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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줄기와만남/백두대간 도움방

백두대간의 고개 - 입망치(笠望峙, 남원 운봉)

by 두타행 2011. 5. 18.

 

백두대간의 고개 - 입망치(笠望峙, 남원 운봉)

 

 

불암산 형님으로부터 메일이 날라 왔다.
메일의 내용은
백두대간 상이며 행정구역으로는 전북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와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에  걸쳐 있는 입망치의 유래에 아느냐고 메일을 보내왔다.

 

 잘 닦여진 신작로를 걷고 또 확연하고 좋은 대간길을 걸으면서 산자분수령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백두대간이나 정맥상에 걸쳐 있는 령, 치의 유래를 알면서 길을 간다면 산과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령, 치에는 우리네의 고달프고 애환이 담긴 삶이 늘 존재하고 있고 우리 민족의 삶이 늘 숨쉬고 있는 곳이다.
참고하세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을 유래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입망치(笠望峙)는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와 운봉읍 행정리 갓바래기로 이어 주는 고개이며 갓바래재라고도 불리우며,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 입촌마을의 유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  그 유래를 찾아보면(新雲城誌 등)
과립리 입촌(笠村)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백암면(白岩面) 입촌리(笠村里) 지역으로 갓바래 또는 입촌(笠村)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과리(科里), 입촌리(笠村里)와 파과리(坡科里) 일부가 병합되어 과리와 입촌의 이름을 따서 과립리(科笠里)라 하고 과립리에 편입되었다.

 

 조선조 중엽 이천 서씨(利川徐氏)가 조치령(鳥峙嶺, 까막재) 밑에 살았다고 한다.
그후 청주 한씨(淸州韓氏)가 이 곳에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 마을은 속칭 갓바래라고 부르며 이는 중이 삿갓을 쓰고 배낭을 지고 가는 모습의 산혈(山穴)이 있어서 갓바래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갓(笠)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입촌(笠村)으로 바뀌었다.
마을의 동쪽은 운봉읍을 접경으로 높은 산이 있는데 이 재 또한 갓바래재로 부르고 있다. 일설에는 홍거리와 두무실이 있는데 이 가운데 아홉구비 혈중에는 바래 혈이 있다고 하여 갓바래재라고 한다. 이곳 동쪽의 험준한 산중에는 절토골이란 절터가 있는데 이는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의 불교문화가 전성기를 이룰 당시 암자가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笠望峙(南原市 雲峰邑 杏亭里)는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와 운봉읍 행정리 갓바래를 이어 주는 고개다. 뜻을 새기면 삿갓(笠)을 바라본다(望)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는데 이 것은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며 분명 삿갓하고는 연관이 있는 듯 하다.

 

▲ 新雲城誌의 그외 자료를 보면.....
- 수정봉(805m)
: 수정봉은 운봉읍 행정리와 양가리 경계에 있는 수려한 산이다.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분수계가 된다. 이백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되지만, 주촌리에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수정봉> 성재. 옥녀봉이라고도 하며 가장저수지 서쪽에 있다. 해발 804.7m의  정산 부근에 노치산성의 성지가 있다. 운봉읍 덕산리와 주촌리 그리고 이백면 효기리의 경계에 있는 산, 가장리 뒷쪽에 수정을 캐던 구덩이가 있었다 한다.


- 행정마을 유래 : 조씨들이 새로 들어와 정착할 무렵 이곳 일대에는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어 풍치가 아름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곳을‘은행마을’‘은행몰’이라 이름 부르게 되었다. 이를 한문으로 표기하여 은행리(銀杏里)가 되었는데 이를 줄여 ‘행정(杏亭)’으로 고쳐 지금에 이른다.