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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십승지이야기

십승지를 가다 - 전북 남원 운봉

by 두타행 2011. 7. 13.

십승지를 가다 - 전북 남원 운봉

 

 

 아직도 우리에겐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땅이 남아 있다. 이른바 '정감록' 에서 말하는 십승지 (十勝地) 이다. '난리를 피할 수 있고 가난과 질병이 미치지 않는 땅' 으로 알려진 십승지는 '새로운 시대' 를 열망하는 민초들의 가슴에 '꿈에도 그리는 고향' 으로 전승돼 오고 있다. IMF시대를 맞아 우리 선조들이 남겨놓은 미래의 땅, 십승지의 지리적 특성과 주변의 볼거리 등을 소개한다.

사진

구름에 가려진 세걸산과 운봉. 전북 남원시 운봉읍은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만들기 위해 마지막 힘을 모으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 중앙의 작은 도로가 지맥이 가는 길이다.

지리산 주변에는 구례나 남원, 경남의 함양.하동 등 크고 작은 도시들이 있다. 모두가 한폭의 그림같은 마을이고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정감록' 에 따르면 이 도시들보다 지리산으로 오르는 중간지대인 운봉 (雲峰) 을 십승지의 하나로 꼽고 있다. 운봉은 오늘날 전북 남원시 운봉읍과 그 주변을 가리킨다. 이곳은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연달아 나며 가히 오래 몸을 보전할 수 있는 곳" 이라고 했다.
운봉은 동으로 팔랑치, 서쪽에 여원치라는 큰 재를 두고 있다. 북에는 덕유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막고 있고 남에는 지리산이 자연경계를 이룬다.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운봉으로 가려면 각각 팔랑치와 여원치를 넘어야 한다.
가령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려면 이 두 재만 단단히 지키면 된다. 해발 평균 450m, 서울 남산의 두배 높이에 자리한 운봉은 그런 점에서 '하늘의 요새' 라고 하겠다. 고려말 남해안을 날뛰던 왜구들도 이곳을 범하지 못했고 근세의 동학농민전쟁은 물론 해방후 빨치산전투에서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문병태 (51.운봉읍진흥계장) 씨는 자랑한다.
지리산 등반을 하는 경우 대개는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인월로 빠져나와 곧장 뱀사골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 결과 운봉은 등반객에게도 낯선 곳이다. 인월에서 운봉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황산과 덕두산 자락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자신의 눈을 의심할 만큼 광대한 평야가 전개된다.

사진
황산대첩비각. 고려말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파괴한 것을 복원했다.

 80년대 들어 목축업과 고랭지 작물이 일부 시작됐지만 여전히 이곳의 주산물은 쌀이다. 지리산 자락의 풍부한 물과 맑은 공기가 가을이면 들녘을 황금벌판으로 물들인다.

외부의 간섭이 없고 먹을 식량이 풍족하면 인심은 절로 좋게 마련. 여기에다 지리산으로 연결되는 주변의 산들이 하나같이 살기 (殺氣) 를 벗고 있어 인물 역시 보장한다. 발복의 시기는 북으로 흐르는 하천 (광천) 이 운을 받는 지금부터다. 그래서 십승지는 제때에 들어가야 복을 누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