동만의 사금광도 물에 휩쓸려 난장판이 되고 동업기술자 우노사와는 건달패들과 손잡고 이동만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며 금석을 빼돌리는 등 사기를 친다. 이동만은 사금사업에 손댄 것을 후회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 그리운 이름 옥비
공허의 소개로 옥비를 만난 송가원은 서로 마음이 쏠리고, 송가원은 옥비의 거처를 알아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결국 이동만은 우노사와에게 고스란히 사기를 당하고 결국 사금을 캐기 위해 파 놓은 흙더미 위에서 객사한다.
이경욱은 아버지의 파산과 객사한 형편 때문에 고등고시에 대한 마음이 더 다급해지지만 옥비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을 잡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아버지의 행동에 대한 죄의식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편지를 보낸 뒤 홍명준 변호사의 사무실에 들르고 거기서 만보산사건에 대해 듣게 된다. 이 사건은 왜놈들이 중국인과 조선인들을 중간에서 이간질하여 서로에 대해 폭행하도록 한 사건이었다.
* 뿌리
구상배의 중매로 결혼한 방영근은 세 번째 아들을 낳고 동네어귀에 있는 샌달우드나무둘레에 쌓여있는 돌무더기에 돌을 올려놓으며 무병하니 잘 크게 보살펴 주기를 기원한다. 어느덧 샌달나무는 고향의 당산나무를 대신하고 있었고 그만큼 그 주변엔 돌무더기들이 이루어 진 것이다. 아들을 낳을 때마다 방영근은 고향생각에 더욱 애달프고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로 젖는다. 이승만 탄핵과 박용만이 밀정으로 의심받아 살해되자 더 이상 하와이의 조선인들은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호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구 선생이 한인애국단의 특수공작을 돕자는 특별헌금을 시작하자 하와이의 사람들은 1천만 달러를 미국 우체국을 통해 상해임시정부로 보낸다.
* 만주침략
1931년 9월 18일 일본의 관동군들이 만주를 침략한다. 자기네 관할구역에서 스스로 폭발 사건을 일으킨 뒤 중국 측의 소행이라고 뒤집어씌우는 동시에 철도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군사행동을 개시하였던 것이다. 방대근은 무정부주의 조직 확대를 위해 한국총연합회 소속 독립군 참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흥무관학교 동창인 노병갑을 만난다. 그러나 서로 생각이 다름을 알고 방대근은 노병갑과 헤어져 길림으로 향한다.
* 협박과 회유
미두로 만석꾼 재산을 다 날린 정재규는 아내에게 면박당하며 살고 동생 정상규와 징역살이를 하는 막냇동생 정도규의 아내에게까지 손을 벌린다. 고서완은 3년, 정도규는 3년 6개월의 징역살이 후 마을에 연금된 상태로 살아간다. 사찰과장은 일본에 협조하면 자리를 보장해 주겠다고 정도규를 회유하기도 한다.
* 사람의 여울
송가원과 민동환은 상해사변 승리 축하장인 흥구공원에서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의사가 일본 백천대장 및 고급군관 고관료 10여명을 폭살시킨 사실을 통쾌해 하나 앞날을 걱정하며 명창옥비가 일하고 있는 상춘관을 찾는다.
송가원이 시위때 눈을 다친 민동환을 병원에 데려다 준 인연으로 술친구로 가까워진 것이었다. 식자층사이에서는 앞으로 2백년 정도는 독립이 불가능 하다는 말이 나돌며 문필가들이 한숨을 쉬며 의기소침해지고 걸인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옥비는 공허스님의 심부름이라며 송가원에게 용돈을 주곤 했다. 옥비에게 마음이 쏠리던 송가원은 공허에게서 옥비가 낭자머리를 하게 된 사연을 듣게 되고 두 남녀는 서로 애틋한 정을 느낀다. 경기평야에 만석꾼 아들인 민동환은 졸업 후 잡지사를 운영하며 송가원의 형 송중원에게 편집장으로 일해 줄 것을 청한다.
* 집단 최면
목포의 소학교에 다니는 박건식의 작은 아들 용화는 황국신민화 교육에 세뇌당해 아버지와 형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노동쟁의를 일으켜 해고당한 아버지와 학생운동으로 퇴학당한 형 역시 결론적으로는 힘들게 일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 떨어지는 별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만주의 상황이 돌변하고 있었다. 독립군에게는 후방이 전방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한중연합군은 신빈현을 중심으로 조선혁명당군과 중국 의용군의 합작이며 한중연합토일군은 북만주 영안현에서 한국 독립당과 중국군 제14사단이 합작하여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송수익은 방대근, 이광민과 함께 관동군 사령부가 있는 장춘에서 관동군 사령부를 폭파하려다 중국인식당 주인의 밀고로 관동군에 체포되고 방대근과 이광민을 피신시킨다.
* 파도, 파도, 파도
천수동의 아들 천상길과 김판술 아들 김건오는 양세봉 장군이 이끄는 조선혁명당군에 입대한다.
노병갑이 중대장으로 참전하고 있는 한중연합토일군은 관동군사령부의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한다.
* 먼 저쪽의 그대
졸업을 앞두고 송가원은 결혼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박정애와 민동환이 서로 자기네 동생과 결혼시키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두 여자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고 옥비에게 계속 마음이 쏠린다. 그러나 졸업식 날 박정애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송가원은 박미애와 결혼하게 된다. 민동환은 그가 창립하려는 잡지사의 편집장을 송중원이 맡도록 해달라고 송가원에게 부탁한다.
* 혁명은 외로운 것
하시모토는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실시하는 농촌 계몽운동을 방해한다. 그는 학생들의 바람을 막기 위해 면사무소를 통해 매일 밤 동네마다 강연회를 열게 한다. 동네단위로 마을회관이나 타작마당에 소작인들을 남녀 가릴 것 없이 모아놓고 강연을 했다. 서울 고무회사와 경성제사공장을 대상으로 공작을 진행하던 안종화는 검거를 피해 연금상태에 있는 정도규의 소개로 포교당으로 피신한다. 고서완은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사회주의 운동을 포기한다.
* 고난
양복점에서 일본인 재단사의 보조원으로 일하는 손판석의 장남 손일남은 재단사의 갖은 학대를 견디며 재단기술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일과 후 재단사 몰래 신문지를 이용해 재단을 연습하던 그는 술에 취한 재단사에 발각되어 심한 구타를 당해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재단대에 놓인 가위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재단사를 찌르고 살인 미수로 구속된다.
부두 노동자들의 쟁의를 방관했다는 이유로 2개월 전에 창고지기에서 해고된 그의 아버지 손판석은 경찰서의 호출을 받고 땅이 무너지는 놀라움을 겪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유일하게 기다리는 사람은 공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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