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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십승지이야기

십승지를 가다 - 경북 상주 우복동

by 두타행 2011. 7. 14.

십승지를 가다 - 경북 상주 우복동

 

 

사진

속리산 아래 상주시 화북면은 한때 한국인의 전설적 유토피아인 '우복동'의 현장이라고 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용유리 병천에서 본 우복동 입구. 멀리 속리산 천황봉이 보인다.

<"허어, 요즘 우복동 찾는 사람 없는데 보통 사람 아니구먼.

예전엔 우리 집이 우복동 찾는 사람으로 가득했지."

경북 상주 (尙州) 시 화북 (化北) 면 상오리,

속칭 '높은다리' 라는 동네에 사는 김중만 (65) 씨의 말이다.

그는 이어 뒷산을 가리키며 "저게 장각 (長角) 이고

동네 이름도 장각동이니 쇠뿔인 셈이지. 그러니 우리 동네가 당연히

소의 배에 해당하고 화북시장 터는 소의 엉덩이" 라고 했다.

그의 설명에 옆에 있던 김태진 (65) 씨는 "화북면 7개 동리가

저마다 우복동이라고 한다" 며 말을 거들었다.

우복동 (牛腹洞) 이란 예부터 영남 일대에서 전해오는 피란지의 이름으로

상주에 있다고 했다. 동네가 마치 소의 배 안처럼 생겨 사람살기에 더없이 좋다는 곳이다.

그 우복동이 상주에서도 속리산에 둘러싸여 있는 화북면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다.

화북면은 대부분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가자면 괴산에서 선유동 계곡을 지나 늘티를 넘거나,

아니면 충북 청천면에서 용화동을 거쳐 밤재를 넘는 방법이 있다.

남쪽 상주시에서 들어가는 길은 갈령재를 넘어야 한다.

동편 문경쪽에서는 가은을 지나 농암의 쌍룡계곡을 타고 들어가야 한다.

어느 쪽이든 지금은 전부 도로가 포장돼 있어 접근이 매우 쉽지만 예전엔 깊고 깊은 산골이 분명하다.
화북면은 크게 3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사진

우복동의 쇠뿔에 해당한다는 장각동에 있는 7층석탑. 고려시대 작품.


용유리와 장암 (壯岩) 지구. 이곳은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견훤산성에서

현재 '우복동 유적비' 가 있는 병천의 입구까지가 해당한다. 청화산 (靑華山) 이

진산 (鎭山) 이고 서쪽에 속리산, 동편에는 속리산에서 갈라져 나온 도장산 (道藏山) ,

또 청화산이 남쪽으로 뻗어와 이곳의 앞산이 된 승무산 (僧舞山) 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 모양은 마치 속세를 떠난 유 (儒).불 (佛).선 (仙) 의 대가들이 모여 앉아 담론하는 형세다.

화산 (華山) 마을 지구. 이곳은 청화산과 시루봉 사이에 펼쳐진 협곡이다.

지세가 매우 핍착하지만 역시 복지 (福地) 로 불린다.지금도 비결파의 후손들이 서너집 남아 있다.

용화 (龍華) 지구. 지도상에 문장대온천이라고 표시된 곳이다.

4대째 이곳에 산다는 장병균 (57) 씨는 "용유동보다는 용화가 우복동" 이라고

침이 마르게 자랑한다. "용유동은 골이 좁아 사람 살 곳이 못된다" 고 했다.

이곳은 온천개발을 두고 경북과 충북이 법정싸움을 벌이는 곳이다.

미륵불의 도량인 법주사 뒤편에 자리한 용화는 어쩌면 미륵불이 불법을 설하는

용화세계, 그곳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찍이 전국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집팔고 땅팔아 우복동을 찾아왔다.

사진

상주시 화북면 토박이들이 세운 우복동 기념비.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던 '큰 난리' 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가산만 탕진했다.

그래서 이곳 '장바우 (壯岩里)' 를 두고 '망 (亡) 바우' 라는 말까지 생겼다.

 땅은 예나 이제나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들고 까불고 있으니 어디가 '무릉도원' 일까.

속리산 = 최영주 편집위원

* 볼 거 리

    ▶견훤산성 : 장암리.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산성
    ▶속리산 문장대 : 국립공원 속리산 화북지구 관리소에서 등산 가능
    ▶동천 (洞天) 암 휘호 : 용유리. 조선조의 명필 양사언이 썼다고 전함
    ▶원적사 : 원효대사가 창건. 지금은 선원이다
    ▶7층석탑 : 일명 장각사지 석탑.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
    ▶의병장 이강년선생 묘소 : 늘재
    ▶청화산과 백악산 등산도 일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