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산행요령
[봄산은 야누스의 얼굴로 위험과 시련을 선사한다]
▶ 봄 내음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바람은 살갑다. 마음은 이내 산으로 향하고, 휴일이면 산으로 발걸음이 절로 움직인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모든 것들이 파릇파릇 자라 오르고 겨우내 움츠렸던 몸은 다스한 햇살아래 노곤해진다. 봄바람은 너무도 가볍게 등산객을 산으로 유혹한다.
그러나 등산장비만큼은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도시에는 봄이 왔지만, 산은 낮에 봄일지라도 해가 지고 나면 동장군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산은 항상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의 성질을 가졌다. 즉 낮과 밤이 판이하게 다르다. 낮에는 한없이 따사로운 햇살이 산꾼의 긴장을 풀어주지만 밤이 되면 난폭한 폭군으로 변해버린다. 산악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한 순간의 방심으로 허를 찔리기도 한다. 철저한 준비를 해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일기변동 심한 봄 산행은 겨울과 다름없어
봄 산은 겨우내 얼어있던 지표면이 낮 동안에는 햇살에 녹았기 때문에 약간의 힘을 주어도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위들은 녹았다 얼기를 반복하면서 지층 부분이 들떠 있어 가벼운 힘에도 쉽게 무너져 내리니 항상 발 밑을 조심해야 한다.
봄철 해빙기에는 경사가 급한 곳에서 잘못 건드린 바위가 무너져 등산로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일반 등산로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바위가 구르게 되면 '낙석' 이라고 큰소리로 외쳐 주변 등산객들의 주의를 환기 시켜야 한다. 또 그늘진 응달은 여전히 눈이나 얼음이 녹지 않은 곳도 있으니 조심하면서 걷는다.
해빙기 봄철에는 전체적인 기온이 올라간다 해도 한동안은 응달에 얼음이나 잔설이 남아있다. 재작년처럼 눈이 많이 온 겨울에는 5월까지도 설악산 깊은 골에 눈이 남아있었다.
금년 봄철 초기에는 아시아 대륙 북부지역에서 발달하는 상층 고기압의 세력이 유지되면서 우리나라는 대륙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일시적인 추위가 있었다. 또한 늦은 봄에는 중국 내륙지역으로부터 다가오는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자주 받아 건조한 경향을 보이겠으나, 남쪽을 지나는 기압골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다소 많은 비가 내릴 전망이다. 꼭 금년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봄 기온은 대체로 일기의 변동이 많은 편이다. 그런 만큼 보온에 단단히 신경을 써야 한다.
산행 전에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장비를 꼼꼼히 챙기는 습관이 안전한 산행에 많은 도움을 준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고 해도 금방 어둠이 찾아오니 시간을 수시로 확인하여 일정을 조절한다. 봄 산에 가기 위하여 준비하여야 할 장비는 실제로 동계장비를 거의 다 가지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수방풍 의류는 배낭 속에 꼭 지참
당일 산행을 나설 때는 먼저 배낭을 준비한다. 배낭의 크기는 옷가지와 물통, 간식거리, 장갑 등 소품들을 넣을 수 있는 크기의 배낭이어야 한다. 35리터 안팎의 적당한 크기의 마음에 드는 배낭이 좋다. 꼭 등산용 배낭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책가방이라도 메기 편하고, 두 손이 자유스럽다면 된다.
그 배낭 안에는 방수방풍 옷을 반드시 넣고 가자. 봄에는 기상의 변화가 무척 심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장비다. 방수방풍 의류는 가급적이면 항상 배낭에 넣어 사시사철 가지고 다니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전문적인 고기능의 등산복이 없으면 겨울에 항상 입고 다니던 파카나 털외투라도 좋다. 배낭 한구석에 넣어두면 갑작스런 기온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는 있다.
그 다음엔 스톡, 장갑, 스패츠, 크램폰을 챙긴다. 응달진 곳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들이 남아 있어 종종 신발을 적신다. 낙엽에 살짝 덮여 있는 얼음이나 잔설에 미끄러지기 쉽다. 지형이 의심스러운 곳에서는 간단한 크램폰을 착용,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양손에 스톡을 쥐고 이용하면 더욱 밸런스 있게 다닐 수 있다. 잔설이 남아 있는 구간은 미끄러우니 지팡이에 의지한다. 내리막길에는 뒤꿈치를 찍으면서 내려가고, 오르막에서는 앞발로 차면서 오르면 어느 정도 미끄러짐을 방지하며 오를 수 있다. 지팡이는 오르막이나 내리막 모두 요긴하게 사용되는 장비다. 체력소모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하산길에 완충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아 장시간 산행에는 아주 좋다.
스패츠는 흙탕길에서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대개 한겨울 눈이 들어가지 말라고 사용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흙탕길에서도 사용하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흙탕길에서는 심설용의 고어텍스 제품의 고가의 긴 스패츠보다는 저가형의 짧고 튼튼한 제품이 좋다. 스패츠를 착용하면 흙탕물이 바짓가랑이에 튀지 않아 깨끗해 보이고, 또한 신발 안쪽으로 흙탕물이나 모래 등이 튀어 들어가지 않아 좋다.
예전에는 양말이 보이도록 꺼내어 신었지만, 요새는 무릎까지 오는 바지가 유행이 아니고, 긴바지를 많이 입기 때문에 양말을 바지 위에 올려서 입지 않도록 한다. 바지 위로 올려 입으면 신발 안에 모래나 이물질이 들어가기 쉽다.
신발은 가죽으로 된 중등산화나 가볍고 방수가 잘되는 고어텍스 신발이 여러모로 좋으며, 목이 짧은 등산화보다는 가급적 발목이 긴 신발이 불규칙한 사면, 미끄러운 산길 산행에 발목 보호에 좋다.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산길을 걷다보면 신발이 젖고 금새 발이 시려지며, 운행이 늦어져 자칫 해가 지고서 산길을 내려오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산행을 나서기 전에 가죽등산화에는 방수제를 발라서 잘 말려 놓으면 신발이 쉽게 젖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최근에는 리지화라고 하는 암벽화 창을 덧댄 등산화가 인기가 아주 좋다. 하지만 바윗길에서는 효과적이지만, 진흙탕 길에서는 바닥의 요철이 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미끄럽다. 또한 발목이 짧기 때문에 발목이 자주 겹질리는 사람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스패츠 착용하면 흙탕길도 걱정 없다
등산장비 준비에 소홀하면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는 꽃샘추위에 가벼운 동상을 입을 수도 있다. 늦게 하산하는 경우를 생각해서 조그만 손전등이나 머리등(헤드램프) 하나쯤은 배낭에 넣어두자. 물론 여분의 건전지는 미리 확인을 해야 한다. 또한 최소한 개념도가 그려진 지도 한 장은 항상 휴대해야 한다. 미리 산행을 하기 전에 가야할 곳을 머릿속에 정리한 다음 지도를 확인하면서 산행을 한다면 더욱 즐거울 것이다.
운행 중에 체온의 손실이 가장 큰 부위는 머리이다. 또한 열 발산이 가장 많은 곳이기에 체온을 조절하기 가장 쉬운 곳이라는 의미도 된다. 신체 중에서 가장 둔한 감각을 가진 곳이 귀다. 동상을 가장 쉽게 입는 곳이다. 대개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동상은 신경을 많이 쓰지만, 귀는 항상 추위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소홀하게 생각한다. 찬바람에 귀를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간단한 귀마개나 귀를 덮을 수 있는 모자를 준비한다. 얇은 장갑이라도 꼭 가지고 다니는 것이 갑작스런 기온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쾌적한 산행이 될 것이다.
운행을 하다 배고프면 간식을 먹던지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요새는 산행 중에 취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운 음식을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봄이나 겨울에 추운 데서 찬 음식을 먹게 되면 종종 체하기 쉽다. 가능하면 보온병에 더운물이나 커피 등 음료수를 준비했다가 같이 마시면 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요즘 보온병은 성능이 좋아서 집에서 더운물을 가져가서 컵라면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가 있다. 컵라면도 좋지만 양이 부담된다면 편의점에 가면 컵 형태의 간단히 더운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스프나 된장국 같은 1인용의 즉석 음식이 많이 있다. 입맛에 맞는 것으로 고르면 된다. 보온병은 여러 종류들이 있지만 디자인은 대동소이하며, 물을 따를 때 입구를 돌려서 따르는 형태와 눌러서 따르는 형태가 있다. 편리함은 눌러서 따르는 형태가 좋지만, 보온성은 돌려서 따르는 형태가 낫다.
산행하던 중에 종종 바닥이 찬데 앉아서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게, 조그만 매트리스를 하나씩 가지고 다니면 바닥의 찬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없앨 수 있다. 평소에는 배낭의 등판 보강재로 사용을 하고, 식사 때에는 방석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간식거리로는 열량이 높은 초콜릿이나 육포, 양갱 등 가볍고 먹기 쉬운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가급적이면 바람이 불지 않고 햇살이 비치는 따뜻한 양지쪽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산에서의 간식 섭취 요령은 배가 고프기 전에 열심히 틈틈이 먹어두는 것이다. 주머니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넣고서 운행 중에 수시로 먹어주는 것이 좋다. 이미 배가 고픈 후에는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쉽게 포만감을 느끼기 힘들 뿐더러 많은 휴식을 취해야 체력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행은 해가 지기 전에 하산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해가 길어지지만,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하산을 시작하면 내려오는 도중에 해가 저물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반드시 올라온 시간을 계산해서 하산시간을 염두에 두며 산행을 해야 한다. 잘 알고 있는 길이라도 낮과 밤의 산길은 전혀 다르다. 초행길이라면 밤길은 더욱 위험하니 확실한 길이 아니라면 들어서지 않도록 한다.
장기산행에서는 보온성 뛰어난 침낭이 중요
대부분의 산에서 야영이나 취사가 금지되어 있고, 봄철산불방지를 위하여 대부분의 국립공원이 입산을 금지하고 있다. 휴양림이나 야영이 허가된 지정 야영장, 산장에서 야영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봄에 산에서 야영을 하기 위해서는 관계기관을 통해 반드시 입산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입산신고와 야영허가를 받아야 한다.
봄이지만 밤 공기는 매섭다. 갑자기 기온이라도 곤두박질치거나 봄비라도 맞게 되면 체온을 잃게돼 속수무책이다. 그러니 만큼 장기 산행시 야영을 할 경우에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산장에서 숙박을 한다면 구태여 동계용을 준비할 필요는 없지만, 난방을 하지 않는 산장에서 머무를 경우에는 조금 무겁더라도 동계용 장비들이 안락한 잠자리를 보장해 줄 수 있다.
텐트는 성능이 좋고 가벼운 제품을 준비한다. 야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침낭이다. 특별한 훈련을 목적으로 비박을 하지 않는 한 따뜻하고 가벼운 침낭을 준비해야 쾌적한 밤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침낭만 좋다고 해서 밤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바로 취침용 깔판(매트리스)과 함께 궁합을 맞춰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이 있지만 대동소이하며 저렴하다. 매트리스는 오래 사용하여 눌린 제품은 가급적 교체하여 주는 것이 좋다. 매트리스와 침낭을 잘 갖추면 최소한 춥지 않은 밤은 보장되는 셈이다.
야영을 하거나 산장에서 잠을 잘 때는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재빨리 보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땀에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지내다 보면 체온이 떨어져 버린다. 텐트 안에서 동료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걸이등 하나쯤은 장만을 하자. 밤에 텐트 안에서 켜놓기만 해도 훈훈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잠잘 때는 꺼두고 텐트 밖으로 내놓고 잠을 자야 한다. 요즘 대지가 건조하여 산불이 쉽게 일어나는 시기이니, 취사는 지정된 취사장에서 조심스레 하고, 뒤처리는 말끔하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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