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지 도
≪輿地圖》(古4709-68)는 총 6책으로 구성된 전국 군현지도책으로 제1책에 遼?關防地圖와 盛京輿地全圖,
제6책에 朝鮮女眞兩國國界圖가 첨가되어 있다. 지도는 364장, 주기는 341장으로 총 70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거의 모든 지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다.
제작 연대도 1730년대 안팎으로 알려져 있는 《해동지도》보다 더 늦은 것으로 추정된다.
나주목은 1728년-1737년(영조 4-13)에 금성현으로 강등된다.
《해동지도》에는 나주목이 강등되었던 금성현으로 나오는 반면에
본 지도책에는 나주목으로 나온다.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된 安陰縣이 《해동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본 지도책에는
안음현으로 등장한다. 안음현은 1767년(영조 43)에 안의현으로 이름을 바꾸기 때문에
이 지도책은 대략 1736년에서 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해동지도》의 내용을 그대로 필사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명의 시대적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지만 동일하게 필사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본 지도책의
크기가 26.5cm×19.1cm, 내곽선의 크기가 19.0cm×15.3cm로 작기 때문이었다.
《해동지도》의 경우 지도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47.0cm×30.5cm 정도였다.
큰 지도를 작은 종이 위에 옮기다보니까 정보가 많은 부분, 특히 읍치나 중요 산성 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비슷한 비율로 그릴 경우
너무 작아져 많은 정보를 수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세로로 약간 긴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종이에 모든 고을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다 보니까 《해동지도》와 달라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가로로 길게 그려진 군현이 본 지도책에서는 세로가 더 길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변화뿐만 아니라 본 지도책은 《해동지도》의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다. 지명의 문자가 잘못 적힌 것도 많고,
사용된 기호에 일관성이 결여되거나 위치가 바뀌는 경우도 자주 나타난다. 물론 이 지도책이
《해동지도》를 필사한 최초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본 지도책과 같은 것이 규장각에
《地乘》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輿地圖》와 《輿地便覽》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본 지도책의 내용과 거의 유사한 것이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廣輿圖》이다.
《광여도》의 경상도 부분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비변사인방안지도’의
《嶺南地圖》를 필사하였지만 나머지 부분은 본 지도책과 전체적 구성과 내용이 거의
동일하여 서로 필사 관계에 있다.
《광여도》는 1800년(순조 원년)에 바뀌는 魯城이란 지명이
나오는 등 본 지도책보다는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보면 《광여도》는
본 지도책이나 그 계통의 것을 필사한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기도 하였으며,
색이나 기호의 사용에서 본 지도책보다 훨씬 꼼꼼하게 제작되었다. 본 지도책에는 각 군현마다
대부분 주기가 붙어 있다. 대부분의 주기는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호구 통계 등을
제외하면 형식은 다르나 내용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여지도 전주부지도
▲ 여지도 용담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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